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아침을’·‘두 번째 서른’
50~60대 배우·가수들의 진솔한 이야기
인생 2막 도전기

'할리우드에서 아침을'의 한 장면. ⓒtvN
'할리우드에서 아침을'의 한 장면. ⓒtvN

방송가에서 잇따라 중년 여성들의 도전기를 담은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잘 다루지 않는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중년 여성들의 진솔한 이야기 뿐 아니라 인생 2막의 도전기 담겨 있어 의미가 크다.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이 많지 않았어요”(박정수) “드라마에서 엄마 역할을 이제 그만 좀 해야 되겠다”(김보연) “항상 숙제가 엄마였어요”(박준금) tvN 예능 프로그램 ‘할리우드에서 아침을’은 박정수, 김보연, 박준금 세 중년 여성 배우의 할리우드 도전기를 그리고 있다. 셋이 합쳐 연기 경력이 129년이다. 한국 드라마를 대표하는 여성 배우들이다. 이들에게도 한계는 있다. 드라마 역할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셋이 드라마에서 맡은 엄마 역만 모두 합치면 130편이 넘는다. 여기에는 아내, 시어머니도 포함된다. 이러한 베테랑들이 한국보다 연예 시장이 큰 할리우드에 도전한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이 세 배우는 올해로 나이가 예순 언저리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무대에 노크를 하는 것이다. 여성 배우의 고정 역할을 깨뜨리려는 시도로도 보인다. ‘할리우드에서 아침을’ 제작진은 “배우라는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온 세 분들께는 새로운 일에 대한 갈증이 늘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세 배우의 연기 내공은 상당하다. 김보연이 할리우드 디렉터 앞에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메릴 스트립을 연기하는 장면은 놀랍다.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지는 않지만 순식간에 감정을 잡은 채 연기를 펼친다. 이내 눈물이 떨어진다.

지난달 종영한 TV조선 예능프로그램 ‘두 번째 서른’은 중년 여성들의 5박6일 ‘자전거 국토대장정’을 담았다. 가수 인순이, 노사연, 신형원, 예능인 이성미 등 4명이 자전거로 부산에서 땅끝마을 해남까지 자전거로 425km를 달린다는 내용이었다. 예순 언저리의 중년 여성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네 명씩이나 나와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신형원이나 이성미처럼 자전거를 잘 못 타는 중년 여성들의 완주를 향한 도전 자체에도 의미가 있었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다 중간 중간 네 여성 사이에서 나온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이성미는 자신이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돼 떠난 자신의 친엄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공연에 나섰던 인순이, 치매 걸린 어머니를 9년 째 돌보고 있는 신형원, 아빠를 잃었는데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 충격이었다는 노사연의 이야기는 중년들이 모였을 때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두 번째 서른’의 한 장면. ⓒtv조선
‘두 번째 서른’의 한 장면. ⓒtv조선

여성이 전면으로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중년 여성을 만나기란 더 어려운 현실이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발표한 ‘2018년 7월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예능프로그램 성비는 여성이 36.8%로 남성(63.2%)보다 크게 적다. 이 중 40~70대 여성 출연자는 16.7%에 그쳤다. 여성 예능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것도 불과 2~3년 전 부터의 일이다. 여성 예능인이 연예대상을 받은 것은 지난해 이영자(KBS·MBC)가 처음이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중년 여성 배우’라고 검색하며 연기에 목마른 여성 배우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그만큼 대한민국 방송에서 중년 여성들이 넘어서야 할 벽은 크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그만큼 숨어 있는 중년 여성들의 콘텐츠가 많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방송 관계자들이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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