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몰래 피임기구 제거하는
‘스텔싱’ 처벌 어려운 한국
독일·스웨덴·캐나다 등은
가해 남성 성범죄로 처벌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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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최모씨는 아찔한 기억이 있다. 3년 전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 후에 분명 관계 전 착용한 콘돔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놀라서 이를 걱정하자 남자친구는 웃으며 “그럴 수도 있지 않냐. 널 책임질 거니까 걱정마라”고 말했다고 한다. 최씨는 결혼을 거부하는 자신을 임신시킬 의도로 남자친구가 콘돔을 몰래 제거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헌법재판소가 낙태를 형법상 처벌하는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선고를 내린 가운데 성관계 도중 몰래 콘돔을 제거하는 ‘스텔싱’ 문제가 현실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선고 이후 일부 온라인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낙태가 허용됐으니 이제 XX(질내사정)다”, “어차피 지울테니 콘돔 빼고 성관계 해도 되는 건가” 등의 글이 다수 게시됐다. 

스텔싱은 주로 성관계 도중 몰래 콘돔을 제거 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넓게는 성관계 시 콘돔을 거부하는 행위까지도 말한다. 콘돔 없는 성관계 느낌이 더 좋다는 편견으로 행해진다. 때로는 여성을 임신시킬 목적 등을 이유로 행해지기도 하는데 임신 위험 뿐만 아니라 성병 감염 위험까지 안고 있어 위험하다. 

현재 한국은 스텔싱 행위를 처벌할 법률은 없다. 스텔싱 피해자가 발생해 임신에 이르거나 성병에 걸려도 처벌할 방법이 없다. 반면, 해외에서는 스텔싱 행위에 대한 처벌 논의가 이어졌고 현재는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독일 베를린 지방법원은 성관계 도중 상대방 몰래 콘돔을 제거한 남성 경찰관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콘돔을 제거한 행위를 성범죄로 판단하고 집행유예 8개월을 선고하고, 벌금 3000유로(약 390만원)와 성병 검사 비용 96유로(약 12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17년 스위스 로잔 연방 대법원도 성관계 도중 스텔싱을 한 남성을 강간 혐의로 집행유예 12개월을 선고했다. 캐나다 법원은 이미 지난 2014년 콘돔에 고의로 구멍을 내 여성을 임신시킨 남성을 성폭행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4월 30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스텔싱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을 촉구하는 청원이 7건 올라와 있다. 시민입법플랫폼 ‘국회톡톡’에도 낙태죄 헌법 불합치 선고 직후인 11일 스텔싱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 달라는 제안이 올라와 총 1836명의 동의를 얻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안건을 채택한 의원이 없어 의원 매칭에는 실패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스텔싱 행위는 여성의 선택권을 동의 여부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박탈하는 행위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성관계 이후 예측 못할 상황을 대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남성이 일방적으로 박탈하는 것”이라며 “스텔싱은 성폭력이 일반적으로 폭력, 협박으로 구성된다고 믿어지는 데에 반박한다. 스텔싱은 일방적으로 성관계가 물리적 폭력 없이 남성성과 남성의 욕망에 기반한 대표적인 성폭력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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