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라크 전쟁 지지 입장을 밝혔고, 공병부대 파견을 예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파병 찬성론자들의 입장은 한반도 전쟁위기 해소를 위해서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1백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낼 각오를 하고 영변의 핵시설을 폭격한다는 시나리오가 아주 구체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일부 국민들이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협조한다고 해서, 미국이 북한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착각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라크를 초토화시킨 다음에는 북한을 폭격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더 설득력이 있다. 이라크 침략에 협조하고 난 뒤에 무슨 명분으로 북한 폭격을 막을 수 있겠는가?

세계는 숱한 전쟁으로 고통을 겪어왔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평화를 향한 인류의 갈망은 끊임없이 불타올랐다. 20세기의 냉전을 종식하고 인류는 평화공존의 방향으로 힘들게 가닥을 잡아나아갔다. 그러한 노력을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자국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최소한의 명분조차 결하고 있는 추악한 침략이다.

이라크가 알카에다에 무기를 지급했다는 미국의 주장은 증거를 찾지 못했고, 대량살상무기 문제도 사찰이 순조롭게 진행중이었다. 생화학무기가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1980년대에 미국이 후세인에게 팔았던 것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더더욱 이 전쟁에 찬성할 수 없다. 힘 자랑을 중심으로 세계를 다스려 온 남성들의 유치한 세계경영 방식에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도대체 수많은 다른 방식을 다 놓아두고 어째서 그토록 무력을 사용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지, 여성인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여성은 생명의 재생산의 담지자로서, 생명이 세계 안에서 잔인하게 살상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여성이 반전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 가치에 합류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생명의 부름에 대답하기 위한 것이다. 죄없이 죽어갈 수십만 명의 목숨이 그녀의 내면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은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사표현을 하기 위해서 평화적으로 시위하던 여성해방연대 회원들을 무력으로 연행해 갔다. 여성은 전쟁에 찬성할 수 없다. 여성은 약자들을 짓밟는 방식으로 자신의 우위를 확보하고, 그 우위가 위협당한다고 생각할 때면 약자들의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고 구속하고 패대기치고 찢어죽이는 남성들의 세계경영 방식에 찬성할 수 없다.

따라서 여성에게 전쟁반대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존재의 명령이다. 시위 여성들은 그 명령을 따라 평화적으로 시위했을 뿐이다. 대체 무엇을 잘못 했다는 말인가?

피는 충분히 흘렀다. 인류여, 이제는 제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자. 내가 조금 덜 먹고 덜 부유하더라도, 그 덕에 세계가 평화로울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누어 가면서 살자. 전쟁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피는 피를 부를 뿐이다. 이미 흘러서 땅밑에서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흘러가는 피의 강물의 소리가 당신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가? 왜, 어째서, 무엇때문에, 어떤 미친 추악한 욕망을 위해서, 그 피의 강에 또다시 피를 보태려 하는가?

김정란 / 상지대 인문사회대학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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