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권자 의지 중요…5급이상 임용목표제 서둘러야

여성 고위 공무원이 없다.

지난 2월 27일 단행된 차관급 인사에서 대상이 된 34명 중 여성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 경험이 많은 내부인사, ‘안정성’을 차관의 자격으로 내세웠다. 여성들은 행정 경험이 적고 불안하다는 걸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인사 과정을 지켜본 한 인사는 “여성 장관을 이미 대거 등용했고, 이들의 개혁성향을 뒷받침할 실무형 차관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차관(급) 물망에 오른 여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여러 가지를 고려해 차관 인선을 마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턱없이 적은 수지만 그 중에서도 ‘개혁장관-안정차관’ 짝을 이룰 여성 인사를 찾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이다. 결국 여성 장관 ‘4인’ 등용에 묻혀 차관급 인사에서 ‘여성안배’를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 것이란 풀이다.

3급 이상 여성 39명

차관급 대상이 될 수 있는 여성 고위직 공무원은 실제로 ‘가물에 콩 나듯’ 하다. 행정자치부 내부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3급 이상 여성공무원은 일반·별정·계약직을 다 합해도 중앙에 35명뿐이다. 이는 한명숙 환경부 장관,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 전현직 장·차관이 포함된 수치다.

자리가 없어져 임기가 끝난 이상덕 전 대통령비서실 여성정책비서관과 박선숙 공보수석 등을 빼면 실제 차관급 대상은 27명 남짓이다. 지방은 8개 기관 12명에 불과하다. 중앙과 지방의 전 직종을 합해도 40명이 채 안 되는 상황이다.

이들 가운데 차관급 ‘인물’은 없었을까.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고위직 여성공무원 몇몇은 자천타천으로 차관 후보자로 알려졌고, 인사권자 주변에서도 말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도 “워낙 인력이 모자란 탓에 여성을 발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5급 이상으로 범위를 넓혀도 여성이 없긴 마찬가지다. 일반직 5급 이상(2001년 말 현재) 여성공무원은 1349명으로 해당 계급 3만2374명의 4.2%며, 전체 여성공무원(28만2000여명)의 2.1%다. 일반직 6급 이하 여성은 6만3500여명으로 해당 계급 24만9500여명 가운데 25%를 차지한다. 여성공무원이 국가정책을 세우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고 ‘허드렛일’에 혹사당하다 공직을 마친다는 얘기다.

관가에서 여성이 남성을 제치고 승진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연공서열과 위계질서에 젖은 공직사회의 정서가 여성의 능력을 사 줄리 없다는 것.

승진은 남성 전용?

중앙부처의 한 여성 과장(4급)은 “새로운 기획안을 내놓으면, 상사나 동료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배척하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며 “남자들은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성과를 가져가고 승진도 먼저 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놓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여성부와 행자부가 ‘사태’를 파악하고 지난해 대책을 내놨지만, 성공여부는 미지수다. 대책의 뼈대는 여성 관리직(5급 이상) 임용확대 5개년 계획을 세워 2006년까지 관리직 여성공무원을 10%대로 늘리는 것. 또 중앙·지방 행정기관은 국·과장급 여성 공무원을 1명 이상 배치하고, 해당자가 없을 땐 다른 기관이 개방형·계약직으로 밖에서 충원하란 지침이다.

1과1여성제, 일정비율 승진기회 부여, 남성보직에 여성 배치 등도 포함돼 있다. 올해가 사실상 시행 첫 해다. 이와 관련, 최근 단행된 검찰 인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계와 기수를 가장 중시한다는 검찰에서 두 가지를 모두 ‘무시’한 인사가 나온 것은, 여성공무원의 ‘파격승진’, ‘발탁인사’도 가능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여성관련 한 전문가는 “행정부의 법제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새 장관들이 각 부처 여성공무원을 중용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며 “암묵적으로 지켜온 인사 관행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장관 인선에서도 나타났듯이, 인사권자의 ‘의지’가 여성 고위직 공무원을 늘리는 열쇠란 얘기다.

배영환 기자ddarijo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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