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있는 그 곳에 사람이 산다] 68년 된 낡은 버스터미널, 사진갤러리로 멋지게 탈바꿈
[온기 있는 그 곳에 사람이 산다] 68년 된 낡은 버스터미널, 사진갤러리로 멋지게 탈바꿈
  • 권혁년 도시재생팀 기자
  • 승인 2019.06.08 08:02
  • 수정 2019-06-07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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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마을
여름철엔 더위 대피소
겨울철엔 따뜻한 사랑방 역할
김재도씨, 63년간 터미널 운영
평생 찍은 사진 20만장으로
매년 3~4회 사진전 열어

1일 25명 이용, 월 매출 300만원
20년째 적자에도 7080 노인들
병원행 버스 때문에 문 못 닫아
사랑방 같은 사진도서관 만들고파
김재도 탑리버스터미널 대표가 터미널 내부에 전시된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대표는 버스터미널을 만든 아버지의 뒤를 이어 65년간 버스터미널을 지키고 있다.
김재도 탑리버스터미널 대표가 터미널 내부에 전시된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대표는 버스터미널을 만든 아버지의 뒤를 이어 65년간 버스터미널을 지키고 있다. ©권혁년

‘아직 제 마음이 다 자라지 못해 마음으로 보지 못하고 눈으로만 보고 가는 게 아쉽습니다. 해해년년 좋은 작품으로 선생님을 뵈었으면 합니다’ -2018년 겨울 권기남. ‘추억을 간직한 이곳에 문화공간까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향에서 구.

11권 째 작성하고 있는 방명록 중 10권에서 뽑은 문장이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마을. 국보 77호로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5층 석탑이 마을 한가운데 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자연스럽게 탑이 있는 동네. 탑리가 됐다. 이곳엔 1951년 만들어져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는 68년 된 금성탑리버스터미널이 있다.

버스 정류장이라고 하지만 버스를 타고 내리는 플랫폼은 없다. 예전에 8개의 플랫폼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흔적만 남아 있다. 겉보기엔 평범한 시골 버스 터미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안쪽은 우리가 상상하는 대합실을 뛰어 넘었다. 버스 승차권을 구입하는 매표소가 한쪽에 있고 매표소 위엔 오래 전 사용했던 버스터널미널 시간표가 있다. 반대편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버스터미널 시간표가 자리하고 있다. 이것까지는 일반 버스터미널과 똑같다.

흰색 벽면으로 곱게 단장한 그곳엔 40여장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 버스터미널 대표이자 사진작가 김재도씨의 ‘내고향 의성’ 전이다. 지난해 열었던 ‘독도 사진전’에 이어 두 번째 전시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새벽안개와 함께 마늘을 파종하고 있는 노부부의 사진이다. 의성의 대표 농산물 하면 바로 마늘이다. 화산재가 섞인 거무튀튀한 흙에 흰색 마늘을 가지런하게 심고 있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눈이 저절로 맑아졌다. 백발 머리에 갈색 중절모를 눌러 쓴 영국신사 같은 김 대표를 만났다.

“1951년에 대구여객에서 사람이 찾아왔어요. 이곳에서 대구로 가는 버스를 운영하고 싶은데 버스정류장을 만들어 줄 없냐고 묻더라고요. 가난했지만 맘씨 좋은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생각해서 흔쾌히 허락을 했어요.”

그는 버스 정류장의 역사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이곳에 버스 정류장을 만든 것이 그의 나이 14살 때였다.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다고 했다. 그때는 군용차만 있을 때라서 버스는 그야 말로 고생길이었다고 한다. 탑리에서 대구까지 가는 시외버스를 처음으로 운행했는데 무려 5시간 30분이 걸렸다. 현재는 1시간이면 된다. 하루에 딱 한번 탑리와 대구를 왕복했다. 새벽 6시에 출발해 정오쯤 대구 서문시장에 도착하면 30분 동안 정차하고 다시 돌아왔다. 버스 승객들은 30분 동안 시장에 물건을 갖다 주고 마을에 필요한 물건을 급하게 구입해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당시 버스는 군용 차량을 개조해서 만든 것이어서 긴 쇠꼬챙이를 꽂고 돌려서 시동을 걸었다. 겨울이면 부동액이 없었기 때문이다. 버스 시동을 끄고 냉각수를 모두 빼서 버리고 아침에 다시 물을 끓여서 채웠다. 당시 버스에는 운전사와 조수, 차장 등 3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의 숙식은 버스터미널에서 해결해 줬다. 김 대표의 아버지는 버스터미널 개통 후 3년 만에 돌아가셨다. 그 후로 김 대표가 맡아서 65년을 운영했다.

1970년대 탑리버스터미널 전경. 당시 터미널 이용 승객은 하루 최대 2000명까지 기록할 정도로 호황을 맞았다. ©김재도
1970년대 탑리버스터미널 전경. 당시 터미널 이용 승객은 하루 최대 2000명까지 기록할 정도로 호황을 맞았다. ©김재도

초창기의 고생도 있었지만 1970~90년대는 그야말로 호황기였다. 당시 탑리 인구는 최대 1만8000명까지 늘었다. 그리고 터미널을 이용하는 승객은 하루 최대 2000명까지 기록했다.

“제 자식이 4명인데 버스터미널을 해서 모두 교육을 시키고 시집, 장가를 보냈어요. 저에겐 너무나도 소중하고 고마운 곳입니다”

하지만 2000년부터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시골에도 자동차가 많이 들어왔다. 탑리의 인구도 계속 줄어서 현재는 4500명 정도다. 최대치의 4분 1 정도다. 20년째 적자가 이어졌다. 그래도 그는 버스터미널의 문을 닫지 않았다.

“6년 전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어요. 죽기 전까지도 이제 그만 이 터미널을 접자고 이야기를 했어요. 하지만 동네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이곳에 남아서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70~80대 노인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동네 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병을 가지고 있어서 대도시인 대구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해요.”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 김대표의 말이다.

현재 이 터미널의 하루 이용객은 25명 선이다. 대구까지 버스 비용이 6800원 정도 한다. 터미널의 한 달 매출은 300만원 정도다. 이 금액에서 터미널에게 주는 것은 10% 30만원이 한 달 수입의 전부다. 터미널에는 현재 하루 여섯 번 버스가 운행되는데 버스 시간 30분전에 나와서 매표를 도와주는 주민이 있다. 한 달 급여가 70만원이다. 차액을 김대표가 16년 동안 보전해 왔다. 4년 전부터는 의성군에서 차액을 보조하고 있다.

버스는 적자를 보면 지자체에서 보상을 해 주지만 버스터미널은 보상이 없다. 김대표의 노력으로 버스터미널은 경상북도 노포 기업으로 등록했다. 그리고 대합실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 하고 받는 혜택이다. 

탑리버스터미널 외부 전경. ©권혁년
탑리버스터미널 외부 전경. ©권혁년

버스터미널 옆에 작은 화장실 있다. 너무나 깨끗하다. 이것도 김 대표의 노력이다. 노인 일자리(공공근로) 지원을 받는 마을 주민 한명과 함께 매일 새벽부터 청소를 한다. 작은 대합실과 버스 주차공간까지 깨끗하게 쓸고 닦는다.

버스터미널 맞은 편엔 노인정이 있다. 이곳에서 만난 김화자 할머니는 “버스 터미널이 없어지면 시골 노인들이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 길거리에서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는데 터미널 안에서 안전하고 쾌적하게 기다릴 수 있고 또 사진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의성군 김승구 계장은 “이곳은 여름엔 어르신 더위 대피소로 겨울엔 따듯한 마을 사랑방으로 인기를 끌고 있어요. 김재도 할아버지가 올해로 83세인데 더욱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마을 어르신들이 아주 편하게 버스터미널을 이용했으면 합니다”라고 전했다.

김 대표가 사진과 인연을 맺은 것은 39년 전인 1980년 당시 독일에서 광부를 하고 돌아온 마을 후배가 김대표에게 수동 카메라를 팔았다. 그렇게 우연히 구입한 카메라를 가지고 의성군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터미널 대합실에서 버스 시간표를 바라보는 김재도 대표. ©권혁년
터미널 대합실에서 버스 시간표를 바라보는 김재도 대표. ©권혁년

1987년에 경북 의성에도 사진 동호회가 생겼다. 김대표 나이 50살 때였다. “당시 처음 생긴 사진 동아리를 찾아 갔는데 사람들이 저를 보고 약간 놀라는 눈치였어요. 시골에서 오십이 넘은 아저씨가 카메라 하나 들고 동아리에 가입하겠다고 찾아왔는데 회원들이 모두 20~30대였거든요. 하지만 제가 그랬죠. ‘사진 찍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요’” 그리고 크게 웃었는데 웃음 때문인지 자신을 회원으로 받아 줬다고 했다.

그 후 김 대표는 틈만 생기면 카메라를 들고 의성의 곳곳을 누볐다. 의성군 내 300여 개 리(里) 단위 마을을 다니면서 20만장 가까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15년이 흘러 정식으로 한국사진작가로 등단을 했다. 그의 데뷔작은 놀랍게도 독도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독도를 한번 가보고 그 곳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한번은 경북경찰청의 도움으로 독도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나오려고 했는데 풍랑을 만나서 8일 동안 갇혔다. 갇혀있는 시간동안 그는 인생의 작품을 건졌다. 독도의 일출이다. 독도에서 본 일출엔 두 개의 태양이 떠 있는 것 같은 신비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게 찍은 독도 사진은 한 국회의원의 도움으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66점을 전시했다. 그 이후 현재 터미널에 만들어진 ‘김재도 갤러리’에서 지난해에 전시회를 한 번 더 가졌다.

버스 터미널 오른쪽엔 지금은 텅빈 상가가 있다. 이곳 1층에 김 대표의 사무실이다. 여기엔 3000권의 사진집이 있다. 고려인을 삶을 찍은 사진집부터 독도 사진집, 지자체에서 만든 사진집, 북한 사진집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저에겐 아직도 꿈이 있어요. 더 많은 사진집을 사거나 기증 받아서 이곳을 사진도서관으로 만드는 것이예요. 그래서 마을 주민들과 관광객에게 이곳을 사랑방으로 내놓을 겁니다. 사진을 보면서 옛 추억을 되새기고 함께 웃을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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