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만화경] 세상의 등급, 커피의 등급
[커피 만화경] 세상의 등급, 커피의 등급
  • 박우현
  • 승인 2019.07.03 22:08
  • 수정 2019-07-03 2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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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콩을 바라보는 한 여성. ⓒ뉴시스·여성신문
커피 콩을 바라보는 한 여성. ⓒ뉴시스·여성신문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열매에서 왔다. 즉 커피 열매의 씨앗을 볶은 것이 바로 커피다. 커피 열매는 마치 체리처럼 생겼는데(실제로 커피 산지에서는 커피를 ‘체리’라고 부른다.) 체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과육 부분이 매우 적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커피는 열매로서는 존재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인류는 커피 열매의 씨앗을 발견했다. 과육이 적은 대신 커다란 커피의 씨앗을 볶는 데는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결과로만 보면 커피 로스팅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처럼 커피는 열매에서 비롯됐기에 커피콩(씨앗)은 열매의 속성을 간직하고 있다. 열매에서 느낄 수 있는 달콤새콤한 맛이 씨앗 속에도 DNA처럼 숨어 있다가 로스팅 과정에서 나타나는데 이러한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 얼마나 균형 있게 발현되는 커피인지에 따라 커피는 등급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커피 산지에 따라 등급 산정 기준이 제각각이다. 케냐 커피에서 흔히 봐왔던 AA란 말은 영국식 커피 등급 표기 방식이고 C-B-A-AA 단계로 되어 있다. 특징은 생커피콩의 크기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AA는 가장 높은 등급으로 크기가 가장 크다.

반면 중남미 쪽에서는 커피 산지의 해발고도에 따라 등급을 결정한다. 예컨대 SHB(Strictly Hard Bean), SHG(Strictly High Grown) 등의 등급 기준은 해발고도 14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재배한 것을 말한다. 아울러 1200m~1400m는 HB(Hard Bean), HG(High Grown) 등으로 표기한다.

SCAA(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America·전미 스페셜티 커피협회)에서는 커피의 맛과 향에 대한 기준치를 만들어 이른바 스페셜티 커피 등급을 결정한다. 이때 등급 판정을 위해 갓 수확한 커피를 시음하는 것을 커핑(cupping)이라고 하며, 커핑을 하고 평가하는 사람을 커퍼(cupper) 또는 커핑 저지 (cupping judge)라 한다. 이들은 커피의 품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테스트 항목을 만들어 커피 등급을 부여하는데 산미나 단맛을 비롯해 아로마와 같은 맛과 향을 중심으로 점수를 매긴다.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 획득한 커피를 스페셜티 등급이라고 한다. 이러한 스페셜티 커피는 비싼 가격에 팔린다. 스페셜티 커피 등급 말고도 브라질을 중심으로 모인 중남미 국가들이 선정하는 C.O.E(Cup of Excellence) 커피가 있으며 최근 바리스타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커피에 등급 체계가 생긴 것은 돈 때문이다. 커피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아무리 품질 좋고 맛과 향이 탁월한 커피를 재배했다 하더라도 그 가치는 객관적일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해 비싸게 팔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아울러 기후의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커피는 작황 상태에 따른 생산량과 품질 차이가 발생한다. 커피가 재화가 되면서 커피를 거래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생산량과 품질의 변화에 따른 부가가치와 손해를 등급이란 시스템을 마련하여 상쇄하면 어떠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품질이 좋고 귀한 커피는 비싸게 팔아 수익률을 높일 수 있게끔 분류 기준을 만들어 등급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등급 매기기는 땅과 햇빛의 반응에 자연스럽게 응답하는 농작물 커피를 스펙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마치 인간 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누가 더 능력 있고 특별한 인간인지를 평가하는 세상이 되어갈수록 커피의 등급 분류 체계도 더욱 세분되고 전문화되었듯이 말이다. 그렇다보니 자신의 특별함을 표현하거나 과시하기 위해 또는 남과 차별하기 위해 특별한 등급의 커피를 찾아 소비하는 경향이 늘어나기도 한다. 자본은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놓치지 않는데 커피나 인간이나 자본 앞에서는 등급으로 평가받게 된다는 것이 왠지 씁쓸하다. 커피 맛이 씁쓸하지만 않고 새콤달콤하듯이 우리네 삶도 달콤한 미래가 올 수 있을까?

* 별걸 다 하는 출판사 ‘우주소년’ 대표. 저서로는 『커피는 원래 쓰다』가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문학커피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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