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칼럼] 효도는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
[정진경 칼럼] 효도는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
  •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승인 2019.05.02 09:21
  • 수정 2019-05-02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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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전만 해도 오월이 되면 여러 단체에서 ‘효자효부상’을 주었다. 그 뉴스만 나오면 나는 이 땅이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다고 느꼈다. 효자효부상은 효도는 아들과 며느리가 하라는 것이었다. 봉건시대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강요하며, 노인복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개별 가족에게 떠넘기는 것이기도 했다. ‘효’는 국어사전에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를 세상에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잘 섬기는 일이다. 그렇다면 남편의 부모에게 가질 수 있는 심정은 ‘효심’이 아니고 아들을 낳아 잘 키워주신 데 대한 고마움과 가까이 지내게 되면서 쌓이는 정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결혼하면 대부분 부모와 따로 살고 있는 요즘, 마음에서 우러나서 잘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마도 지금 사위들이 장인, 장모님께 잘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혹은, 여성은 남성보다 보살피는 능력이 우월하니 그보다 조금 높은 수준?

이젠 지난 세기가 된 1999년에 나는 충북여성민우회에 ‘효녀효서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딸과 사위에게 주는 상으로 ‘효자효부상’을 전복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뒤집기보다는 초월하기 위해, 자기 부모가 아닌 어른들에 대한 ‘사회적 효’의 개념을 덧붙였다. 신문에 공고가 나가자 의외로 많은 추천이 쏟아져 들어왔다. 노인회 회장님이 참으로 훌륭한 사위라며 추천해주신 분이 있었다. 정신이상인 장인, 산재사고로 다치신 장모에 치매가 되신 아내의 할머니까지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성심으로 모시고 사는 분이었다. 이웃의 잘 걷지 못하는 독거 할머니들을 병원에 모시고 다녀 칭송이 자자한 여성도 있었다. 식사를 챙겨드리고, 약을 타다 드리고, 목욕과 빨래 등 가사를 도와드리고, 적적하지나 않으신지 살펴드렸다고 한다. 이 외에도 미담이 넘쳤다.

이제는 또 한 번 효도를 재개념화 할 필요를 느낀다. 백세 시대가 되니 오래 앓으시는 부모님께 효도하느라 자녀들이 개인생활을 희생하며 하염없이 애쓰는 집이 많다. 자신도 노인이 다 된 자식들이 부모님을 돌보다가 병이 나기도 한다. 효도의 가치는 변함없어도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 실천 방안은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예전 대가족의 기능 중, 육아, 교육, 생업, 보험 등 많은 기능이 이미 사회화되었다. 노인봉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생활보호 이외에, 노년의 기나긴 시간을 즐겁고 의미있는 활동으로 채울 수 있게 도와드리는 효도도 필요하다. 사는 동안 사는 맛이 나야 하니까. 농촌 할머니들과 함께 몇 해째 시 쓰기를 하여 시집을 내드린 선생님은 얼마나 훌륭한가. 노인들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노인회관에서 카페를 운영하게 도와드린 지역센터도 있다. 이렇게 노년의 내용을 행복하게 채우는 효도는 지역사회와 국가가 자식보다 더 잘 할 수 있기도 하다.

지금 60대인 내 친구들은 부모님을 모시느라 애썼지만, 나중에 자식들에게 노후를 의탁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진 이는 하나도 없다.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독립만 해주어도 고맙겠다고 한다. 우리는 최대한 자립적으로 살다가, 도저히 안 되는 때가 오면 같이 좋은 요양원에 들어가 친구 얼굴이라도 보고 살게 예금이나 열심히 해 놓으란다. 공동체적 해결방안이 필요하다. 길고 어려워진 노인보호 과제를 효도라는 명분 아래 개별 가정이 모두 부담하도록 방치하지 말고,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대책을 마련할 때가 되었다. 이미 국가와 지역사회가 시행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으나, 지금보다 수십, 수백 배는 증가해야 늘어나는 수요에 응답할 것이다. 조만간 창의적 효도프로그램상을 주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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