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 삶을 쓰다
이름 없는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 삶을 쓰다
  • 김진수 기자
  • 승인 2019.06.21 11:55
  • 수정 2019-06-21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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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중년 여성들의 구술생애사 쓴
『할매의 탄생』 최현숙 작가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 김은화 작가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
대구 달성군 우록리 할머니들
노동·가부장제 속에서도
견뎌낸 삶의 강인함 포착

출판사 딸세포 대표 김은화
가난과 이혼 이겨내고
생계부양자로 집안 이끈
엄마의 삶 조명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의 김은화 작가와 대구 달성군 우록리 할머니들의 생애를 기록한 ‘할매의 탄생’의 저자 최현숙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의 김은화 작가(왼쪽)와 대구 달성군 우록리 할머니들의 생애를 기록한 ‘할매의 탄생’의 저자 최현숙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리 사회에서 가사 노동을 하고 생계 부양을 하는 여성들의 삶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여성들의 가사 노동은 당연시됐고 생계부양자는 남성이라는 공식 속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는 묻혔다.

『할매의 탄생』(글항아리)을 쓴 최현숙 작가와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딸세포)를 펴낸 김은화 작가가 각각 노년·중년 여성들의 구술생애사를 담아낸 건 한 시대를 지탱해 온 여성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2017년 초 구술생애사 강의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났다.

10여 년 전부터 구술생애사 책을 펴낸 최 작가는 이번엔 대구로 향했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산골짜기 마을에 사는 조순이, 유옥란, 이태경, 김효실, 곽판이, 임혜순 6명의 할머니의 구술생애를 담았다. 할머니들의 사투리를 그대로 담아내 친근함을 더했다.

“2016년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들을 다룬 『할배의 탄생』을 펴낸 뒤 언론 인터뷰나 관련 글을 일간지에 썼는데 우록리에서 노인분들과 한글반 수업을 하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에게 연락이 왔어요. 할머니들의 구술생애사 작업을 해달라고 했어요. 우록리는 깡촌이기도 하고 사투리가 낯설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밥도 주고 재워준다고 해서 하게 됐어요.(웃음)”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의 김은화 작가와 대구 달성군 우록리 할머니들의 생애를 기록한 ‘할매의 탄생’의 저자 최현숙 작가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의 김은화 작가(왼쪽)와 대구 달성군 우록리 할머니들의 생애를 기록한 ‘할매의 탄생’의 저자 최현숙 작가

최 작가가 할머니들의 고달픈 삶에만 주목한 건 아니다. 선거철 정치인조차 거의 찾아오지 않는다는 깊숙한 마을에서 최 작가는 할머니들의 강인함을 포착해낸다. 고된 노동의 현장을 버텨내온 이야기를 할머니들의 사투리까지 그대로 살려서 써내려갔다. 할머니들은 늘 일을 했지만, 따뜻한 대접을 받은 기억은 없다. 삶의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외롭기도 하다.

“‘삶의 경험을 드러내는데 왜 가난한 사람을 구태여 찾아가느냐, 고난의 전시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는 있어요. 가난이든 문화적 소외이든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든, 고난을 겪은 사람은 고생을 했고 상처도 많아요. 하지만 어쨌든 그걸 견뎌내고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자신 안에 힘이 있는 거예요. 겪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힘. 사회는 그 사람들을 불쌍하거나 쓸모없다고 봐요. 그래서 본인들도 자기들이 겪은 고난에 대해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누군가 그 당사자들에게 당신의 삶이 쓸모 있었다고 읽어주는 거예요. 고통이나 가난을 본인들이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필자가 화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유효한 쓸모’라고 생각해요”

『할매의 탄생』 / 글항아리 / 1만9800원 | 『나는 엄마가 먹여살렸는데』 / 딸세포 / 1만4800원
『할매의 탄생』 / 글항아리 / 1만9800원, 『나는 엄마가 먹여살렸는데』 / 딸세포 / 1만4800원

김은화 작가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 엄마의 구술생애사 작업에 뛰어들었다. 가난과 이혼을 부끄럽게 여긴 엄마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직접 1인 출판사 ‘딸세포’를 차린 그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444명의 독자들에게 후원을 받아 책을 출간했다.

“엄마가 공장 노동자, 부녀회, 한복학원 다닐 때 찍은 사진에 같이 나온 여성들이 있었어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이잖아요. 저임금 노동을 하면서 생계부양자로 살아오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배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됐어요.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는 가사와 육아, 시부모 돌봄 뿐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한 여성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1956년생인 김 작가의 어머니인 박영선(가명) 씨는 3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1972년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방문 판매원, 가정 교사, 빵집 종업원, 만화방·하숙집·한복집 주인·요양 보호사 등 지금까지 거쳐 온 직업만 11개다. 마산통신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박영선 씨는) 평생 일을 해오셨잖아요. 그 시대에 많이 배우지 못했거나 많이 가지지 못한 여성들이 했을 노동들예요. 사회적인 맥락을 이야기해주는 위치죠. 자신의 삶이나 자기 엄마의 삶처럼 읽었을 사람들이 많았을 거예요. 세대 간의 연결이죠.”(최현숙)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 김은화 작가와 대구 달성군 우록리 할머니들의 생애를 기록한 ‘할매의 탄생’ 저자 최현숙 작가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 김은화 작가(왼쪽)와 대구 달성군 우록리 할머니들의 생애를 기록한 ‘할매의 탄생’ 저자 최현숙 작가

김 씨는 구술생애사를 진행한 뒤 답답했던 엄마의 행동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왜 가난한데 퇴직금을 받지 않았을까, 왜 더 빨리 이혼하지 않았을까‘같은 생각들이다. “엄마가 일하던 요양원에서 퇴직금을 받지 않고 나왔어요. 요양원 원장과 사이가 좋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 아니냐고 엄마에게 화를 냈어요. 현숙 선생님에게도 ‘그게 말이 되냐고’ 했죠.”

“‘그 시대에는 인간관계가 우선이라서 노동권이나 근로기준법 같은 따지는 문화가 아니다.’라고 했어요.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까지 깨면서 불편해지고 싶지 않은 거죠.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최현숙)

“엄마가 책이 편집되고 되고 나서 ‘내가 죽기 살기로 이혼하고 너희를 선택하고 키워왔다는 거 하나만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제가 ‘엄마가 살아온 게 멋있고 이혼한 게 강단 있다고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했어요. 그러자 엄마가 ‘과거를 껴안아봐야겠다’고 하더라고요.”(김은화)

두 사람에게 구술생애사가 왜 필요한지 물었다. “직접 글을 쓰기 힘들거나 가난해서 많이 배우지 못한 사회적인 약자를 찾아가는 게 구술생애사의 기본적인 방향이에요. 우리 사회에 많이 나온 목소리, 담론, 역사는 ‘가진 사람’이나 정치 권력의 입맛에 맞춘 것들이 많거든요. 그런 공식적인 기록들만으로는 우리 사회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거든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나 6.25전쟁 같은 사건을 국가가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의 느낌, 해석으로 자료를 만드는 게 의미가 있어요.”(최현숙)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건드리는 게 있어요. 영화 ‘기생충’을 보면 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위층을 향해) ‘리스펙’(존경한다는 뜻)이라고 외치잖아요. 저도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전혀 모르고 깔고 앉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소외된 분들의 이야기를 몰라서 없는 사람 취급하고 사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 경계를 넘어서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구술생애사의 힘이에요.”(김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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