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 최초 그리핀상' 김혜순 시인 “시인의 감수성은 소멸과 죽음에 대한 선험적인 생각”
'아시아 여성 최초 그리핀상' 김혜순 시인 “시인의 감수성은 소멸과 죽음에 대한 선험적인 생각”
  • 김진수 기자
  • 승인 2019.06.25 20:46
  • 수정 2019-06-26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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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성 최초 그리핀상' 김혜순 시인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죽음 다룬 『죽음의 자서전』
7월 산문집『여자짐승아시아하기』출간
“페미니즘과 시의 만남 떠올리며 작업”
94년도 여성신문 6주년 기념시 '태몽' 써
'2019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9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인의 감수성은 소멸과 죽음에 대한 선험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의 자서전』은 죽음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의 여성·사회적 경험을 쓴 거예요. 산자로서 죽음과 같은 상황에 부닥쳤을 때의 자서전이라고 할까요. 그런 시적 감수성이 심사위원들의 감수성과 같지 않았을까요.”

김혜순(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인은 6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아시아인 여성 최초로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을 수상 이유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이번 달 초 시집 『죽음의 자서전』으로 그리핀시문학상을 받았다. 영어 번역 시집에 주어지는 국제부문상이다. 2008년 고은 시인이 이 문학상에서는 공로상을 받긴 했으나 그리핀시문학상을 받은 건 김 시인이 처음이다.

그는 “제 이름을 불렀을 때 놀라서 현실이 아닌가 보다 생각을 했다”며 “수상 소감이 뭔지 잘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시상식장과 낭독회장에 다 백인들만 있어서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시가) 파이널리스트(최종 후보)에 오르면 무조건 1만 캐나다 달러를 준다고 했어요. 제 번역자가 ‘동양인이고 여자들이라서 절대로 못 받아요. 그런데 만 달러 받고 축제를 즐겨요’라고 해서 갔습니다.”

탁월한 번역본의 탄생 배경은 김 시인과 번역한 최돈미씨의 적극적인 의사 소통 덕분이었다. “영어로 번역할 때 저에게 이 문장의 주어가 무엇이냐고 물어봐요. 시를 읽고 나서 무엇을 느꼈는지 뿐만 아니라 개인사까지 소통했어요.” 김 시인과 최씨의 인연은 2000년대 초 최씨가 김 시인의 시를 번역하고 싶다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최씨는『죽음의 자서전』까지 김 시인의 책 6권을 번역했다. 상금은 원작 작가(40%)와 번역 작가(60%)가 나눠 가진다. 김 시인은 “당연히 번역자에게 상금이 많이 가는 게 좋았다”고 했다.

25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2019 그리핀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 기자간담회가 열려 김 시인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5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2019 그리핀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 기자간담회가 열려 김 시인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죽음의 자서전』에는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죽음을 다룬 총 49편의 시가 담겼다. 김 시인은 “49재를 염두에 뒀다. 죽은 자가 죽음에 들기 전이 49일이다”라며 “시를 더 많이 썼는데 더 멋있게 보이려고 49편으로 잘랐다”고 말했다.

제일 아프게 다가온 시는 ‘저녁메뉴’였다고 했다. ‘엄마’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쌀독엔 쌀이 없고 / 엄마의 지갑엔 돈이 없고 / 엄마의 부엌엔 불이 없고/오늘 엄마의 요리는 머리지짐/어제 엄마의 요리는 허벅지찜/내일 엄마의 요리는 손가락탕수/부엌에선 도마에 부딪치는 칼/부엌에선 국물이 우려지는 뼈/부엌에선 기름에 튀겨지는 허벅지/엄마의 쌀독엔 엄마/엄마의 지갑엔 엄마/엄마의 부엌엔 엄마/엄마의 칼밑엔 엄마/네 엄마는 네 아잇적 그 강기슭/네 엄마는 네 아잇적 그 오솔길/강기슭 지나 그 오솔길 너 혼자 멀어져 가노라면/우리 딸이 왔구나 힘없는 목소리/어서 들어오너라 방문 열리면/텅 빈 아궁이 싸늘한 냉기/네 엄마의 부엌엔/배고픈 너의 푹 꺼진 배/녹슨 프라이팬처럼/검은 벽에 매달려 있는데/너는 오늘 밤 그 프라이팬에/엄마의 두 손을 튀길 거네’(‘저녁메뉴’) 

김 시인의 어머니는 최근 작고했다.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해 올해로 시작 40주년을 맞은 김 시인은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문학동네) , 『여성, 시하다』등을 펴내며 대표 여성의 목소리에 천착해 시를 써왔다.

‘한국 시의 최전선’이라 불리는 김 시인은 “실험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이며 아름다운 그런 시들로 한국 시사의 전위에 서 있다”는 게 중평이다. 1990년대 대안문화운동체 ‘㈔또 하나의 문화’ 동인으로 활동하며 여성학자들과도 교류를 맺었다. 여성신문 창간 6주년 때인 1994년에는 임신과 출산을 소재로 한 축시 '태몽'을 쓰기도 했다. 시는 “무덤을 종기처럼 흔드는 용”이 “내 치마폭에 툭 떨어지는” 거대한 태몽과 그 이후 출산에 관한 얘기다. “태백산맥이 내 갈비뼈를 내리눌러/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다 내 몸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과정을 거쳐 낳은 아이가 바로 ‘여성신문’이었다.

내가 니 낳을 때, 아니야 낳기 전에 니 배 갖고 있을 때, 동구밖에서 용이 나타났어. 꿈에? 으응, 꿈에. 소나무, 굴참나무, 깊은 산나무 털을 가진 용이. 바위를 혹처럼 매단 용이, 무덤을 종기처럼 흔드는 마주 보이던 앞산 있잖아. 그 산 이름이 뭐였드라. 아이구 왜 이리 생각이 안나. 암튼 그 산이 뭐 용 같이 생겼다고 용자 들어가는 이름이었잖아? 몰라? 나도 몰라. 그래 그 용이 그 산보다 더 컸어. 몸집이 비교를 할 수가 없지 뭐. 그 용이 나타나니까 동네 골목이 불붙은 거 같앴어. 나 혼자 집에 있었거든. 모나 들일 나가고. 집도 타고, 마당도 타고, 울타리도 탓어. 수만 마리 뱀을 백사, 흑사, 녹사 그런 뱀을 수염처럼 매단 용이, 삵쾡이가 털 속에 몸을 웅크린 용이 나타났어. 그럼. 내가 다 본거야. 움직이니까 방이 쩌르르 쩌르르 울려. 지진날 때보다 더 했지. 썩은 나무를 꽁지에 매달고 이렇게 저렇게 길을 쓸면서 오더라. 우레를 데리고. 하늘에서 우레가 따라왔어. 그럼, 소리가 굉장했지.

나, 어떡하지? 어디로 숨지? 그러고 있는데, 시상에. 저 이빨 좀 봐. 이빨 속에서 구름들이 몰려나와. 어떡하지? 그 큰 용이 숨을 쉴 때마다 나무들이 이 쪽으로 넘어갔다가(몸을 왼쪽으로 넘어뜨리며) 다시 이렇게(다시 몸을 일으키며) 일어서는 것 좀 봐. 골목까지 따라왔어. 어떡하지? 저 첩첩 산중 몸뚱아리 좀 봐. 발자국 하나에 건너 마을이 따라오고, 발자국 두 개에 논 천마지기 따라오는 거가 한눈에 들어왔어. 뒷산 큰 집 대나무 밭이 흔들리고, 산 겨드랑이에서 누가 흔드는 것처럼 밤톨이 쏟아지는 거야. 그 용이 한번 눈을 감으면 골목이 깜깜해지고, 한번 눈을 뜨면 골목이 타 올라. 연기가 치솟고 불길이 뻘개. 한번 몸이 꿈틀하니까 설악산 아래서 쳐다볼 때처럼, 산맥들이 갈비뼈 춤추는 것처럼 따라오잖아. 우리 텃밭에서 감자들이 알을 전부 게워내고 파꽃이 저절로 터졌어. 그 용의 발이 우리 우물에 당도하니 저 멀리 서쪽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졌어.

나 어떡해. 용이 담을 넘어 들어오고 있어. (몸을 오그리며 방구석으로 물러나는 시늉을 하며) 그 다음엔 용이 대추나무에 올라앉았어. 아이구 무서워. 나는 막 이불 쌓아놓은 그 안에다 고개를 쳐박았어. 사냥꾼 만난 까투리처럼. 몰라, 느네 아버지는 어데 가셨는지 보이지도 않아. 나 혼자, 그래, 집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 앉아 있었드랬잖아. 이상허지? 난 그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왜 저 대추나무가 저 산맥을 이고 태연히, 가분히 서 있지? 그렇게 생각하는 새 금방 용이 내 치마폭에 툭 떨어지는 거야. 태백산맥이 내 갈비뼈를 내리눌러.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다 내 몸 속에 들어온 것처럼 몸이 무거웠드랫지. 몰라, 몰라, 그 때 그냥 놀란 거 생각하면, 깜깜해, 그리고 얼마 후에 내가 용의 겨드랑이, 거기, 너 생각나냐? 밤 나무 많던 그 집 말이야. 거기 우리 집 있던 자리가 그 산의 겨드랑이 쯤이라고 내 들었어. 내가 그 집 안방에서 너를 낳은 거야.(‘태몽’)

김 시인은 7월 초 티베트와 인도를 여행한 기록을 담은 산문집『여자짐승아시아하기』를 펴낼 예정이다. 그는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시와 만났을 때 어떤 모습일까 하는 동기로 썼다”고 했다.

지금까지 시를 써 온 소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저나 여러분이나 당면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뒤를 돌아볼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쓴 시를 전혀 읽지 않습니다. 예전에 쓴 건 파묻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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