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서 홀로 사는 할머니들 귀국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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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대표 최봉태, 이하 시민모임)은 지난달 22일 곽병원에서 ‘훈 할머니, 조윤옥 할머니 2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김학순 할머니의 ‘내가 위안부였다’는 최초 증언을 시작으로 대구에서는 문옥주, 이용수 할머니 등의 증언이 뒤이었다. 일본이 일본군의 ‘성위안’을 위해 군대 안에 위안소를 설치, 식민점령지의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고, 그 수는 전국 209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고령이거나 세상을 떠나 137명만 살아있다. “일본의 사죄를 받기 전까지 절대로 죽을 수 없다”고 울부짖던 할머니들, 뭇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이름을 숨기고 살아온 할머니들은 살아 있을 때 위안부 문제가 풀리길 기대한다.

대구 출신 훈(본명 이남이) 할머니는 16세에 끌려가 중국, 싱가포르, 캄보디아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50년간 캄보디아에서 살다가 1998년에야 영구 귀국했다. 그러나 50년 넘게 살았던 캄보디아를 잊을 수 없어 되돌아간 뒤 2001년 2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다시 조국으로 돌아왔다.

18세에 떠났던 고향에 결국 한줌의 재로 돌아온 조윤옥 할머니. 고향인 대구로 오고 싶어했지만 귀국 처리과정에 북한 국적을 갖게 돼 쉽지 않았다. 98년 시민모임은 외교통상부로 공문을 보냈지만 정부는 도와주지 않았다.

시민모임은 가족상봉을 주선해 중국에서 만날 수 있게 했다. 또 2년에 걸쳐 국적문제를 해결했다. 그 때가 2000년 12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에 가겠다”던 할머니는 2001년 2월 6일 중국 훈춘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시민모임 안이정선 실행위원장은 “정부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조윤옥 할머니는 고향에서 가족들도 만나고 편안히 눈을 감으셨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안 위원은 “여성부 신설로 정신대연구소가 지원을 받아 중국과 일본 등 해외조사를 하게 돼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추모제를 연 시민모임 대표 최봉태 변호사는 “일제시대 고생하시던 할머니들이 고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이국 땅에서 유명을 달리하여 한줌의 재로 돌아오고 있다”며 “정부는 미국에서 하고 있는 소송 뿐만 아니라 할머니들에 대한 진상조사와 관련한 입법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1년동안 심의조차 되고 있지 않은 ‘일제강점강제동원피해자 진상규명등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다면 외국에 계시는 할머니들이 올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했다. 추모제가 있던 날,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슬픔과 겹쳐 참석한 이들의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했다.

경북 권은주 주재기자 ejskw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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