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로 드러난 체육계 민낯
‘맞아야 실력 오른다’는 지도자
선수와 코치 관계는 주종 관계
메달 카운트 문화는 폭력 정당화
대응 메뉴얼 조차 마련 안한 정부
합숙하는 선수촌 제도 없애고
여성 지도자, 협회 임원 늘려야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재범 성폭력 사태 근본 대책 마련 긴급 토론회 ‘왜 체육계 성폭력은 반복되는가?’가 열려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이 발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재범 성폭력 사태 근본 대책 마련 긴급 토론회 ‘왜 체육계 성폭력은 반복되는가?’가 열려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이 발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운동선수들이 잇따라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며 체육계 미투가 확산되고 있다. 피해 사실을 고발한 이들은 10년이 지나서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스포츠 분야 성폭력 예방을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나 정부와 협회는 형식적인 기구를 만드는 등 시늉만 했을 뿐이다. 그 사이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상당수 성폭력 피해자들은 지도자로부터 폭력 피해를 입은 뒤에 성폭행을 당했다. 폭력-성폭력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피해자들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체육계 위계 질서와 성적 지상주의가 체육계 성폭력의 근본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대한체육회에서 전 스포츠 인권 강사를 했던 A씨는 16일 “많은 인권 강사들의 워크숍 자리에서 한 지도자가 ‘애들은 맞아야 실력이 오른다’는 말을 했다”고 폭로했다. 체육계 성폭력 문제로 드러난 폭력적인 조직 문화는 메달 지상주의가 만든 적폐 중 적폐라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여성 국회의원 일동과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위원장 정춘숙)가 공동 주최해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왜 체육계 성폭력은 반복되는가, 조재범 성폭력 사태 근본 대책 마련 긴급토론회’ 자리에서 엘리트 체육을 강조해온 한국 스포츠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A씨는 이날 “빙상연맹 지도자들에 노동권 교육을 하려고 했지만 그 자리를 불편해할 수도 있다는 담당자의 말에 교육이 취소됐다”며 “인권교육도 200명, 300명, 최대는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형식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스포츠계에서 운동선수가 성폭력 피해를 말했을 때 이를 응대하는 메뉴얼이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솔직히 밝혔다. 
김현목 문체부 체육정책과 사무관은 “스포츠계에 성폭력이나 폭력에 대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조치가 마련돼 있지 않고, 운동선수가 피해사실을 폭로해야 했을 때 응대 메뉴얼이 없다”며 “이들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이번에 유도 분야에서 성폭력이 폭로됐을 때 보도자료에 피해자 전화번호 등 신상정보를 넣은 것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메뉴얼을 적극 개발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다른 분야의 미투 운동은 한명이 얘기하면 다른 사람의 폭로로 이어지는 미 다음 투가 바로 나오는 데 체육계는 미 다음 투가 나오는 게 너무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며 “수직적인 권력 구조에서 ‘이 얘기를 폭로하면 선수 생활이 끝난다’고 말하면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을 알기 때문에 선수가 느끼는 두려움은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재범이 이번 사건으로 어떤 처벌을 받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직책을 내놓고 이 일에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1학년 때까지 하키 선수를 했던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국민체육진흥법에서 국위 선양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데 이는 ‘결과 중심주의’로 과연 국위선양이 중요한 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선수촌 제도가 과연 합리적이고 정당한 지, 대체할 방법이 없는 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경란 한국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체육계에서 미투 신고접수에 대한 조사 및 피해자 지원을 원스톱으로 진행해야 한다” 며 "폭력 및 성폭력 실태조사를 더 적극 진행하고 스포츠인권 정책 제도화를 위해 관련 부처가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체육계의 남성중심적 문화는 여성 지도자 부족으로 이어졌다. 대한체육회 자료를 보면, 2018년 등록된 전국 남녀 지도자는 총 1만9,965명으로 이 가운데 여성 지도자는 3571명(17.9%) 뿐이다. 같은 해 선수로 등록된 여성 선수(3만1572명, 23.3%)에 비하면 여성지도자는 매우 부족한 셈이다. 협회 여성임원도 손에 꼽을 정도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대한체육회의 여성임원 비율이 2017년 기준으로 13.7%인데 이 같은 비율로는 여성의 대표성이 확보되지 못하며 이를 30% 이상으로 맞춰야 한다”며 “피해선수들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데 들어가는 법률 지원이 아주 적은 수준에 그치고 있는 데 법적, 의료적, 심리적 지원을 적극 해나가야 한다”고 발표했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도자가 발로 선수들을 걷어차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다”며 “메달을 카운트하는 스포츠 문화는 지양돼야 하며 선수들을 응원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문체부는 선수촌에서 성폭력과 폭력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선수촌 운영과 관리 실태 전반에 대해 지난 11일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체육계 (성)폭력 조사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참여를 검토하고 체육계 비리 업무를 전담하는 독립기관인 스포츠 윤리센터 설립 지원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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