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연, 20대 남성 1000명 설문조사
“취가하고 싶다” “출세보다 쾌락”
전통적 남성성 거부하는 청년 남성
50.5%는 반페미니즘 성향 드러내

4월 18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열린 ‘2019 변화하는 남성성을 분석한다’ 세미나에서 토론이 이뤄졌다. 아래 그래프는 연령대별 남성성 유형 분포를 보여준다. 40·50대 남성은 ‘전통적 남성성’ 성향이 높은데 반해, 20대 남성은 전통적 남성성의 틀에서 벗어난 ‘비전통적 남성성’ 비율이 가장 높았다. @여성신문
4월 18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열린 ‘2019 변화하는 남성성을 분석한다’ 세미나에서 토론이 이뤄졌다. 아래 그래프는 연령대별 남성성 유형 분포를 보여준다. 40·50대 남성은 ‘전통적 남성성’ 성향이 높은데 반해, 20대 남성은 전통적 남성성의 틀에서 벗어난 ‘비전통적 남성성’ 비율이 가장 높았다. @여성신문

한국 남성들의 정체성이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20대 남성이 있다. 출세보다 일상의 즐거움을 좇고, ‘취가’(취업+장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은 아버지 세대에게 익숙한 ‘전통적 남성성’에 반기를 든다. 그러나 ‘남자다움’을 거부하는 20대 남성의 인식 변화가 새로운 남성성의 등장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이들은 가부장적 남성의 틀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절반 가량은 페미니즘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18일 개원 36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다. 전체 설문조사 대상 남성 3000명(19~59세) 가운데 20대 남성이 1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조사다. 권인숙 여정연 원장은 ‘2019 변화하는 남성성을 분석한다’를 주제로 열린 이 세미나에서 “한국사회는 성평등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면서도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성평등 정책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확산되고 있는 양상은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사회 현상”이라고 짚었다. 권 원장은 이어 “남성들의 성평등 의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남성이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어떠헤 만들어나갈 것인지 고민해 보는 자리”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조사 결과는 기성세대는 익숙한 ‘남자다움’을 거부하려는 20대 남성들의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남자는 무엇보다 일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항목에 동의한 40대(응답률 40%), 50대(52.5%)와 달리 20대는 39.9%가 동의하지 않았다. ‘동의한다’(34.1%)보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률이 높은 유일한 세대다. ‘남자는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의 생계책임은 남자가 져야 한다’는 전통적인 남성성에 대해서도 20대 남성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각각 62.6%, 41.3%)이 50대 남성(44.1%, 10.6%)보다 모두 20∼30%포인트 이상 높게 나타났다.

조사를 진행한 마경희 여정연 정책연구실장은 “20대 남성들은 강한 남자, 일에서 성공하는 남자, 위계에 복종하는 남자 등 기성세대에 익숙한 ‘남자다움’을 거부하는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성역할 규범 벗어나려는 남성들
페미니즘에는 강한 반감 드러내

20대 남성들이 성역할 규범이나 성별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 개성과 인격이 존중받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이상과도 다르지 않다”고 마 실장은 말했다. 그러나 정작 20대 남성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조사에서 20대 남성의 50.5%는 ‘적대적 성차별·반페미니즘’ 성향을 보였다. 적대적 성차별·반페미니즘 성향은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매우 높고 남성 권위에 도전하는 여성에게 적대적이고 반감이 크다. 나이가 많을수록 이 성향은 30대 38.7%, 40대 18.4%, 50대 9.5%로 낮아진다. 20대 남성들은 대체로 ‘페미니스트는 공격적’(70.1%), ‘페미니즘은 남성혐오’(65.8%), ‘여친이 페미니스트라면 헤어지는 편이 낫다’(56.5%)고 응답했다.

마 실장은 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 성향에 대해 “군 복무에 대한 부정적 인식, 디지털 세대로서 이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경험한 ‘젠더 전쟁’의 효과”를 원인으로 꼽았다. 다만 “20대 남성을 모두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가진 동질적 집단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마 실장은 설명했다. 20대 남성 4명 1명(25.7%)은 ‘반성차별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점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그는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페미니즘의 언어를 통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성평등이 남성의 삶의 변화에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남성 역시 적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령대별 반페미니즘 비율.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령대별 반페미니즘 비율. @한국여성정책연구원

73.3% 성차별 문제 관심 있지만
20대 남성의 성차별≠여성차별

그러나 20대 남성의 변화를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한국, 남자』의 저자인 최태섭 문화평론가는 20대 남성에서 드러나는 남성성 변화에 대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남성성을 수행할 의지도 없고, 수행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이들(20대 남성)은 가부장제의 짐을 벗어버리고는 싶어하지만 성차별의 이점은 계속 누리고 싶어하는 모순된 혹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사 결과에서도 20대 남성의 73.3%가 “성차별 문제에 관심 있다”고 답해 전체 연령 중 가장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들에게 성차별은 ‘여성차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이 심각’(42.5%), ‘여성혐오 심각’(40.4%), ‘여성폭력 심각’(46.1%)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는 응답이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는 차별의 의미에 대한 사회적 담론 구성과 공유가 절실하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성차별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이 페미니즘이나 인권에 대한 관심을 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 즉 차별의 의미가 이미 청년 세대 남성들에게 다른 의미로 고착화되어 유통되는 부분에 어떻게 개입하는가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 준다”고 말했다.

20대 남성의 욕구에 대한 정치권의 반짝 관심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20대 남성에 대한 분석은 이 계층의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한 원인이 ‘젠더 갈등’ 때문이라는 프레임이 등장한 지난해 말부터 언론과 정치권을 통해 쏟아졌다.

김 교수는 “최근 들어 정치권을 중심으로 남성의 욕구를 들어보겠다고 하지만 그 틀 안에서 던져지는 것은 역차별, 특별히 구체성이 낮은 역차별 문제를 거론할 뿐”이라며 “이 역차별을 정말 ‘역차별’로 명명하고 이를 개선하는 것이 남성 의제인가”라고 반문했다.

한국여성학회장인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20대 남성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위기는 세대 효과와 생애과정 효과가 중첩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1990년대 중반 이래 경제위기를 겪으며 ‘생존주의’라는 세대적 의미와 함께 20대가 겪는 불안정성이 증폭되면서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공격성으로 표출된다”면서 “이런 분노는 지층의 약한 부분을 뚫고 폭발하는데, 바로 한국사회의 강고한 가부장적 성차별주의와 그 대상으로서 여성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새로운 남성성을 추구하는 남성들을 위해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여성과 남성의 소통과 공존을 위한 관계의 학문인 페미니즘은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삶이 구속(constraint)이 되었던 시대를 종식시키고 불평등한 권력관계로서 젠더관계를 해체하며 새로운 성별관계를 구성해가는 이론적, 실천적 자원이 될 수 있다”며 대학 내 여성학 교육 제도화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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