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있는 그 곳에 사람이 산다] 공주시 중동마을
낡은 한옥을 리모델링해서 ‘루치아의 뜰’을 만들다
골목길재생협의회를 만들어 사람이 사는 골목으로 재탄생
남편 박인규씨는 달콤한 초콜릿을 만드는 ‘초코루체’로 아내 응원
공주시의 역사를 마을 곳곳에 사진과 그림으로 기록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꽉 찬 동네 만들어

석미경대표와 박인규대표가 초코루체 주방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여성신문
석미경대표와 박인규대표가 초코루체 주방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여성신문

자고 일어나면 골목엔 언제나 수북하게 쌓인 담배꽁초와 쓰레기 뿐이었다. 치워도, 치워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어쩌다가 취객의 오물까지 있는 날엔 골목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골목길을 깨끗하게 만들고 싶었던 석미경씨는 어느 날 문득 생각을 달리했다. ‘언제까지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치우고만 있을 거야’. 방법이 있을 거야 분명히... 몇 날 며칠의 고민 끝에 꽃과 나무, 조각품으로 골목을 장식하기로 했다. 그리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홍매화, 인동초, 족두리꽃, 수선화, 다알리아, 남천, 대나무, 골목길에 심어진 꽃과 나무들이다. 여기에 ‘잠자리가 놀다 간 골목’이라는 주제로 담벼락 곳곳에 잠자리 날개의 조형을 붙였다. 그런 후에 이곳엔 담배꽁초도, 쓰레기도, 취객의 오물도 꿈처럼 사라졌다.
백제의 고도 공주시에 만난 ‘루치아의 뜰’ 석미경 대표 이야기다. 도시재생의 개념이 없던 시절인 2013년 공주에서 마음에 쏙 드는 한옥 한 채를 만났다. 같은 성당(중동성당)에 다녔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스텔라 할머니 댁이었다. 당시 이 집은 공주시 농협 중동 지점에서 주차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입하기로 한 건물이었다. 그런데 루치아(세례명)씨는 이 집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는 맘으로 스텔라 할머니의 아들에게 매달렸다. 그녀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농협에서 거래를 포기했다.

루치아의 뜰 골목길 조성 사업에서 박인규 대표(오른쪽 첫 번째)가 대나무를 심고 있다. ⓒ루치아의 뜰 제공
루치아의 뜰 골목길 조성 사업에서 박인규 대표(오른쪽 첫 번째)가 대나무를 심고 있다. ⓒ루치아의 뜰 제공

 

스텔라의 뜰이 루치아의 뜰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첫눈에 반했어요. 넓은 마당도, 집 앞 골목도 너무 예쁘고 무엇보다 옛집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정말 고마웠어요”석 대표는 그길로 ‘내가 집을 사면 꼭 이분에게 리모델링을 부탁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가온건축 임형남 대표를 찾아갔다. 한옥 사진을 보여주며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간절함을 다해 설명했다고 한다. 이후 임대표가 그 건물에 반해 리모델링에 적극적이었다. 이후 ‘루치아의 뜰’은 가온건축의 대표 건축물 중 하나가 됐다.
루치아의 뜰을 찻집으로 바꾼 석 대표는 바로 죽은 골목길을 살리기 위해 ‘골목길재생협의회’를 만들었다. 옛 추억과 그리움이 만날 수 있는 공주의 작은 공간 골목길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을 시작했다. 현재도 15명의 회원들이 한 달에 2번 골목길을 산책하면서 정기 모임을 가지고 활동한다.

골목길재생협의회 회원들이 골목길 등불 산책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루치아의 뜰 제공
골목길재생협의회 회원들이 골목길 등불 산책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루치아의 뜰 제공

 

골목길재생협의회는 공주시의 지속적인 인구 감소를 막고 침체된 원도심에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 활동이 옛날 직물공장으로 쓰였던 장소를 빌려서 ‘빈집 갤러리 사진전’을 연 것이었다.
사진전은 추억 이야기에는 새마을 사업, 이승만 대통령의 갑사 방문 등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일들이 흑백 사진으로 걸렸다. 옛 공산성의 허물어진 성벽과 덩그렇게 서 있는 쌍수정, 일제 강점기 공주시가지 전경, 1960년대 미나리꽝 등이 사람들을 아련한 추억 속으로 되돌아가게 해 줬다.
뜻밖에도 사진전은 추억만 만들어 준 것이 아니었다. 이 사진전을 통해 중동마을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단순히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데서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담론을 담았다. △지역사회의 문제점 도출과 해결방안 제시 △ 지역 사회 변화에 기여 △작은 것에 대한 중요성과 도시재생 자원 인식 △주민의 도시 변화 주체 △주민 조직화 과정의 중요성 △새로운 과제에 대한 도전 계기 등이 전시회가 준 마을 발전의 담론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중동마을 곳곳에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작업이 이어졌다.

공주대 미술학과 임재일 교수가 영명고등학교에 설치된 공주시 역사 글라스월에서 공주지역을 설명해 주고 있다. ⓒ여성신문
공주대 미술학과 임재일 교수가 영명고등학교에 설치된 공주시 역사 글라스월에서 공주지역을 설명해 주고 있다. ⓒ여성신문

 

마을 주민이면서 동네 역사를 기록한 공주대 임재일 교수는 “내가 사는 동네의 가치를 찾아내고 주민들이 즐겁게 살아야 다른 곳에서도 그곳을 가보고 싶어할 것 같아서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을의 역사 기록은 유관순 열사가 잠시 다녔던 영명고등학교에서 시작된다. 100년도 넘은 느티나무 아래에 1930년대 공주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글라스월로 서 있다. 글라스월 아래에는 조선시대 공주의 모습을 동판으로 담았다. 일정 포인트에서 글라스월을 바라보면 현재의 공주시와 1930년대가 겹쳐 보이고 발아래엔 조선시대 공주가 보인다.
마을의 역사 기록은 계속된다. 영명고등학교 등하교 길을 따라 밑으로 내려오면 옛날 공주제일교회 터를 만난다. 이곳의 벽면에는 117년 전 세워진 제일교회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오면 1926년 처음으로 우유급식을 한 역사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마을의 한복판으로 흐르는 제민천을 건너 공주제일교회에 가면 역사 기록의 백미를 볼 수 있다. 1902년 만들어진 제일교회의 역사와 그 안에서 함께 숨을 쉰 공주시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일교회 철재펜스에는 1904년 이 교회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유관순 열사 재능을 알아본 샤프 부부의 모습이 임교수의 디테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석미경 대표의 노력에 남편 박인규씨가 화답했다. 박씨는 공주의 한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정년을 보장받은 상황이었는데 정년에 한참 못 미치는 나이에 과감히 대학문을 나왔다.
박씨는 “아내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한다. “나에게도 꿈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찰리의 초콜릿 공장’처럼 달콤한 초콜릿을 만드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꿈이 있었거든요.”
마침 루치아의 뜰 뒤편에 있는 한옥이 매물로 나왔다. 이곳을 리모델링하고 ‘초코루체’라는 가게를 만들었다.
석 대표와 골목길재생협의회는 마을에만 머물지 않고 눈을 공주시 전체로 돌렸다. 공주는 백제의 도읍이기도 했지만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관찰사가 머물던 충청감영이었다. 그리고 근대로 넘어와서는 충남 태안에 상륙한 천주교의 역사가 그대로 전파된 공간이었다.
이런 모습을 시민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길을 만들었다. 공주 공산성에서 출발해 박찬호 선수의 고향집을 둘러 볼 수 있는 ‘산성 찬호길’을 시작으로 ‘근대문화 유산길’, ‘추억의 하숙촌길’, ‘시인이 사랑한 골목길’ 등이 있다.
‘시인이 사랑한 골목길’의 주인공인 시인은 공주시 문화원장을 지낸 나태주씨다. 이 길에는 나태주 시인의 대표작 ‘풀꽃’을 비롯해 ‘사는 법’, ‘꽃잎’, ‘안부’, ‘새사람’ 등이 골목길 담벼락과 기둥에 담아져 있다.

공주항일역사유적 탐방에서 참가자들에게 김정섭 공주시장(좌측 마이크 든 사람)이 석미경 대표(한복 입은 사람)와 함께 유적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
공주항일역사유적 탐방에서 참가자들에게 김정섭 공주시장(좌측 마이크 든 사람)이 석미경 대표(한복 입은 사람)와 함께 유적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

 

석 대표는 몇 년 전부터 공주 원도심을 관광객에게 알려주는 마을해설사로 나섰다. ‘유관순과 함께 걷는 공주 항일역사유적 탐방’이라는 주제로 마을 주민, 공주 시내 고등학생 50명과 길을 걸었다. 공주 중동성당(1898년 건축)에서 출발, 유관순 열사 동상과 4.19의거 기념탑이 있는 삼일중앙공원, 유열사가 다녔던 영명고등학교, 근대여성교육의 어머니로 불리는 사에리시 선교사가 머물었던 선교사묘역집, 국내 최초의 우유 급식소를 운영했던 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 공주 3.1만세 운동을 이끌었던 공주제일교회 기독교 박물관을 둘러보는 코스로 짜여진 길이었다.
석 대표의 이런 노력으로 3~4년 전부터는 공주 원도심에 카페와 음식점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공주시청 문화재과 박연수 과장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공주의 원도심은 저녁 6시만 되면 불이 꺼지고 컴컴한 어둠만이 있었어요. 골목길도 사람의 발길을 볼 수 없었고요. 하지만 이제 다른 모습입니다. 주말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고요. 주중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공주 원도심을 찾아 산책을 즐겨요. 이 모든 것이 석미경 대표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지 모르는 일이예요”라고 말했다.
석 대표는 “루치아의 뜰이 있는 골목을 처음 봤을 때 전 이 골목이 엄마의 자궁을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엄마의 자궁을 잘 보살펴 주면 새로운 생명이 잘 자라나는 것처럼 이 집과 골목을 잘 가꾸면 마을이 다시 잘 살아날 것 같은 생각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바람처럼 공주시 중동마을을 포함해 인근 지역이 잠자리의 날개 짓처럼 훨훨 날아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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