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법] 존중과 공감을 향한 첩경에 관하여
[모두의 법] 존중과 공감을 향한 첩경에 관하여
  •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 승인 2019.07.11 08:05
  • 수정 2019-07-10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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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 빙자한 ‘시혜’되지 않으려면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박찬성 변호사. ⓒ본인 제공
박찬성 변호사.

한 번쯤은 이런 글을 써 보고 싶었다. 모자란 지식과 경험을 애써 박박 긁어모아, 별 의미 없는 졸문을 꾸역꾸역 써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세상에는 보태고 뺄 것 없는 좋은 글들이 이미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그러니, 보잘 것 없는 잡문을 세상에 하나 더 내놓는 것보다는, ‘여러분께서는 이 글을 찬찬히 읽어보십시오’라고 하면서 진정한 명문을 소개하는 편이, 온갖 종류의 지식과 정보가 폭포수처럼 흘러넘치는 이 시대에 오히려 궁극적인 공익에 더욱 부합하는 글쓰기인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필자가 존경해 마지않는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의 글을 짤막하게나마 보여드리고자 한다.

“혐오의 반대자는 바로 존중과 공감이다. (…) 혐오는 도덕적 둔감성에 의지한다. 다른 인간을 끈적거리는 민달팽이나 역겨운 쓰레기 조각으로 보는 일은, 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 사람의 느낌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진지하고도 선의에 찬 시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때에나 가능하다. 혐오는 타인에게 인간 이하의 속성을 전가한다.

반대로, 다른 누군가를 인간으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낯선 사람에게서 자동적으로 인간성이 드러나는 일은 없다. 어떤 시민도 자기가 완연한 인간이라고, 극도로 불쾌한 벌레나 쓰레기 조각이 아니라고 천명하는 플래카드를 등에 붙이고 다니지는 않는다. 인간처럼 생긴 형태를 볼 때마다 우리는 그 형태에 완전하고 평등한 인간성을 부여할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 못한 무언가를 덧씌울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오직 그 사람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이 어떨지를 상상할 때에만 인간은 다른 사람을 ‘무언가’가 아닌 ‘누군가’로 인식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

더 강력한 주장도 가능하다. ‘존중’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으려면, 모든 존중에는 반드시 상상력을 동원해 타인의 삶에 감정적으로 참여하는 능력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는 이 주장을 옹호한다. 오직 그 능력만이 존중의 핵심에 해당하는 능력, 다시 말해 타인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의 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현실화시키기 때문이다.” (『혐오에서 인류애로: 성적지향과 헌법』 24~29면에서 일부 발췌)

읽을 때마다 탄복을 금할 수 없는 깊은 통찰이다.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 필자가 종종 진행하는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에서 그리고 또 다른 형태의 인권교육에서 결론적으로 강조하는 부분도 사실은 누스바움 교수의 위와 같은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나’의 말과 행동이 ‘나’의 앞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비수와도 같이 깊은 상처와 아픔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나’의 관점이 아니라 그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의 말이나 행동을 먼저 바라보려는 노력은 당연히 불가결한 것이라고.

사족이라는 느낌을 못내 지우기 어렵지만, 필자는 누스바움 교수의 이 같은 가르침에 딱 한 가지만 ‘딴지’를 걸어보고 싶다. 독자들께서는 지하철역에 설치돼 있는 시각장애인용 노란색 점자발판을 한 번쯤은 보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흔히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인용 설비를 상징한다고 생각되곤 하는 ‘휠체어 그림’이 붙어있는 모습도 보셨으리라. 요철 형태의 점자발판과 휠체어 그림 사이의 부조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일이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은 없으실 줄로 예상한다. 필자도 그랬으니까.

휠체어를 타는 어느 후배가 필자에게 말했다. “형, 시각장애인용 설비 앞에 그려져 있는 휠체어 그림이 사실은 굉장히 안 어울린다는 거, 아세요?”, “응? 무슨 얘기야?”, “형은 운전할 때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편해요, 아니면 자갈돌 깔려 있는 비포장도로가 편해요? 그거하고 똑같아요. 사실, 비장애인들은 다 똑같은 ‘장애인’인 줄로만 생각하지만, 장애인들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다 다르다는 거. 휠체어도 바닥에 요철이 있으면 불편하다고요.” 순간, 필자는 뒷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에 어쩔 줄 몰랐던 기억이 난다.

존중과 공감을 위한 상상적 참여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상상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때로 그러하듯 상상만으로는 관념으로의 매몰을 피할 방도가 없을 수 있다. 존중을 빙자한 ‘시혜’가 되는 것은 어떻게 보더라도 곤란하다. 그래서 당사자의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한 노력이 더해져야 마땅하다.

존중과 공감이 우선적으로 전제되지 않은 당사자의 ‘목소리 표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서 마치 순환논변의 오류에 빠져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가는 길이 가장 험난해 보이더라도 그것이 유일한 길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필자도 다음 강의부터는 이 한 마디를 꼭 덧붙여야겠다.

“당신들의 눈앞에 있는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좀 기울여 보시라고요!”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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