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참사, 그 이후엔…
대구 참사, 그 이후엔…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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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성금 모이지만, 가족 못찾은 사람 아직 많아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현장인 중앙로역과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있는 대구시민회관 사이 도로 500미터에 촛불과 흰 국화, 눈물과 기도가 넘쳤다.

그을린 벽엔 애절한 절규가 새겨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찾는 벽보 앞에는 종교도 민족도 국경도 없이 모두 하나가 됐다. 시민 애도의 날이었던 23일 시민들은 휴일 나들이 대신 검은 리본을 달고 현장을 찾았다.

10시 추모사이렌이 울리자,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묵념했다. 갖가지 공연과 행사는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는 추모음악회, 추모행사로 다시 열렸다.

23일 합동분향소엔 추모객 2만여 명이 다녀갔다. 전국에서 성금, 지원물품이 와 23일 이미 200억여원을 넘었다.

200여개 단체에서 자원봉사자 6천여 명이 다녀갔다. 대구시자원봉사센터를 비롯, 대기업·공무원·유통업계의 봉사원들, 적십자사·간호협회·농협고향주부모임 등 주부 자원 봉사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경찰은 복구를 이유로 사고현장을 훼손시켜 유족들의 비난을 샀다. 사고대책본부에 접수된 실종자 수는 501명,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에 접수된 실종자 수는 154명으로 차이가 큰 상태다.

실종자 대부분은 사망자일 가능성이 크다.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각종 유품들이 쓰레기통에서 발견됐다.

사령팀 지시만 따르려다 승객을 대피시킬 때를 놓친 기관사의 사고처리 능력 부족, 허술한 조직운영과 방재시스템, 안일한 대응, 모든 것이 인재였다. 그동안 대구는 권력의 핵심을 배출했다는 자만심과 안도감으로 사회 전체 기강이 흐려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구 박남희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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