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우체통이 다 모였습니다
전국의 우체통이 다 모였습니다
  • 권혁년 도시재생팀 기자
  • 승인 2019.04.12 10:43
  • 수정 2019-04-12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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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있는 그 곳에 사람이 산다⑨] 군산 신창동 우체통 거리
주민 공동체에서 기획부터 조성까지 진행
안쓰는 우체통 찾으러 전국 돌아다녀
우체통 거리에 어울리는 손편지 축제도 개최
올해는 우체통에 이름 붙여주고 축제도 더 풍성하게 만들 계획
골목사거리 영동반점 건물에 우체통거리 상징물인 우체통이 걸려 있다. 조형물 밑에서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우체통거리 도란도란우체통거리 운영위원회
영동반점 건물에 우체통거리 상징물인 우체통이 걸려 있다. 조형물에서 기념촬영 중인 관광객들. ⓒ우체통거리 운영위원회 

전북 군산시 거석길 34와 중정길 50이 교차하는 골목길 사거리엔 제법 큰 주차장이 있다. 어느 동네에나 있는 흔한 주차장이다. 하지만 입구 흰 벽면을 올려다보는 순간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벽면에는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주황색 등이 칠해진 우체통으로 한가득 채워져 있다. 우체국을 상징하는 날렵한 제비 그림에 큼지막한 글씨로 ‘우체통 거리’라고 쓰여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고 가꿔가고 있는 ‘도란도란 우체통 거리’의 첫인상이다. 주차장 사거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약 150m 정도의 작은 거리가 우체통 거리다. 이곳에는 현재 54개의 크고 작은 우체통이 캐릭터를 그려 넣고 여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방긋 인사를 건넨다.

“저희 동네는 이름도 없고, 문화재도 없고, 역사적인 인물도 없고, 오랜 역사도 없고, 옛날 이야기도 없고, 그 흔한 고목도 없어요” 우체통거리 경관협정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배학서씨 이야기다.

도란도란우체통거리운영회 주민들의 회의 모습. ⓒ우체통거리 운영위원회
도란도란우체통거리운영회 주민들의 회의 모습. ⓒ우체통거리 운영위원회

지방 중소 도시에 별 볼일 없는 마을이라는 이야기다. 군산시 중앙로 인근에 있는 우체통 거리는 전형적인 상업지역이다. 80년대 90년에 대기업의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가 들어오면서 이 거리도 자연스럽게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1998년 IMF 이후 우체통 거리는 급격하게 쇠락한다. 인구가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구도심이라는 이유로 젊은이들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 이후 나운동과 수송동 지역에 신시가지가 만들어지면서 구도심의 상권은 더욱 위축이 됐다.

군산시에서 죽은 구도심 상권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했다. 그 시기가 2014년부터 2016년까지다. 약 1000억원의 국가 및 군산시의 예산을 들여 ‘근대문화유산도시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에서도 우체통거리는 사업 대상지에 들어가 있었지만 메인 거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외됐다.

제 1회 손편지쓰기 축제에서 어린 학생들이 손편지를 쓰고 있다. ⓒ우체통거리 운영위원회
제 1회 손편지쓰기 축제에서 어린 학생들이 손편지를 쓰고 있다. ⓒ우체통거리 운영위원회

“도시재생 사업을 한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오히려 저희가 살고 있는 골목에는 쓰레기가 더 많이 쌓이고 잡초만 무성해 졌어요” 배회장의 회고다.

2016년 말 우체통 거리는 도시재생 사업의 아무런 혜택이 없이 방치되고 만다. 이때 주민들이 똘똘 뭉쳤다. “‘행정이 해 주지 않으면 우리가 한다’고 주민들 사이에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주민들이 직접 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확보하고 사업을 추진해 결과까지 책임지는 진짜 주민주도 도시재생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먼저 시작한 것이 ‘도란도란 공동체’ 설립이다. 우체통 거리엔 ‘세입자’라는 말이 없다.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생각으로 건물을 소유한 건물주와 그 건물에서 장사를 하는 운영주가 있다. 공동체 운영을 위해서 연간 회비를 납부한다. 그런데 운영주는 6만원을 내고 건물주는 2만원을 낸다. 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기웃 하는데 김종석총무가 “여기 건물주들은 대부분 고령의 노인들이고 월세가 타 지역에 비해 많이 저렴한 편이다”고 귀띔을 해 준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주민 모두가 모여 거리 청소를 한다. ⓒ우체통거리 운영위원회
매주 수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주민 모두가 모여 거리 청소를 한다. ⓒ우체통거리 운영위원회

공동체를 구성했지만 얼마 안 되는 회비로 많이 낙후된 동네 상권을 되살기엔 역부족이었다. 고민 끝에 군산시의 예산을 받아 올 수 있는 ‘주민공모사업’에 참여키로 했다. 별 볼일 없는 거리에 딱하나 상징처럼 있는 것이 ‘군산 우체국’이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버려지는 우체통을 모아서 우체통 거리를 만들겠다는 공모 제안서를 썼다. 이것이 선정됐다. 공모 상금 300만원이 나왔다.

단비 같은 예산이었지만 재생사업을 추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체국을 찾아가서 폐 우체통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우체통은 국가의 보안 시설물이라서 처리가 까다롭다는 답변만 왔다. 배회장을 포함한 공동체 회원 예닐곱 명이 서울 우정사업본부 담당자를 찾아가서 취지를 설명하고 애원을 했다. 결국엔 허락을 받아냈다. 하지만 40여개의 폐 우체통은 전국 곳곳에 있었다. 꽃집을 운영하는 회원의 도움을 받아서 서울 강남, 인천, 천안, 벌교, 순창, 남원 등지를 돌면서 우체통을 수거했다.

우체통을 확보한 기쁨도 잠시였다. 여기에 그림을 그려서 멋지게 배치를 해야 했는데 통 하나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주변에 수소문해서 비용을 알아봤더니 개당 40~50만원을 요구했다. 최대 2000만원 예산이 필요했다. 달랑 300만원 밖에 없는 도란도란 공동체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렇다고 포기는 없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술 단체를 찾았다. 우체통에 그림을 그려주면 나중에 그것의 판권을 팔아서 되돌려 준다는 조건을 걸었다. 이 부분에서 갑자기 고 정주영 회장의 일화가 생각났다. 500만분1 지도만을 들고 해외로 가서 조선소를 짓겠다는 무모한 도전 말이다.

이런 제안을 받은 ‘미술공감 채움’에서 흔쾌히 수락했다. 채움의 협조로 40개 낡은 우체통엔 70~80년대 캐릭터가 입혀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체통을 거석길과 중정길 양 옆으로 설치했다. 두 길 모두 약 150m의 거리에 우체통이 나란히 들어선 것이다. 우체통을 놓고 거리에 가득 있었던 쓰레기를 치웠다. 그리고 수북하게 자란 풀도 뽑아냈다. 모두 주민들이 한 일이다.

우체통거리 주민들은 우체통을 설치하고 난 후 지금까지(약 2년간) 5가지를 약속하고 지키고 있다. △집 앞에 꽃과 화분 놓기 △매주 수요일 오후 3시 꽃과 나무에 물주고 거리 청소하기 △빈 터를 소유 주민과 협의해 주차장 등으로 쓸모 있게 활용하기 △주민이 솔선 수범해 상점 앞 거리에 주차하지 않기 △낡고 흉한 건물은 보수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등이다.

우체통을 말끔히 설치하고 거리는 깨끗해 졌지만 여전히 흉물스러운 건물은 그대로였다.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 주민들은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군산시에 문의해 보니 지역 단위로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경관협정’이라는 것을 시와 체결하면 시에서 의무적으로 예산을 배정해서 거리 정화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시와 경관협정을 체결했다.

경관협정을 체결하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군산시에서 우체통 거리로 진입할 수 있도록 좌회전 신호등을 설치했다. 신흥동 동사무소에서는 수 년 동안 방치된 폐가를 정리해 줬다. 그리고 금쪽같은 사업예산 1억1000만원을 받았다. 이 예산으로 주민들은 우체통이 놓인 곳에 주민과 관광객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벤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태양광을 활용해 밤에도 환하게 거리를 비춰줄 가로등도 설치했다. 홍보 책자와 엽서도 만들고 사거리 주차장 담벼락에 ‘우체통거리’라는 조형물도 설치했다.

하드웨어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주민들은 다시 고민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지난해 6월에 열린 ‘제 1회 손편지 축제’다. 우체통 거리에 정말 잘 어울리는 축제다. 손편지 축제에서는 의외의 대박 사건이 나왔다. 외국 대학생을 교환학생으로 많이 있는 군장대학의 도움으로 ‘외국인 손편지 쓰기 대회’가 열렸다. 여기서 베트남 여학생이 대상을 받았는데 이때 가족에서 썼던 편지를 실제로 베트남에 보냈다. 이것이 현지 언론에 보도 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축제에 참여해 손편지를 쓴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 사진을 담아 나만의 우표를 만들어 줬다. 이 두 개의 행사가 빅히트를 하면서 소문을 듣고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우체통 거리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모두가 찾아오는 거리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 음식이었다. 그래서 우체통거리 음식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전통 음식을 연구하는 ‘우체통 음식공방’ 임영숙 원장이 결합했다.

1년여 노력 끝에 우체통 거리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몇가지 음식이 개발됐다.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들깨 떡국이다. 이 떡국은 기존 가래떡 안에 들깨가 들어가 있다.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더해 우체통거리 차와 딸기국수도 개발했다. 우체통거리 차는 시쳇말로 사기 캐릭터다. 향기는 자스민향이다. 첫맛은 구수한 누룽지 맛이다. 두 번째 맛은 입안에 매운 박하사탕을 물고 있는 맛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먹을 때마다 맛이 다르다. 여러 명이 함께 마시면 같은 차인데도 색깔이 모두 다르다.

이길영 군산시 도시재생센터 사무국장은 “처음에 우체통 거리는 시에서도 정말 애매한 곳이었는데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서서 좋은 거리를 만들어서 주민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며 “앞으로 이곳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학서 회장은 “군산에 30년이 넘게 살았지만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마을 사람들이 누가 누군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마을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2년 넘게 매일 오후 3시에 만나 이야기하고 청소를 했다” 며 “이제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우체통마다 이름을 만들어 줬다. 축제에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게 하고 더 많은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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