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지지형부터 파트너십 지지형까지 新부창부수

우리 사회에는 그동안 ‘여자가 잘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가 돈을 더 많이 벌면 남편을 바보 취급한다’는 등, 여성의 사회적 성공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했다. 여성의 내조는 미덕이고 남성의 외조는 무능력자의 자기방어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변해도 많이 변했다. 사회적으로 화려하게 성공한 아내와 그 옆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지지하는, 상대적으로 덜 성공한 남편의 모습이 낯설지 않을 만큼 사회 분위기가 변했다. 맞벌이가 결혼조건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요즘, 구시대적 ‘외압’에 방어막이 돼주고 물심양면으로 아내를 외조하는 이 시대 멋진 남성들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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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적극적 지지형 “남편은 보약”

개그계의 대모로 긴 생명력을 유지해온 개그우먼 김미화씨는 방송활동 외에 녹색연합 홍보대사, 사랑의 삼각끈 운동본부 본부장 등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인 수퍼우먼. 그가 이렇게 의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데는 뒤에서 강력한 에너지로 그를 지원해주는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스타의 남편답게 방송 모니터를 꼬박 꼬박 해주는 것은 물론 깔끔한 손끝으로 집안 살림을 거의 도맡아 해준다고 한다. 김미화씨가 그의 남편에게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팽팽하게 긴장된 방송활동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주는 그만의 애정표현 때문이다. “당신 정말 굉장한 사람이야. 당신이 잘되니까 내가 더 기분이 좋다”는 남편의 말은 이 세상 어떤 최고의 보약보다 달디달다고 말한다.

MBC 김병훈 기자의 ‘아내 외조사연’은 방송계에 신화(?)처럼 회자될 만큼 유명한 이야기다. 둘은 1984년 MBC에 기자와 아나운서로 입사한 입사동기다. 아내 고명인씨는 당시 사규에 따라 결혼 후 회사를 그만두었고 뭔가 전문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의대 입학을 결심했다. 남편은 적극 찬성했고 입시학원에 다니는 아내를 위해 머리 감을 물을 끓여주는 등 지극 정성으로 도왔다. 1년의 공부 끝에 중앙대에 입학한 후로는 바쁜 방송국 기자 생활에도 불구하고 ‘늙은’ 의대생 뒷바라지하느라 청소며 빨래, 요리까지 담당하며 아내는 공부에만 전념하게 했다.

아내 고명인씨가 의대 본과, 인턴, 레지던트 수련의 생활동안 열흘씩 집에 못 들어가는 날이면 남편은 영양이 풍부하고 맛있는 반찬과 속옷을 챙겨 학교로 배달하곤 했다. 이런 지극한 남편의 외조 덕에 그는 중앙대 의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현재 병원을 개업했다.

아내의 고마움에 대해 남편 김병훈 기자는 자신의 외조를 당연하게 여긴다. 아내가 내조하면 당연하고 남편이 아내 공부를 외조해 주면 화제가 되는 세상이 잘못된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피곤한 아내를 위해 옷도 다려준다. 아내가 다려주는 옷, 맛깔스런 음식을 받아보기만 한 남편들은 자신이 느끼는 기쁨을 모를 거라고 말한다.

장관 아내와 군수 남편의 하모니

우리나라의 여성 의회 진출은 179개국 가운데 네팔과 함께 96위에 머물고 있다. 그만큼 여성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가 힘든 것이 한국 사회다. 이처럼 열악한 남성중심의 정치권에서 당당히 활약하는 여성 정치인을 외조하는 남편들이 있다.

한명숙 환경부 장관의 남편 박성준(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 교수의 ‘내·외조 스토리’는 이미 정가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이대 불문과 재학시절 동아리의 회장, 부회장으로 만나 결혼한 한 장관은 남편을 통해 여성운동에 눈떴다고 말한다. 박성준 교수는 인혁당 사건으로 결혼 6개월만에 투옥됐고 13년간 부부는 서신교환만으로 사랑을 이어갔다. 한 장관은 이 시절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여성학을 들으며 여성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 후 박 교수는 바쁜 한 장관을 대신해 아들 육아의 3분의 2를 홀로 담당하며 한 장관을 외조했다. 퀘이커교도이기도 한 박 교수는 ‘비폭력 평화연대’ ‘아름다운 가게’의 공동대표로 활동 하면서 한 장관에게 깊이 있는 조언을 해주는 등 든든한 인생의 동지와 같은 남편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한 김화중 민주당 의원의 남편은 고현석 전남 군수다. 민선 2, 3대 기초단체장을 역임하고 있는 고 군수는 김 장관과 서울대 재학시절 만나 결혼했다. 고 군수와 김 장관은 그 동안 농협과 간호 업무 등 각자의 분야에 매진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내·외조의 모범적 사례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01년 6월 철도역사 102년만에 최초 여성 역장이 된 박영숙 부천역장 또한 남편의 외조가 한몫을 했다. 기획예산과에서 일할 당시 박영숙은 날밤을 새기 일쑤였고, 본청이 대전에 있어 직원 아파트에 머물며 2개월에 한번 꼴로 남편과 아이들을 상봉(?)할 때도 있었다. 6년 동안을 남편과 거의 별거하다시피 살아온 그는 일을 가진 커리어우먼인 자신을 가장 이해해주는 ‘아군’인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세월이었다고 표현했다. 아이들 교육은 전적으로 남편의 몫. 오랜만에 집에 와 모자란 잠만 자는 자신을 위해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남편의 배려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그러나 남성들의 틈바구니에서 워커홀릭처럼 살아온 박영숙 역장은 ‘나 밥 지어본 기억이 아득하다’고 당당히 말할 만큼 일을 사랑한다. 자칫 가정을 가진 여자는 일에 태만하다는 소리가 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에, 일을 선택한 여성이라면 가정과 일 중 하나는 과감히 포기하라는 것이 그의 충고다. 그녀의 선택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이해와 적극적인 외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파트너십 지지형 “밀고 끌고”

핸드볼계에 주부선수로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허영숙 선수(제일화재)는 지난 2000년 국가대표 육상선수 출신인 박병준(안산공고 체육교사)과 결혼한 후 시드니올림픽의 성적부진과 고된 훈련으로 입은 부상으로 무릎 수술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남편의 외조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핸드볼 선수의 입장을 잘 이해해준 남편은 신혼살림도 팀의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차려 훈련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해주었기 때문.

체력의 한계 때문에 힘들어 할 때는 ‘집안 살림은 내가 다 할 테니 운동에만 신경쓰라’며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밥은 물론 청소에 빨래까지 다 해놓고 뭉친 근육을 풀어준다고 마사지까지 해주는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는 힘을 얻는다. 하지만 남편의 따뜻한 외조가 시댁 쪽에서 보면 ‘남편을 부려먹는다’는 얘기로 와전되진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자인한방병원의 류은경 원장은 매주 목요일 오후면 영등포에 위치한 자선병원인 요셉의원에 들러 행려병자와 무의탁 연고자들을 무료진료 한다. 얼마 전부터는 ‘아름다운 재단’의 1% 나눔운동에 적극 동참해, 매달 직원들의 월급 중 1%를 재단에 기부하고 병원 수익의 1%를 함께 기탁한다는 약정을 했다.

류 원장이 이처럼 남을 돕는 일에 적극적일 수 있는 것은 같은 병원에서 정형외과를 담당하고 있는 남편 김병헌씨의 외조 덕이 크다. 남편 역시 자선병원 무료진료에 동참하며 적극적으로 나눔의 실천을 함께 하고 있다.

가수 주현미씨는 남편과 24시간을 함께 한다. 그의 매니저 역할을 남편이 하고 있기 때문. 그의 남편은 과거 그룹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리드 기타리스트였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접고 지금은 오직 아내의 일만 전담하고 있다.

음악을 한 남편의 전력 덕은 그대로 주현미씨에게로 옮겨왔다. 그만큼 그를 이해할 수 있고 음악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음반을 낼 때나 녹음할 때 늘 남편이 참여한다. 그의 곡 ‘추억으로 가는 당신’도 남편이 만든 곡이다. 가수 주현미씨는 자신이 오래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은 바로 참모 같은 남편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 말한다.

왕비 대접은 노우! 에너지를 줘!

게임유통업체 비스코의 윤용철 회장은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집안에서 자란 아내 이지영씨와 결혼 후 신혼을 일본에서 보냈다. 당시 이지영씨는 남편의 내조를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

귀국 후 범아그룹의 경영에 나선 윤용철 회장은 아내에게 범아그룹 내 범아정보통신(비스코)을 신설한 후 대표자리를 강권했다. 가사와 육아의 50%를 분담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남편의 외조에 힘입어 경영에 뛰어든 이 사장은 비스코를 탄탄한 조직으로 만들었다. 둘은 경영권 침해는 피하고 주주로서, 소비자로서 필요한 충고는 거침없이 한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서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업과 가정의 ‘평생 파트너’가 된 것이다.

제이씨엔터테인먼트 김양신 사장은 주위에 남편 만한 인재가 없다는 생각에 남편 백일승 씨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김 사장은 백 부사장이 집안에서는 최고의 남편이고 회사에서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라고 말한다. 백 부사장은 아내의 아침을 손수 챙기는 자상함에 여성의 사회활동을 편견 없이 후원하는 열린 사고까지 겸비한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아내와 함께 일하면서 사업가로서의 아내를 존경하게 됐다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여성이 경쟁사회에서 제 몫의 성공을 차지하려면 필수조건으로 남편의 배경과 외조가 가장 큰 덕목으로 꼽힌다. 그만큼 여성의 사회적 성공이 어렵다는 말이다.

호주제 폐지 운동가이자 한의사인 고은광순씨는 ‘진정한 아내외조 방법’에 대해 각자의 일을 성실히 하면서 동시에 상대에게도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라 말했다. 농담이라도 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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