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칼럼] 내 타이 친구
[정진경 칼럼] 내 타이 친구
  •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승인 2019.02.12 09:09
  • 수정 2019-02-12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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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타일랜드에서 온 친구가 하나 있다. 나는 예순이 넘고 그는 이제 겨우 마흔이지만 우리 사이는 친구라고 하는 것이 맞다. 목이 하도 뻣뻣하고 아파 타이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가 제이를 만났다. 그는 타이에서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한국에 와서는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제이는 한국말도 좀 하고 영어도 꽤 자유롭게 잘해서, 손짓발짓까지 더하면 우리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마사지를 받을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점점 친해졌다. 제이는 자매가 많은 단란한 가정에서 자랐고 결혼해서 딸 하나를 낳아 키우다가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일하면서 혼자 어린아이를 키울 수가 없어서,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돈을 벌러 한국에 온 것이다. 어느 정도만 모으면 고국에 돌아가 작은 가게를 열고 딸을 데려다 키우겠다는 꿈을 가지고, 그는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사장님이 점잖고 배려있는 여성이라 큰 힘이 되었지만, 무례한 손님들 때문에 곤욕을 치루는 일도 가끔 있었다. 거리에서 난데없는 차별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나는 한국사람으로서 창피하고 미안했다. 한 번은 너무 심한 스토킹을 당해서 일을 쉬고 숨어있어야만 했다. 네가 좋으니 같이 살자고 매일 술 먹고 가게로 쳐들어 와서 당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댈 데 없는 외국 여자라고 가벼이 보았겠지. 숨어있는 동안 나는 제이를 집으로 초대했다. 전철역으로 데리러 갔는데,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나를 보자마자 그 밝고 명랑한 친구가 눈물부터 쏟았다. 한참을 꼭 안아주었다. 집에 와서 밥 한 끼를 같이 먹으면서 마음이 좀 풀어진 것 같았다. 그는 한국을 참 좋아하는데, 한국에 살기가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그즈음 나는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입원했는데, 불편한 자세로 잠도 잘 못 자고 지내려니 목이 아파지면서 두통에 시달렸다. 할 수 없이 타이 마사지에 전화했더니, 친절한 사장님이 복숭아 한 상자까지 사 들고 제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찾아와 주셨다. 두 사람 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제이는 내가 다쳤다고 안타까워하며 정성껏 마사지를 해주었다. 간호사가 들여다보더니, “출장 마사지하세요?”하고 묻는데, 나는 차마 제이를 출장 마사지사라고 소개할 수는 없어서, “아, 내 타이 친구예요”라고 답했다. 제이 덕에 두통이 가라앉고 지낼만해 졌다. 환자복 차림에 현금이 없었던 나는 사장님의 선물을 받은 데다가 면목 없게 외상까지 두었다.

며칠 후 제이가 슈크림을 사들고 병문안을 왔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보는 데서 슈크림을 하나 먹고 있는데, 제이가 마사지를 해주겠으니 누우라고 했다. 자기 선물이라고. 늘 손을 써서 일하는 그는 가끔 손이 아파 고생한다. 그런 그가 하루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찾아와서 마사지를 해주는 것은 얼마나 큰 선물인가.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났다. 아픈 친구를 위해 마사지를 해주는 것은 재능기부의 최고봉이었다. 나는 제이보다 몇 배, 어쩌면 몇십 배 부자일지도 모르지만, 돈을 주지 못하고 그 선물을 고맙게 받았다.

제이는 타이랜드로 돌아갔다. 가기 전 딸과 같이 살 아파트를 샀다고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며 좋아했다. 지금은 원하던 대로 작은 가게를 하면서 그렇게 그리워하던 딸과 재미나게 살고 있겠지. 그는 관광학과 출신으로, 내가 타이랜드로 놀러 오면 아름다운 곳으로 데리고 다니며 구경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에서 험한 경험보다 따듯한 기억이 더 많았기를. 제이와 함께 몇 년간 친구로 지내서 행복했다. 국적도 나이도 처지도 다르지만 마음이 따듯해지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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