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훔쳐 본 나무꾼, 선녀에게 벌 받다
몰래 훔쳐 본 나무꾼, 선녀에게 벌 받다
  • 김진수 기자
  • 승인 2019.06.27 07:00
  • 수정 2019-06-28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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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선녀는 참지 않았다』 쓴 '구오'
경민·다은·애린·유진·현지
이화여대 동갑내기 독서모임
기존 전래동화, 페미니즘 재해석
'우렁각시'에선 남자가 식사 준비
'장화홍련'에서는 착한 계모 그려
페미니즘 전래동화 ‘선녀는 참지 않았다’를 펴낸 이화여자대학교 독서토론모임 ‘구오’의 (사진 왼쪽) 현지, 유진, 경민, 다은, 애린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페미니즘 전래동화 『선녀는 참지 않았다』를 펴낸 이화여자대학교 독서토론모임 ‘구오’의 (사진 왼쪽) 현지, 유진, 경민, 다은, 애린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은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을 구해준다. 결혼할 아내를 원한다는 사냥꾼의 소원에 사슴은 목욕하는 선녀의 옷을 숨기라고 말한다. 선녀가 목욕하는 모습을 엿보는 사냥꾼.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여성이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는 사냥꾼의 행위는 현대시대의 디지털 성범죄를 연상케한다.

많은 전래동화에서 주인공은 남성이었다. 남성은 영웅이고 강한 존재로 그려진다. 반면 여성은 외모 중심적으로 그려지며 밥과 빨래 등 가사노동을 하는 캐릭터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계모는 부정적인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구오 지음 / 1만4000원 / 위즈덤하우스
구오 지음 / 1만4000원 / 위즈덤하우스

『선녀는 참지 않았다』(위즈덤하우스)는 전래동화에 담긴 고정관념과 성차별, 혐오를 빼고 재해석한 페미니즘 전래동화책이다. 목욕하던 선녀를 훔쳐보던 나무꾼은 강한 힘을 지닌 선녀들에게 잡혀 벌을 받는다. 우렁이가 노총각에게 식사를 차려준다는 ‘우렁각시’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용왕의 아들인 우렁이가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서 몰래 밥을 차려준다는 내용으로 바뀐다.

이화여대 독서모임 ‘구오’가 기존 전래동화에 여성주의적 시선을 입혀보자는 의도에서 책을 썼다. 구오(俱悟)는 ‘함께 깨닫다’라는 뜻이다. 1995년생 동갑내기 경민(국제학부·졸업), 다은(사회학과·졸업), 애린(영문학과·졸업) 유진(심리학과·수료), 현지(국어국문학과·수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하던 중 서로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서양의 『흑설공주』 전래동화에 여성주의를 입혀 재해석한 책을 중학생 때 읽은 적이 있어요. 깊은 페미니즘 시각이 들어 있어요. 생리혈이 나오기도 하고요. 여성주의적 모티브로 하나하나 바꿔놓는 게 신선했어요. 친근한 콘텐츠로 시각을 바꿔서 전래동화를 써보는 게 좋은 시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경민)

2017년 12월 말부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다은, 애린, 현지가 플롯을 쓰고 경민은 아이디어를 보탰다. 유진은 삽화를 그렸다. 크라우드 펀딩에서 1124명이 목표액의 1491%인 1491만 8800원을 후원하며 온라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30대 여성들 사이에서는 (페미니즘이) 흔한 생각인 것 같아요. 3~40대 분들 중에서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후원을) 생각하신 것 같아요.(애린)

페미니즘 전래동화 ‘선녀는 참지 않았다’를 펴낸 이화여자대학교 독서토론모임 ‘구오’의 (사진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유진, 경민, 현지, 애린, 다은
페미니즘 전래동화 ‘선녀는 참지 않았다’를 펴낸 이화여자대학교 독서토론모임 ‘구오’의 (사진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유진, 경민, 현지, 애린, 다은

‘처용’ ‘선화공주와 서동’ '선녀와 나무꾼' ‘우렁총각’ ‘장화홍련전’ ‘혹부리영감’ ‘콩쥐팥쥐전’ ‘반쪽이’ ‘바리데기’를 새로 해석해서 묶은 『선녀는 참지 않았다』가 지난해 12월 나왔다. 이후 출판사 제 의를 받고 ‘박씨전’을 추가한 개정판을 최근 내놓았다.

“저희 이야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독자분들이 (책을 읽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양한 이야기의 상상력을 펼치게 하고 싶었어요. 계층적으로 상승해야 성공했다고 불리는 내용의 결말이 많더라고요. 다양한 계층이 우러러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애린)

자신의 처와 역신이 관계를 맺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구슬픈 노래를 불러 역신이 도망쳤다는 『처용』과 계모가 장화와 홍련을 죽이기 위해 사주하는 『장화홍련전』도 이 책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성인 처용이 남편을 강간한 역신을 단칼에 베어버린다. 계모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장화와 홍련을 보호한다.

“‘처용’에서는 성범죄 경각심을 주고 싶었어요. 또 기존의 성역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어요. ‘장화홍련전’에서는 계모를 긍정적인 존재로 바꿔서 여성연대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꽃신을 신으면 여자라고 생각하는 시각도 바꿔보고 싶었어요”(다은)

졸업을 하거나 졸업을 앞둔 다섯 사람은 대학원에서 공부하거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페미니즘을 접한 뒤 나서는 새로운 사회에서 이들은 낯선 풍경을 만난다고 했다. “제 친구가 한 회사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관이 페미니즘 이슈를 물었다고 하더라고요. 많이 압박 받았다고 하더라구요.”(현지)

그런 과정을 바꿔나가는데 이 책이 한몫하기를 다섯 사람을 원했다. “어린이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인물이 있을 수 있고 여성들도 서로를 시기하는 게 아니라 연대할 수 있다는 상상을 주고 싶습니다.”(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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