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난 세 여자, 에코 페미니스트를 만나다] 건물주 딸 페어는 어쩌다 에코페미니스트가 되었나?
[길 떠난 세 여자, 에코 페미니스트를 만나다] 건물주 딸 페어는 어쩌다 에코페미니스트가 되었나?
  • 최형미 여성학자
  • 승인 2019.06.05 18:45
  • 수정 2019-06-07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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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난 세 여자, 에코 페미니스트를 만나다] (끝)

태국 방콕을 플라스틱 없는 카페
‘베터문’…외부 음식 반입 허용
수익 보다 가치 찾는 세 사람이 운영

["Good girls go to heaven, bad girls go everywhere."(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지 간다.) 여자들에게 여행은 독립을 선언하는 행위이며, 경계를 넘는 반란이다. 다큐 감독 유혜민, 환경운동가 고금숙 그리고 여성학연구자 최형미는 (재)숲과 나눔 지원을 받아 인도, 케냐 그리고 태국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다. 긴 여행에서 길러진 통찰과 의지의 근육은 우리를 더 먼 곳으로 이끌 것이다. 우리가 함께 만났던 여성운동가, 환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순간순간의 힘이 되었다. 나이도 살아온 환경도 다른 세 여자가 여행에서 만난 에코 페미니즘과 지역 여성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전한다.]

카페 베터문에서 금숙, 페어, 유혜민 감독, 최형미.  ©최형미
카페 베터문에서 금숙, 페어, 유혜민 감독, 최형미. ©최형미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특권이 아니라 억압 당한 경험이 인식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침묵을 깨고 자신의 억압과 폭력 경험을 사람들 앞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만난 젊은 페미니스트는 내게 고민을 이야기 했다. “출신 학교를 숨기고, 아버지 직업을 숨기고, 심지어 직장을 그만둬도 나의 특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가난한 척을 거짓 행동을 할 수도 없고, 무지한 척 할 수도 없잖아요.”

여성주의 인식론을 연구한 산드라 하딩은 주변화 되고 차별당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강한 객관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사회 변화를 이끄는 리더들은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와 동갑내기인 패기 메킨토시는 하딩의 주장을 들었을 때 당황했을 것이다. 부유한 집에서 자라 탁월하게 공부를 잘했으며, 의사 남편과 함께 페미니스트 교수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삶이 부정당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가진 내가 사회에 대해 무지하다는 말인가?’ 불끈 계급 갈등을 일으키는 논쟁 지점이다.

그러나 패기 메킨토시는 자신의 특권이 그의 눈을 가렸다는 것을 인정했다. 박사를 받았지만 세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필자가 1년 전 그의 인터뷰 통역을 맡았을 때, 그는 심지어 몇날 며칠을 울며 기도했다고 했다. 그는 백인, 중산층, 이성애라는 특권의 벽안에 갇혀서 세상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자신을 개탄했다. 그 이후 그는 ‘백인 특권과 남성 특권’이라는 논문으로 특권의 특성, 그것을 자각하는 방법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취된 것이라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며 차별과 폭력을 야기하는 특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카페에서 손님들에게 무료 대여해주는 식기들. 손님들은 사용 후 직접 설거지를 해두면 된다. ©최형미
카페에서 손님들에게 무료 대여해주는 식기들. 손님들은 사용 후 직접 설거지를 해두면 된다. ©최형미

실제로 자신의 계급과 특권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세 여자가 여행에서 만난 태국여자 페어 이야기를 그래서 꼭 하고 싶다. 금숙은 여행의 마지막 날까지도 방콕 변두리에 제로웨이스트 숍을 하나 더 발견했다고 서둘러 나섰다. 택시를 타고 지도를 보며 그곳을 찾아 나섰다. 시장 골목을 지나 도착한 곳에는 커다란 건물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궁전처럼 높은 천장과 세련된 카페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순하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주인장 페어가 우리를 맞았다. “저는 건축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친한 친구 두 명과 함께 어떻게 태국의 플라스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을 했지요. 그들은 생물학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와 신재생에너지 엔지니어로 일하는 친구들이에요. 우리는 함께 리필 스테이션을 차리기로 했지요.”

약 2년 전 그들은 세제 벌크(Bulk) 등 대안용품을 가지고 시장, 지역을 찾아가 플라스틱 용기 없는 임시 숍을 열었다. 얼마를 벌까를 생각하지 않고 얼마를 손해 볼까를 생각했다고 한다. 투자한 금액의 3분의 1만이 되돌아 왔을 때 그들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페어는 부모님을 설득해 그들의 건물을 빌려, 아예 리필 스테이션 본부를 만든 것이다.

“우리 카페의 이름은 베터문이예요. 달은 좋은 스피릿(spirit)을 의미하니 이곳은 스피릿이 좋은 달나라인거지요. 게스트하우스와 함께 운영되고 있는 베터문의 각각 방은 모두 모양이 다르지요. 우선 폐 가구를 고쳐 업사이클 하였으니 똑같은 것이 나올 수가 없어요.” 각각의 가구에는 특유의 미적 감각이 살아있었다. 이곳의 로고는 토끼다. 그의 반려토끼 뚜이뚜이도 베터문의 멤버가 된 것이다. “태국 사람들은 무조건 싼 것을 찾아요. 환경교육도 없고요. 그러니 그들에게 1회용 포장지나 용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사람들이 비닐에 싼 물건을 바리바리 들고 가게에 들어설 때, 일일이 충고하는 것이 가장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지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수 있었을까? 그가 선택한 것은 더 강력한 금지령을 내리기 보다는 고객에게 더 많은 편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가게 한쪽에 그릇과 접시를 준비했어요. 밖에서 비닐에 싼 음식을 가져오지 말고 근사한 그릇과 접시를 가지고 나가 음식을 사가지고 들어와 카페에서 품위 있게 먹을 수 있게 했지요. 물론 다 쓴 식기는 자신이 씻어 되돌려 놓으면 돼요.” 처음 이런 일을 제안했을 때 부모는 반대했다고 한다. 카페 음식을 팔아도 부족한 판에 싼 시장음식을 가져와 먹게 하는 그의 전략은 이상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페어는 말했다. “이건 윈윈 전략 이예요. 손님은 편리하게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주변 시장 상인들은 더 많은 음식을 팔수 있으며, 저희 가게는 손님이 더 많아졌어요. 처음에 스탠레스 빨대를 25개 준비했는데 하나도 없어지지 않았어요.”

베터문에는 스무종이 넘는 세제와 대안 생리대, 면도기, 심지어 화장품도 리필해서 팔았다. “저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어디에서 왔는지 꼭 물어봐요. 그리고 그들이 이런 숍을 차린다고 하면 도와주지요. 찾아가서 워크숍을 하기도 하지요.” 페어가 리필 스테이션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겠다는 것일까? “저는 사람들에게 말하지요. 이 사업으로 돈을 벌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제 모든 사업 경험과 지식을 공짜로 나눠주지요.” 그는 베터문에서 베터스피릿을 나눠주고 있었다. 머리로는 손해를 보지만, 여기 발을 디딘 사람들은 악착같이 이익을 남기려는 계산이 아니라 베터스피릿으로 거래를 한다. 서로를 살려내려는 정신이다.

마음 속에 노래가 흐르고 흥이나 베터문을 나오며 계산대 앞에 섰다. “대표님이 음식 값 받지 말라고 했어요.” 스태프가 말한다. 사람을 배려하는 그의 태도는 끝까지 빛이 난다. “아니에요. 저희도 응원하게 해주세요.” 특권을 가진 사람이 손해를 감수하며 세상을 바꿀 때, 그의 스피릿은 아름답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페어와 친구들을 응원하며, 세 여자는 이렇게 즐겁게 돈을 썼다.

Better Moon x Refill Station
2031 Better Moon Cafe, Sukhumvit 77/1 Alley, Klongtoey Nuea, Khet Watthana, Krung Thep Maha Nakhon 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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