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시선] 끝나지 않았다, 시작일 뿐이다
[정재훈의 시선] 끝나지 않았다, 시작일 뿐이다
  •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9.04.20 08:40
  • 수정 2019-04-20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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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사유·시술 비용·허용 기간 등
법·정책·인식 변화 뒤따라야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269조와 270조 내용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낙태 시술을 함으로써 의사가 처벌받는 조항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것이다. 결국 이번 판결의 핵심은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의 직업의 자유와 전문성 존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를 처벌 대상으로만 규정한 형법 조항을 폐지하거나 개정해야 할 과제를 한국사회는 갖게 되었다.

우선, 낙태 사유를 규정할 것인가, 한다면 어느 범위까지 하고 확인할 것인가 하는 과제이다. 낙태를 ‘임신중단’으로 본다면 여성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이유와 기간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기간은 정하되 상담 등 전제 조건 없이 일정 기간 내에서는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사유나 전제조건 없이 헌법재판소가 정한 임신 22주 기간 내에서 낙태를 할 수 있는 대안이 가능하다. 혹은 기존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한 낙태 허용 사유에 사회경제적 이유를 명시하여 22주 기간 내에서 낙태를 할 수도 있다. 낙태 사유의 정당성 관련 문제제기가 있다면, 여성의 자주적 결정권에 대한 침해라는 비판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제기에 대한 답으로서 독일의 임신갈등상담 같은 제도 도입을 시도할 수도 있다.

낙태 시술 비용을 개인 부담으로만 할 것인가 건강보험 급여 적용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가도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만약 낙태를 할 경우 한번 시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속 치료 과정이 따라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개인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부담해야 할 것인가는 답은 낙태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모든 비용의 개인부담부터 건강보험 급여 적용까지 다를 것이며, 만약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한다면 보장성 수준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도 논쟁 주제 중 하나로 남는다.

낙태 허용 기간 결정도 매우 뜨거운 사회적 논쟁 대상이다. 헌법재판소의 견해와 달리 22주 이내에서도 태아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의료 전문가들의 판단이기도 하다. 또한 생명으로서 인정할 수 있는 태아의 존재를 수정하는 순간부터 보는 관점도 여전히 굳건히 존재하고 있다. 다른 한편 태아의 생명권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관점에서도 8주 이내에는 생명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더 나아가 낙태를 더 이상 무조건 처벌하지 않는다 함은, 출산을 선택했을 경우 사회경제적 지원을 확대하는 과제를 국가와 사회가 갖는다는 의미도 있다. 일부 주장처럼 낙태를 처벌하지 않을 경우 낙태 사례가 급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낙태만 허용했을 뿐 비혼출산 당사자와 태어난 생명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여전하며 아이를 돌보고 교육시키는 과정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낙태를 더 이상 처벌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비혼출산과 돌봄을 지원하는 대책도 함께 강화한다. 특히 낙태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종교단체는 자체적으로 많은 돈을 들여서 비혼출산 생명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는 지원책을 만든다. 이른바 “독실하다” 할수록 비혼출산 가족에 대한 손가락질보다는 태어난 생명에게 사랑의 손길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낙태를 더 이상 처벌할 수 없게 된 상황은 앞으로 1년 여 동안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갖고 있었던 비혼출산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 해결해야 하는 너무나 많은 과제를 준다. 법적·정책적 변화와 더불어 대중은 더 이상 낙태를 ‘부도덕한 여자들만 하는 짓’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 태어날 생명을 존중하는 자세를 갖출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제 변화가 진짜 시작되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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