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의 늪에 빠져
매연 품는 괴물된 우리들
주변 돌아보는 의식·제도
변화만이 괴물 물리칠 카봇
역할 대신 할 수 있어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어느 어린이 애니메이션에 보면 각종 오염물질을 내뿜는 괴물을 카봇이 물리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 괴물이 그리 흉칙하게 생기지 않았다. 7세 아동 기준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허술하면서 귀엽고 친근한 모습도 있다. 그 괴물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는다.

필자는 언젠가 이 지면을 통해 여성운동이 나서서 미세먼지와 투쟁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환경문제의 다양하며 구조적 차원이 있겠지만, 생활 속 작은 변화가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그리고 페미니즘, 여성운동을 언급하려면 환경보전 가치와는 당연히 연결되는 요소가 있다. 태생적으로 익숙해진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문화, 규범, 가치를 바꾸려면 당연히 불편한 문제제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환경 관련 문제제기도 사람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진보·보수 기득권 집단에게 젠더, 환경, 평화는 여성운동이 제기하는 공통적이면서 도전적인 주제다.

최근 베이징보다 서울이 더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 국무총리가 범정부 차원 특단의 대책을 내놓겠다는 발표는 이미 그 전에 나왔다. 그러나 일상에서 우리는 변화하고 있는가?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늘 환경은 파괴하는 것이고 나와 가족의 편함을 위해 에너지는 마구 쓰는 대상이었다. 오히려 더 많이 쓸수록 자신의 경제·사회적 지위를 뽐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추운대로 더운대로 그리고 또 아무 생각 없이 에어컨을 켜고 히터를 튼다. 이렇게 살면서 운전석에 앉으면 엔진공회전을 한다.

화력발전소와 중국 쪽에 아무리 손가락질을 해대고 미세먼지 발생 요인으로서 자동차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지키지도 않는 차량 2부제나 차량 운행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편안함의 늪에 빠진 한국 대중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이다. 그래서 우선 차는 몰고 다녀도 잠시 주정차 할 때라도 엔진공회전을 하지 말자는 제안이다.

이미 우리는 너도 나도 카봇이 물리치는 매연 뿜는 괴물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량운행을 중단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주정차해 있을 때라도 시동을 끄고 괴물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벗어보자. 어제도 저녁에 버스를 기다리는 몇 분 사이에 자기 가족들 데리러 나왔는지 지하철 역 근처에 늘어서서 매연을 내뿜고 있는 자동차들을 보았다. 5대의 승용차와 SUV 차량이 늘어서서 지나가는 사람들 보란 듯이 엔진공회전을 하고 있었다. 다른 때도 아니고 미세먼지 최악이라는 경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추위에 떨면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걸어가는 상황이었다. 시커먼 차 창 때문에 안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이 괴물들은 아마도 스마트폰 화면에 코를 처박고 있느라 밖에서 추위와 미세먼지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현행 대기환경보전법 상 어제 상황은 단속도 못한다. 영하의 기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추울 때와 더울 때를 가려서 시동을 켜고 있나? 그냥 편안하게 살면서 습관적으로 아무 생각없이 켜놓고 있다. 평소에 마주치면 이 괴물들 역시 선량한 엄마, 아빠이고 청년, 그리고 친근한 이웃이다. 그리고 본인이 그런 괴물짓을 하고 있다는 의식도 못할 것이다.

엔진공회전 하는 이들의 손목을 부러뜨릴 카봇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법규정과 관계없이 내 주변을 둘러보고 불편함을 참아가며 엔진공회전 자제부터 시작해 지속가능 에너지 자원 이슈까지 고찰하는 의식과 제도의 변화만이 카봇의 역할을 대신 할 수 있다. 마지막 한 마디! 그렇게 계속 시동 켜고 있으면 히터 바람에 피부가 갈라져서 진짜 괴물이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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