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불고
‘성평등’ 관심 커지자
영화 속 달라진 여성 캐릭터
긴 머리카락·드레스 대신
적극적 성격에 바지 입어
‘흑인’ 인어공주도 내년 등장
“지금의 관객들이 원하는 것에 초점 맞춰야”

 

영화 '알라딘'의 자스민(나오미 스콧)은 마법사 자파에 대항하려는 인물로 등장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 '알라딘'의 자스민(나오미 스콧)은 마법사 자파에 대항하려는 인물로 등장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1992년 나온 애니메이션 '알라딘'. 왼쪽이 자스민. ⓒ월드디즈니컴퍼니
1992년 나온 애니메이션 '알라딘'. 왼쪽이 자스민. ⓒ월드디즈니컴퍼니

시대가 달라졌다. 지난해 미투(#나도 말한다) 운동이 전 세계를 휩쓸고 대중들의 젠더 감수성도 높아졌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도 반응했다. 올해 3월 마블 시리즈 처음으로 여성 솔로 히로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캡틴 마블’이 개봉했다. 국내에서는 여성 배우 투톱을 내세운 형사물 ‘걸캅스’는 16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이번에는 애니메이션을 리메이크한 영화들이다. 9일 930만 관객을 넘긴 실사 영화 ‘알라딘’에서 자스민을 주목해보자. 아그라바 왕국을 지배하려는 마법사 자파에 강력하게 맞선다. 술탄(통치자)인 아버지 뒤를 이어 ‘여자 술탄’이 되고 싶어 한다. 자스민이 부른 ‘Speechless’(스피치리스)는 애니메이션에는 없던 노래다. “난 침묵하지 않을 거야. 넌 날 침묵하게 할 수 없어. 네가 아무리 노력해 난 흔들리지 않아.

애니메이션 속 공주는 시대를 반영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나온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속 공주들은 ‘신데렐라’, ‘백설공주’가 그랬듯 남성 캐릭터들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인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평택대 광고홍보학과 학생들은 최근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1991), ‘아틀란티스: 잃어버린 제국’(2001), ‘라푼젤’(2010)을 분석했다. ‘미녀와 야수’와 ‘아틀란티스:잃어버린 제국’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도움을 받거나 남성이 여성보다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었다. 반면 ‘라푼젤’에서는 남녀가 동등하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여성 캐릭터의 변화가 생겼다. ‘포카혼타스’, ‘뮬란’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주체적인 성격을 지니기 시작했다. 인디언과 동양인 묘사에 대한 비판을 받긴 했지만 변화의 노력이 있었던 부분이다.

'겨울왕국'의 엘사.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겨울왕국'의 엘사.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토이스토리4'에 나오는 보핍(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전편과는 다르게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강한 여성 캐릭터로 등장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토이스토리4'에 나오는 보핍(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전편과는 다르게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강한 여성 캐릭터로 등장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는 알파걸 열풍이 불었다. 학업과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자를 능가하는 여성을 조명하기 시작하면서 대중문화에서 여성 캐릭터에 대한 관심도 오르기 시작했다. 2005년 디즈니사에서 제작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치킨 리틀’은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암평아리가 주인공이었다. 무리하게 수평아리로 바꿨다가 흥행에 실패했다. 디지털 기술을 앞세운 픽사와 드림웍스 같은 타 영화제작사와의 경쟁에서 밀렸다. 그러자 디즈니사는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전면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메시지가 녹아든 것이다.

‘라푼젤’,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 같이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주인공들이 등장하더니 ‘겨울왕국’(2013)에서 마침내 주체적인 공주의 탄생을 알렸다. 2017년 실사 영화로 탄생한 ‘미녀와 야수’(2017)의 미녀 벨은 정해진 운명대로 살지 않으려는 캐릭터로 변모했다.

성상민 문화 평론가는 “1992년 나온 애니메이션 ‘알라딘’에서도 자스민은 나오기 힘든 캐릭터였다. 당시 애니메이션에서의 공주는 얌전한 캐릭터였는데 자스민은 직접 성 밖으로 나가는 자유분방한 캐릭터였다”고 말했다. 그는 “디즈니는 그 당시에도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2010년대 ‘라푼젤’ 같은 작품이 나오는 등 시행착오와 실험을 계속해왔다”고 말했다.

극 중 인물의 인종도 확장되고 있다. ‘알라딘’에서 주인공 알라딘 역은 이집트 배우 메나 메수드가 맡았다. 자스민 역의 나오미 스콧은 인도계 영국 배우다. 이란, 터키 배우들이 조연을 맡았다. 영화 배경(아랍)에 맞춘 캐스팅이다. 과거 일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유색 인종 배역을 백인이 연기하는 ‘화이트워싱(극중 배역을 무조건 백인 배우만 캐스팅하는 형태)’ 논란이 일어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디즈니
ⓒ디즈니

2020년 개봉 예정인 ‘인어공주’ 실사 영화에서는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주인공 에리엘을 맡는다. 일각에서 ‘인어공주’가 덴마크 원작 작품이라 흑인이면 안 된다는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자 디즈니는 산하 채널 ‘프리폼’ 인스타그램을 통해 “덴마크 사람이 흑인일 수 있기 때문에 덴마크 인어도 흑인일 수 있다”고 했다.

성 평론가는 “애니메이션을 동화에서 가지고 오는데 애초부터 (원작과) 작품이 같을 수 없다. 또 새로 리메이크 되는 영화들이 예전 것과 비교해 20년이 지났다. 당시 시대적인 감성을 가져가는 게 의미가 없다. 지금의 관객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 초점을 맞추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영화 제작사가 작품 속에 달라진 여성상을 반영하고 다양한 인종을 등장시키는 것이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상업적 전략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 교수는 “영화는 다 비즈니스고 시나리오도 더 많은 사람을 보게 해야 하는 게 맞다”며 “적극적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관련 소비를 하는 게 여성이 많기 때문에 여성주의적 시나리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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