이 글을 쓴 사람은 분명 비서직이고 보통의 기업체 부서에서 남사원과 비슷한 일을 하는 여사원과는 다르다

내가 만약 비서가 되어 있었다면(그런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아마도 난 글쓴이처럼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맛있는 차를 접대 할 수 있으며 접대 받는 사람이 만족스러워 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을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이다.(공자가 그러지 않았던가!)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글쓴이는 비서직이고 나는 여직원이다. 모든 일을 긍정적인 사고로 기꺼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무모한 말이다. 나 또한 직장생활 3년이 넘었다. 나의 직장생활 3년 간의 노하우는 손님들의 기호에 맞게 맛있는 차를 타는 것도 아니며 다소곳한 몸놀림 또한 아니다. 내가 맡은 일을 충실히 정확하게 효율적으로 하고 그렇게 하여 회사가 이윤을 본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요즘은 자판기가 있어 여사원들이 커피를 타서 접대를 하는 번거로운 일이 없어졌다. 누구든지 동전만 있다면 맛있는 커피를 기호에 맞게 마실 수 있다. 그런데 누구의 발상인가? 참으로 깜찍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이지 않는가? 생각할 수록 기가 차는 일이다. 자판기가 있음에도 굳이 동전을 던져주며 차를 뽑아다 달라고 하는 남자들(이런 상황에 존경하고 받들어야 하는 직장상사라는 생각이 든다면 사람이 아니다)은 대체 조금의 양심도 없는 인간들이란 말인가!

몇 달 전 퇴사한 정계장님의 일이 생각난다. 한 회사에 혼신 투구하여 야근도 마다 않고 일도 완벽하게 해냈던 그는 여직원임에도, 고졸이라는 불리한 승진 조건에도 계장이라는 직급을 5년 만에 달고 10여 년을 일했다. 정계장님은 예전부터 남직원들(직장상사들)에게 아침, 점심, 저녁으로 꼬박꼬박(마치 자판기에 시간을 맞춰놓듯이)차를 접대한다. 그것도 겨울엔 유자차로, 봄가을엔 홍차나 과실차, 여름엔 시원한 냉커피까지 만들어준다.

사무실은 비서실과 달라 차를 탈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을뿐더러 찻잔을 씻으려면 화장실까지 가야한다. 정계장님은 그렇게 까지 해서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싶어하는 완벽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러니, 계장이라는 뚜렷한 직책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정양”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차를 날라대야 했다.

남사원들 아무도 정계장님을 계장이라 부르지 않았다. 나이가 많으시고 직책이 높으신 분들은 안타깝게도 어디서 못된 입버릇(사무실은 곧 ‘다방’이라는 더러운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으로 “정양”이라 불렀고 계급이 낮거나 나이가 적은 남사원들은 항상 “정XX씨”라 불렀다. 정계장님은 자신의 직책을 사원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 것에 불만이 생겼고 또한 내가 계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도 차를 접대해야 하나 회의했다. 그러면서 5년이 지났고 남아있는 직원들의 정계장님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차를 나르는 일 뿐이다.

결혼을 한다며 퇴사할 때 정계장님은 나의 예상(차를 주는 것도 부서 사람들을 가족같이 생각해서 헌신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정이 많이 들어 매우 섭섭해 할 것이라 생각했다.)과는 달리 너무나 덤덤했다. 그리고 나에게 “나처럼 바보같이 살지마”라고 했다.

아무리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지만 남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하찮은 차 나르는 일에 열중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가치를 좀더 높여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여 제발 좀 깨어나자!

맛있는 음식은 먹고나면 그만인 것처럼 우리도 좀더 회사에 이윤이 되고 자신에게 보람된 일을 해보자. 젊음의 열정을 다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일을 해보자.

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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