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계여성의날] 역사를 바꾼 한국 여성노동자들
[3·8세계여성의날] 역사를 바꾼 한국 여성노동자들
  • 진주원 기자
  • 승인 2019.02.28 11:50
  • 수정 2019-03-05 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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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여승무원은 800일, 이랜드는 400일, 기륭전자는 1070일을 훌쩍 넘겼다. 투쟁이 장기화될수록 이들의 정신건강도 위협받고 있다.
KTX 여승무원은 800일, 이랜드는 400일, 기륭전자는 1070일을 훌쩍 넘겼다. 투쟁이 장기화될수록 이들의 정신건강도 위협받고 있다.

“정미소나 고무공장에서 보는 애 어머니들의 노동이란 너무나 비참하였다. 고무 찌는 냄새와 더운 김이 훅훅 끼치는 공장 속에서 애기에게 젖을 빨리며 쇠로 만든 룰러를 가지고 일하는 것이다. 돌가루가 뽀얗게 날리는 정미소에서 갓 까놓은 병아리같이 마른 자식을 굴리는 것을 볼 때는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다” (『신가정』1935.2)

1908년 3월 8일 궐기의 주체는 미국 여성노동자들이었다. 비참한 노동환경에 맞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격렬하고 광범위하게 벌어진 것은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임금노동자가 생겨난 당시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1935년 당시 기사에 묘사된 노동환경은 여성과 아이에게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지를 보여준다. 여성들의 노동은 한국의 경제성장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지만 낮은 임금, 채용성차별, 결혼정년, 성희롱, 경력단절 등 일터에서 각종 차별 대우와 불합리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또 여성의 사회 진출은 늘었지만 가사·돌봄노동은 여성에게 책임지우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아래 10개의 사건은 유경순 여성노동사 연구활동가의 ‘여성노동자의 역사’ 강연자료집,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주요민주화운동 사료컬렉션을 토대로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와 사회적 영향력과 여성노동의 이슈를 고려해 선별한 것이다.

1. [여성들만의 최초의 파업] 경성고무공장 아사동맹

1923년 7월 3일 경성의 4개 고무공장에 100명이 넘는 여성노동자가 임금 삭감 통지에 반발해 노조를 결성하고 임금 삭감을 중단하고 무례한 일본인 감독을 해고해달라는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공장주들은 오히려 이들의 명단을 작성해 전국 고무공장에 보내 취업을 막았다. 이에 격분한 여성노동자 수백명이 굶어죽기를 맹세하는 ‘아사동맹’을 맺고 농성에 들어갔다. 멀리 경남 마산에서는 모금을 해 아사동맹에 보내는 등 전국적인 지지를 보냈다. 여론이 악화되자 공장주들은 해고한 노동자들을 전원 복직시키고 임금인상은 물론 상여금 지급을 약속할 수 밖에 없었다.

1931년 고무공장 여성노동자 강주룡이 임금 삭감 반대와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는 모습
1931년 고무공장 여성노동자 강주룡이 임금 삭감 반대와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는 모습

 

2. [최초의 고공농성] 을밀대에 올라간 강주룡

강주룡은 평양 소재 평원고무공장의 여공이자 항일독립운동가로 1931년 동맹파업을 벌였다. 1일 12시간이 넘는 근무시간, 일본인 노동자의 1/4정도의 임금, 성희롱 등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임금 삭감을 통고하자, 노동자들은 일제와 결탁한 자본가들을 비판하며 반대투쟁을 일으켰다. 강주룡은 1931년 5월 평원고무공장 파업을 주도하던 중 일경의 간섭으로 공장에서 쫓겨나자 을밀대 지붕으로 올라가 무산자의 단결과 노동생활의 참상을 호소했다.

“49명 우리 파업단의 임금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평양의 2천3백 명 고무공장 직공의 임금감하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서 반대하려는 것입니다. …”(동광 1931년 7월호)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추진위원회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추진위원회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추진위원회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추진위원회

3. [노동운동] 동일방직 똥물투척사건

1970년대의 대표적인 노동운동이다. 당시 여성노동자의 주요 일자리인 섬유 방식공장은 노동자들은 숨 쉬기 힘든 먼지와 방직기의 굉음, 열기 속에서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여공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권익 확보에 나섰다. 1976년 동일방직 알몸 투쟁, 1978년 똥물투척사건은 어용노조가 민주노조를 탄압하면서 벌어진 사건으로 이는 단순한 노사분규가 아니며 노동운동 차원을 넘어 반유신 민주화운동, 인권운동으로 전개됐다. 가부장적 노사문화와 남성폭력도 보여준다.

1979년 8월 11일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을 경찰이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 숨진 김경숙 열사. 당시 21세였다.
1979년 8월 11일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을 경찰이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 숨진 김경숙 열사. 당시 21세였다.

4. [저임금과 노동권] YH 여공 김경숙 사망

1979년 국내 최대 가발공장인 YH무역이 여공들의 임금 수개월 치를 체불한 채 수십억원의 돈을 미국으로 빼돌리고 폐업을 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입사 3년차 김경숙을 포함한 10~20대 여공 수백 명은 공장 기숙사에서 농성을 벌이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 진입해 도움을 요청하면서 투쟁을 이어갔다. 이틀 후 1000명이 넘는 경찰이 진입해 이들을 폭행하면서 연행했고 이 과정에서 건물 옥상에 올라간 노동자들 중 노조 집행위원이었던 김경숙이 추락해 사망했다. 이 사건은 10·26 사건으로 이어진 부마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5. [조기정년제] 이경숙 사건 26세 조기정년제 철폐

회사원인 미혼의 이경숙씨가 1983년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여성의 조기정년제 철폐로 이어진 사건이다. 당시 서울민사지법은 여성의 결혼 평균연령인 26세부터는 결혼퇴직이 예상되므로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여성 회사원으로서 수입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여성계가 함께 조기 정년제 철폐를 위한 운동에 나섰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에 영향을 미쳤다.

6. [차별정년제] 전화교환원 성차별 근로기준 

1983년 한국통신공사의 전화교환원 김영희 씨가 한국 최초로 고용관계상 성차별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거의 여성으로만 구성된 교환직렬의 정년을 일반직과 기능직 직원의 정년 55세보다 12세나 낮은 43세로 정하고 자신에게 정년퇴직을 통고한 것은 성차별을 금지한 헌법과 근로기준법에 위반돼 무효라고 주장했다. 1988년의 대법원 판결은 2008년 대법원이 사법 60주년을 맞아 선정한 ‘한국을 바꾼 시대의 판결 12건’에 선정되기도 했다.

7. [직장 내 성희롱 첫 소송] 서울대 조교 성희롱

1993년 8월 24일. 서울대 캠퍼스에 전지 6장짜리 실명 대자보가 내걸렸다. ‘한 교수의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을 밝힌다’라는 제목의 글에는 서울대 화학과 ○○○ 조교는 담당 교수인 신○○ 교수를 지목해 “교육을 빙자해 팔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듯이 쓰다듬었다” “양팔을 내밀어 뒤에서 포옹하는 자세를 취했다” 등 성희롱 사실을 구체적으로 폭로했다. 또 이를 거부해 자신이 해임됐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신 교수에게 5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리며 6년간의 법정 공방은 막을 내렸다.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은 성희롱이 범죄이자 노동권 침해라는 인식을 처음 일깨운 역사적 사건이었다.

비정규직 조합원의 해고 문제로 촉발돼 지난 5년 동안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해왔던 ‘기륭전자 사태’가 2011년 11월 종지부를 찍게 돼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이 눈물을 흘리며 소회를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비정규직 조합원의 해고 문제로 촉발돼 지난 5년 동안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해왔던 ‘기륭전자 사태’가 2011년 11월 종지부를 찍게 돼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이 눈물을 흘리며 소회를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8. [파견직] 기륭전자노조 장기농성

2005년 기륭전자 파견 노동자들이 사측의 불합리한 처우에 분노해 노조를 결정한다. 사측이 이들을 해고하면서 탄압하자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 2010년 10월까지 1895일에 걸친 장기 농성을 해 노사합의를 이뤄낸다. 김소연 기룡전자 노동조합 위원장은 100일에 가까운 단식투쟁을 벌인 치열한 싸움도 계약직·파견직 등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됐다.

9. [특수고용직] 88CC 캐디 해고

‘캐디’로 불리는 골프장 경기보조원 노조에 대한 88CC의 탄압은 2008년 5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경기보조원 한명이 해고를 당했고, 항의 글을 올린 노조원 60여명이 허위사실 유포로 해고됐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특수고용 노동자여서 노동청조차 노사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이들은 2014년까지 끈질긴 투쟁과 30여건의 법적소송을 벌였고 대법원 판결에 따라 대부분 복직하게 됐다. 이후 경기보조원의 정년을 60세로 늘리는데 합의하는 성과도 이뤄냈다.

KTX 해고 승무원들이 한국철도공사와 복직에 합의한 21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 승무지부장이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KTX 해고 승무원들이 한국철도공사와 복직에 합의한 2018년 7월 21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 승무지부장이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10. [비정규직] KTX 승무원 13년 투쟁

코레일은 승무원들을 채용할 당시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2년 후인 2006년 코레일이 말을 바꾸자 승무원 350명이 파업을 벌였고 이중 250여명이 집단해고됐다. 1·2심 법적 다툼에서 철도공사가 승무원들의 실질적인 사용자임을 인정해 승소했지만 대법원에서 뒤집히면서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해고 13년 만인 지난 2018년 7월 21일에 해고된 승무원들을 경력직으로 특별채용하는데 합의했다. 

참고: 유경순 ‘여성노동자의 역사’, 도움말: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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