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성착취 범죄’다] 성매매에 대한 책임, 왜 성착취 피해자에게 묻나
[그것은 ‘성착취 범죄’다] 성매매에 대한 책임, 왜 성착취 피해자에게 묻나
  • 변정희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대표
  • 승인 2019.04.20 08:41
  • 수정 2019-04-22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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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성착취 범죄’다] (끝) 전문가 기고
대안 내놓으라는 법무부와
정부 탓하며 손놓은 법제사법위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에 걸린 한 사진.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대산갤러리에서 열린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사진전에 전시된 작품 아저씨'. 성착취 피해 청소년이 겪는 차가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무민’ 캐릭터로 유명한 핀란드의 작가 토베 얀손의 작품 중에 『보이지 않는 아이(invisible child)』가 있다. 투명인간인 아이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목소리를 되찾고 본래 모습을 되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은 이 작품 속의 ‘보이지 않는 아이’와도 같다. 성착취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그 이름도 낯선 ‘대상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그 존재를 지우고 있다.

2015년 3월 26일 관악구의 한 모텔에서 만 14세의 청소년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성착취 가해남성이 수면마취제를 이용해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2015년 5월 13일, 106개 단체로 이루어진 ‘관악구 성착취 피해청소년 살해사건 재발방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발족했고, 100일 동안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와 서명 운동을 진행했다.

공동행동은 가장 먼저 현행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이하 아청법)의 ‘대상청소년’ 조항을 삭제할 것을 촉구했다. 이 법에서는 심각한 착취와 폭력 피해를 입은 아동청소년도 ‘자발적’이라고만 판단이 되면 ‘대상청소년’으로 규정해 소년법에 준하는 피의자로 사실상 처벌해왔기 때문이다. 살해당한 청소년도 살아있었다면 ‘대상청소년’으로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는 아동청소년을 각종 유해환경과 범죄로부터 보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다양한 입법적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일찌감치 유엔(UN)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과 ‘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에 가입하고 이를 비준했다. 아동청소년에 대해서는 보호와 예방의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만약 아동청소년이 실제로 범죄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었다면? 상식적으로는 더 적극적인 보호 조치가 뒤따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각종 범죄와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다가도, 막상 범죄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은 아동청소년을 오히려 처벌에 준하는 보호처분을 부과하는 이상한 법이 바로 아청법이다. 성매매 방지법에서도 아동청소년은 명백히 피해자로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아동청소년을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할 것으로 기대되는 아청법에서 오히려 이들을 처벌하고 있는 셈이다.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서 아·청법의 즉각 개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1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서 아·청법의 즉각 개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아청법 개정 논의는 활발히 이루어져 2015년 8월 남인순 의원이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국회가 종료되면서 자동폐기됐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시절 국정 과제 공약사항에 포함되었고, 다시 2016년 8월에 남인순 의원이, 2017년 2월 김삼화 의원이 아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회의 대상청소년 조항 삭제 권고가 있었고, 2018년 1월에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 역시 개정 검토 의지를 표명했다.

때문에 개정안이 여성가족부의 검토를 거쳐 마침내 2018년 2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순조로운 법 개정을 기대했다. 그러나 법제사법위원회의 검토 과정에서 법무부가 낸 반대 의견이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았고, 법제사법위원회 제 2 소위로 회부된 이후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청법 개정안은 안건 상정조차 되지 않은 채 묻혀버린 상태다.

법무부는 “모든 성매매 가담 청소년을 피해자로 보는 것은 무리다.”, “아동청소년의 성매매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다른 보완 조치들이 필요하다”, “보호처분의 대안으로 제시된 ‘지원센터’에서 성매매 대상 아동청소년의 ‘성범죄’ 전력 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청소년의 성매매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으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을 명백히 ‘성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피해자에게 성매매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으라니, 이런 책임전가가 대체 어디 있는가.

2018년 12월 4일, 시민들은 다시 거리에 모였다. ‘아청법’ 개정을 위한 기자회견을 국회 앞에서 개최했고, 혹한의 겨울에도 릴레이 1인 시위를 전개했다. 2019년 1월 22일에는 364개 단체가 모여 아청법 개정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발족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대위는 1월 28일 법무부 앞에 모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국회정론관에서 김삼화 의원과 더불어 안건 상정을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러나 법제사법위원회 제 2 소위에서는 아청법 개정안에 대한 안건 상정이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법무부가 개정안에 관한 의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헌법재판소 판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회의 권고, UN아동권리협약 및 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 아청법의 입법 취지, 무엇보다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차례차례 무시하면서 법제사법위원회와 법무부가 침묵의 핑퐁게임을 하는 동안, 아동청소년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남아 심각한 성착취와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대상청소년이라는 규정이 성립가능하려면 성매매를 ‘자발적으로’ 하고자 한 아동청소년이 존재한다는 가정이 성립해야 한다. 돈과 권력으로 취약한 아동청소년을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가해자에게 돌려야 할 책임과 법적 잣대를 아동청소년에게 들이댈 때에만 성립 가능한 가정이다.

무엇보다 그런 아이는 세상에 없다.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고, 또래 아이들처럼 살아가고 싶은 아이들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아동청소년을 성적 욕망을 배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어른들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 사회는 돈과 권력을 가진 그들의 대변인이자 알리바이가 될 것인가, 혹은 목소리와 자기 존재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되찾아주고 안전한 울타리가 될 것인가. 법제사법위원회와 법무부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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