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 (anti-hoju.lawhome.or.kr)

1957년 민법이 제정되면서부터 진행되어 온 호주제 폐지운동은 3회에 걸친 가족법 개정,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비롯한 시민단체들로 결성된 호주제폐지시민연대의 호주제 폐지 입법청원(2000년 9월), 호주제 관련조항에 대한 위헌심판제청(2001년 4월), 대선과정에서 보여준 노대통령의 호주제 폐지 의지와 참여정부의 국정과제 포함 등으로 이제 그 최적의 시점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2월 13일에는 생부의 성(姓)을 강제하는 민법 제781조 제1항에 대한 법원의 위헌심판제청도 있었다.

재혼가정 자녀인 소송당사자의 위헌심판제청신청을 받아들인 법원은 남자가 재혼해 새로운 가정을 이룰 경우 남편이 데리고 온 자녀들은 그대로 남편(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지만 여자가 데려온 자녀들은 새아버지의 성과 본이 아니라 친아버지의 성과 본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남녀평등의 원칙에 어긋나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위헌심판제청의 이유를 밝혔다. 법 논리에 따른 당연한 결정이지만, 우리 사회의 오랜 부계혈통주의의 벽을 절감해온 탓에 소송 당사자와 법원의 용기에 새삼 찬사를 보낸다. 이는 또 한편에 자리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앞선 의식을 절감할 수 있는 한 예이다.

이제는 호주제 폐지라는 대미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에 호주제 폐지운동의 무게를 실을 시점으로 판단된다. 호주제 폐지 이후 대안을 위한 논의도 중요하다. 호주제를 폐지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국회에 의한 입법이다. 즉 행정부·입법부·헌법재판소라는 3륜의 바퀴가 맞물려 움직여줄 때 가능한 것이다.

지난 25일 출범한 참여정부에서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정부의 더욱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노력이 경주될 것으로 기대된다. 헌법재판소는 계류중인 호주제관련 조항 위헌법률심판사건에 대해 신속한 위헌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국회에서 맡은 바 입법의무에 충실하였다면 이미 호주제는 폐지됐을 것이다.

2001년 호주제폐지시민연대가 실시한 호주제에 대한 국회의원 의식조사의 응답율이 과반수에 못 미치는 41.7%에 그쳤었던 점을 고려하면, 제16대 국회에서 호주제폐지를 위한 입법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변화하는 시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국회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만일 2003년 내에 호주제 폐지를 위한 구체적인 입법노력이 가시화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내년에 있을 17대 국회의원 총선을 기약할 것이다. 호주제폐지를 공약하는 의원후보들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는 포지티브 전략이 유효하게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법은 국민들을 선도하고 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을 지향해야 할 적극적인 기능을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입법의 책무를 지는 의원들의 의식이 국민들보다 뒤쳐진다면 입법부의 구성원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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