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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영화의 퍼스트레이디, 락흐산 바니-에테마드 감독이 이란 여성들의 생활과 문제를 그린 영화가 최근 미국에서 개봉했다.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진지한 영화에 대한 비판의 중심에는 늘 ‘대중성’이라는 잣대가 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 액션 영웅의 세계를 펼치는 할리우드 주류영화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대중성을 내세운다. 예술영화들은 따분하고 비대중적이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난 이란 영화를 사례로 들어 과연 대중의 기호라는 것이 선천적으로 액션과 판타지를 좋아하게 되어 있는지 되묻고 싶다. 대중의 취향이란 것도 결국 사회에서 제공하는 선택 안에서 길들여진 게 아닐까.

이란 영화를 예로 드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예술영화로 받아들이는 이란 영화 대부분이 이란 내에서는 흥행작들이란 점이다. 이란이 할리우드 영화 수입을 금지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라는 점이 할리우드와 전혀 다른 류의 영화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주요 이유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란 영화인들은 할리우드와의 경쟁에서 보호받는 셈이지만 혹독한 검열은 이들에게 커다란 장애물이 된다. 게다가 여성억압이 심한 이슬람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감독들이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점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최근 미국에서 개봉된 이란영화 <도시의 속내>(영어제목 Under the Skin of the City)는 ‘이란영화의 퍼스트레이디’로 불리는 락흐산 바니-에테마드 감독의 작품이다. 92년 이후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통해 이란 여성들의 생활과 문제를 담아온 것으로 알려진 바니-에테마드 감독의 작품이 미국에서 개봉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 게다가 <도시의 속내>는 이란 내에서 크게 히트한 흥행작. 영화는 또 이란 영화비평가들에 의해 2001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됐고,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도시의 속내>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연상시키듯 가난한 노동자 여성의 고단한 삶을 통해 이란 사회를 비판한다. 주인공은 중년여성으로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투바. 영화가 시작되면 한 TV 다큐멘터리 팀이 투바에게 카메라 앞에서 이번 선거를 통해 바라는 점을 이야기하라고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선거는 97년 이란에서 있었던 총선으로 개혁에 대한 기대가 컸던 선거. 하지만 투바는 미리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이번에 선출되는 사람들이 신에 대한 믿음이 있고 특히 주택문제와 복지개선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게 되어 있지만 부끄럽고 떨려서 더듬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다.

50세가 넘은 투바가 겪는 고단함은 공장에서 그치지 않는다. 남편은 몸이 불편해 일을 하지 못하고 생계는 투바와 장남 압바스의 어깨에 걸쳐져 있다. 똑똑하지만 대학에 갈 형편이 되지 못해 의류회사 사장의 개인비서로 일하는 압바스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성실한 청년. 남동생과 여동생만은 자기가 못한 대학에 보내는 게 목표다. 그는 일본 비자를 얻어 일본에서 몇 년 돈을 벌어온다는 계획을 세우고 비자대행사에 낼 목돈을 구하고자 애를 쓴다.

고등학생인 둘째 아들 알리는 좌파 정치에 관심을 가진 운동권 학생으로 수시로 감옥을 드나들어 부모의 애간장을 태우고, 중학생인 막내딸 마부에는 사춘기 소녀로 엄마를 도와주는 것보다는 옆집의 단짝 친구와 어울리는 데 더 열중한다. 그 단짝 친구가 오빠한테 매일 매맞고 살다가 어느 날 가출해버리고, 가출한 친구를 몰래 만나려고 나갔던 마부에는 비행 청소년으로 오해받아 경찰서에 끌려가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투바의 맘을 아프게 하는 것은 시집간 장녀. 가난에 대한 울분을 아내에게 쏟아붓는 남편한테 흠씬 두들겨 맞을 때마다 만삭의 몸으로 어린 손녀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피난오기 때문이다. 흥분한 압바스는 누나를 시집에 다시는 보내지 말라고 하지만 두 식구를 더 거느릴 형편이 못되는 투바는 항상 딸을 달래서 남편에게 돌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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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는 투바에게 유일한 위안은 초라하나마 집 한 채가 있어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점. 하지만 일본행만을 유일한 출구로 여기는 압바스는 아버지와 손잡고 엄마 몰래 집을 팔 궁리를 한다. 결국 압바스는 집을 판 돈으로 비자 수수료를 내지만 사기에 걸리고, 다시 그 돈을 만회하기 위해 마약 밀매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만다.

바니-에테마드 감독은 투바 가족의 수난을 통해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살고 있는 저소득층의 문제를 리얼하게 그리면서 이란 사회를 비판한다. 다소 멜로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영화의 끝부분은 매우 감동적이고 강렬하다. 다시 찾아온 TV팀의 카메라 앞에서 투바는 예의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일장연설 자신이 겪은 일을 성토한다.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누가 이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찍어주었으면 좋겠다”며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 기술적인 문제로 녹음이 안됐다는 설명에 투바는 “그런데 도대체 누구한테 이 영화를 보여주느냐”고 묻는다. 영화매체에 대한 감독 자신의 고민을 대변하는 대목이다.

재미 영화평론가, USC영화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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