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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비는 이 여인에게 어떤 비밀을 알려주었을까요?”

<체칠리아 갈레라니> 레오나르도 다빈치, 1490년경, 유화

“중학교 3학년인 조카에게 <어린왕자> 책을 읽어봤냐고 묻자 얼떨결에 “응. 재밌었어” 하던 목소리가 금방 쑥 들어갔다. “아냐 아냐. 재미없었어.” 그리고 잠시 침묵. 그 뒤 이어진 볼멘 소리. “또 독후감 쓰라고 하려고 그러지?” 이런. “아냐. 그냥 물어보는 거야. 절대 독후감을 쓰라거나 그런 거 아냐.” 다짐을 하고 나서야 다시 돌아온 대답. “진짜 재밌었어.” “뭐가 재밌어?” “있잖아. 여우가 길들여졌다고 말하는 부분. 거기.” “왜? 너도 누군가에게 길들여졌어?” “음... 그건 말할 수 없어.” “누군데? 남자친구?” 잠시 침묵. “그 책 어디서 났어?” “엄마가 읽으라고 사줬어.”

반면에, 최신작 장래 희망은 작가인 초등학교 5학년 소녀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재미없어. 조금 읽다 말았어.” “어디까지?” “응. 앞에. 뭐더라. 뱀이 모자속에 들어가고 그러던 거.” “그럼 무슨 책이 재밌어?” “해리포터” “그건 다 읽었어?” “응. 비밀의 방이 제일 재밌어. 그리고 반지의 제왕도 재밌어.” “네 친구들은?” “친구들은 만화책만 봐. 책 안 봐.”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붙잡고 책 읽어라 소리 백날 해봐야 소용없다. 그렇다고 두들겨 팰 수는 없는 일. 많은 부모들이 책을 읽어야 생각도 커지고, 생각이 커져야 성숙한 인간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이 부모 맘대로 다 되면 그건 이미 아이가 아니다. 로봇이다. 거기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막상 책을 읽다가 질문이라도 던진다면? 이렇게. “엄마 왜 손가락은 다섯 개야?” “아빠, 수염은 왜 나?” “난 왜 엄마 딸이야?” 그 다음 나타날 부모들 반응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나름대로 진지한 딸에게 “그럼, 내가 네 딸이냐?” 발끈 화부터 내기 전에 ‘헵타드 사고력교육센타’ 원장인 차오름씨 말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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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할 줄 아는 아이가, 자기가 나아갈 길을 알고, 자기 자신을 안다. 자기 질문에 답한 사람의 고민도 알고. 자꾸 질문을 해야 자기 정체성도 찾는다.”

93년 사고력교육센타를 세우고 10년 넘게 사고력 향상을 위한 교육에 매진해온 그가 말하는 사고력 향상법은 간단하다. 열심히 질문하라. 그래서 책도 냈다.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조금만 도와주는 책. <어린왕자-생각의 불꽃이 타오르는 아이>(여성신문사 간)다. 그가 운영하는 ‘헵타드 사고력교육센타’에서 직접 아이들과 부딪치며 얻은 결과물이다.

“책을 잘 읽는 방법은 이해도 중요하지만, 의문을 제시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수학, 과학 같은 건 학교에서 가르치니 배우긴 배우고 먼 훗날 쓸모 있다니 그런가보다 하지, 현재 당장 도움도 안되고 쓸모도 별로 없다고 느끼던 게 바뀐다. 예를 들어 숫자 5를 우리 몸에서 찾으면 손가락 다섯 개다. 왜 손가락이 다섯 개일까? 5는 사실 자연 속 균형을 의미한다. 모든 균형있는 것은 5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서 저들 나름대로 질문을 던지고 저들 나름대로 해석도 내린다. 그러다 보면 눈에 띄는 변화로는 일단 독후감이 달라진다. 그전엔 배운 대로 줄거리 쓰고, 이 책에서 이런 걸 배웠다고 쓰던 방식에서 확 바뀐다. 온통 의문 투성이로. 독후감이 비평글 성격을 띤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독후감은 고문이다. 학교는 꼬박꼬박 독후감 숙제를 내주고, 중학교에선 수행 평가 점수까지 매긴다.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김민지 양은 아이들이 대개 인터넷에서 찾거나 친구가 쓴 걸 살짝 바꿔서 베낀다며 왜 독후감 숙제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입을 삐죽거렸다. 독후감 숙제에서 남의 것 베끼기 훈련을 한단 소리다. 대한민국 공식 명작도서이자, 이 책 모르면 간첩이거나 아직 지구에 적응하지 못한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어린왕자>도 그렇다. 삐죽삐죽 솟구친 머리에 망토를 걸치고 여우와 길들여지네 마네 하는 이야기를 나누던 어린왕자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선생님이나 부모들은 아이에게 은근히 요점을 일러준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길들여진다는 걸 이해하는 게 중요해.

“내생각엔 글만 아니라 그림도 중요하다. 알다시피 생떽쥐베리가 그림도 그렸다. 어린왕자는 귀도 없고 눈썹도 없다. 어깨엔 별을 달았고 장화에 달 박차를 어깨에 달았다. 칼도 들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린왕자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그 그림엔 더 많은 생각이 담겨있다. 그 그림 속에 담긴 상징성을 아이들이랑 토론하는데, 아이들은 그림을 통해 훨씬 더 잘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또 어린왕자 속 여우가 ‘밀밭을 보면 네가 생각날 거야’그러는데, 그 길들인단 거는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는 거다. 애들은 그걸 자기 경험속에서 받아들인다. 그건 엄마, 아빠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자기 삶 속에서 그걸 음미하고 끄집어내고 토론한다. 그런 접근이 필요하다. 그 책의 주제로가 아니라 애들 삶 속에서 그게 뭘 의미하는지를 파악하고 그러면서 자기화하는 것. 그거야말로 주체적 독서법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또 질문하고. 어린왕자 머리는 왜 노랄까? 어린왕자는 왜 어깨 위에 별을 달고 있을까? 어린왕자는 왜 왕자일까? 공주가 되면 안 되는 것일까?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신밧드가 “열려라 참깨!” 하고 외쳐서 보물단지의 문을 열었다면, 아이들 머릿속 생각의 보물단지 문을 여는 키워드는? “왜?”다. 중학생 딸을 두었다는 김소현씨는 “별 걸 다 물어본다. 솔직히 좀 미치겠다. 하지만 또 뿌듯하다. 아이 때문에 나도 공부한다. 그리고 모든 걸 새롭게 보게 됐다. 이 책을 읽고 어린왕자를 다시 봤는데, 전혀 다른 책 같았다”고 말했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던 광고 카피가 있었다. 그 말은 이렇게 바뀔 수 있다. 책 읽는 작은 차이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든다. 제발 스스로 생각하고 숙제하는 아이를 만드는 길은? 당신부터 물음표를 던져라.

조은미 기자coo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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