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있는 그 곳에 사람이 산다] "도서관 건립 마을 여성들이 주축 됐죠"
[온기 있는 그 곳에 사람이 산다] "도서관 건립 마을 여성들이 주축 됐죠"
  • 채윤정 기자
  • 승인 2019.01.06 06:05
  • 수정 2019-01-06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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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있는 그 곳에 사람이 산다]
구산동도서관마을
주택 8채를 연결해 지은 곳
다세대주택, 골목구조는 그대로 살려
6000여권 만화 소장한 전국 유일의 만화자료실
만화·소설 등 창작강의 많아, 인문학 강의도 인기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구산동도서관마을의 ‘마을마당’ 중앙의 열람실은 과거 골목길이였다. 한 쪽 벽면의 붉은 벽돌 테라스는 옛 연립주택의 원형을 그대로 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구산동도서관마을의 ‘마을마당’ 중앙의 열람실은 과거 골목길이였다. 한 쪽 벽면의 붉은 벽돌 테라스는 옛 연립주택의 원형을 그대로 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은평구 구산동 골목. 다세대 주택과 단독주택이 즐비한, 전형적인 서민 주거 지역이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도 없는, 차가운 도시 한 귀퉁이를 따뜻한 마을로 만드는 도서관이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 실제로 다세대 주택 3채와 단독주택 5채 등 총 8채를 재활용해서 만든 이 도서관은 이름부터 아예 마을이다.

원래 있던 건물을 연결하다 보니 계단이 많고 오르내리는 통로가 많다. 옛집을 허물고 반짝반짝하는 새 건물을 올린 것이 아니라 2~4층짜리 다세대주택의 구조를 그대로 살리고, 건물 사이 좁은 골목길을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단독주택 5채는 허물고 100석 규모의 청소년공연장을 지었다. 다세대주택 외벽이었던 붉은 벽돌 발코니가 아직 남아있다. 지하 1, 지상 5, 연면적 2550의 공간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도서관 공간이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도서관보다는 북카페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이유는 도서관에 로비가 없고 열람실이 없기 때문이다. 자료실도 문이 따로 없다보니 대형서점 안에 있는 것도 같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을 짓기 전의 마을 모습. ⓒ 구산동도서관마을 제공
구산동도서관마을을 짓기 전의 마을 모습. ⓒ 구산동도서관마을 제공

신남희(53) 도서관마을 관장은 도서관 청소년운영위원회에서 일을 하다 이 도서관이 좋아 고등학교 졸업 후 이 도서관의 계약직 행정직원으로 취업한 친구도 있다그 직원은 친한 동네 친구랑 이 도서관에서 일하자고 약속했는데 그의 친구는 대학에서 문헌정보학과를 부전공으로 하려고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행정직원이 된 임모(22)씨다.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세무, 회계를 공부한 그는 일반 회사에서 1년 간 일하다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어 이직을 했다.

은평구에서 2번째로 규모가 큰 이 도서관은 29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데 이 중 사서가 22명이다. 이 중 8명이 도서관 설립을 위한 활동가로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5명이 사서 자격증을 취득해 새 삶을 시작했다. 마을이 경력단절 여성이나 전업주부들에게 새 일자리를 만들어준 셈이다. 특히 집이 코앞이다 보니 방학에는 점심시간에 집을 방문해 아이들과 밥을 먹을 수 있어 만족도는 더 크다.

위에서 내려다 본 구산동도서관마을의 ‘마을마당’ 중앙의 열람실은 과거 골목길이였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위에서 내려다 본 구산동도서관마을의 ‘마을마당’ 중앙의 열람실은 과거 골목길이였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마을 활동가를 하다 이 도서관에 들어온 한탁영(54)씨는 주부들의 일 공동체인 마을엔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해왔으며, 가장 젊은 나이로 도서관에 입사한 활동가 김영미(44)씨는 공동육아협동조합, 방과후 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등에서 자원봉사를 해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04년에서 2006년 당시 마을 활동가들은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이면서 작은 도서관 등에서 자원봉사를 했었는데 지역에 문화시설이 없어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보니 아이들에게 좋은 곳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도서관 설립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2000년대 초까지 구산동, 갈현동, 역촌동에는 도서관이 없었고 마을 주민들은 대조동 주민자치센터 공간을 빌려 운영되는 작은 도서관을 이용했다. 인구가 약 50만명인 은평구에서 이 지역은 특히 초··고등학교가 11개나 되는 인구밀집지역이다. 집들도 오래되고 비좁아 도서관이 더 절실했다. 현재 1일 방문자수가 방학에 2000, 평소에 1000명 정도로 열람실이 없어 공부를 위해 방문하는 수요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많은 수치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서울 은평구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위에서 내려다 본 서울 은평구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도서관의 가장 큰 강점은 6000여권의 만화를 보유하고 있는 만화자료실이다. 특히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코주부 삼국지’, ‘토끼와 원숭이’, ‘엄마 찾아 삼만리등 만화 원본을 복제한 영인본도 전시해두고 있다. ‘마루치아라치등 오래된 만화 뿐 아니라 최근까지 인기 있는 원피스등 만화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통 도서관에는 책 대신 만화를 읽을까 우려하기 때문에 ‘WHY’ 등 학습 만화만 갖추고 있는 게 대부분이다. 혹시 이 마을 학부모들이 만화 자료실을 싫어하지는 않을까.

만화자료실 박학경 사서(58)만화라고 무조건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역사와 현대사 등을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는 좋은 만화가 많고, 그 이상의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오히려 주민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신 관장도 만화는 연령층에 관계없이 모두 좋아하는 데 못 보게 할 이유가 없다우리는 주민참여예산 5억원을 확보해 전국 유일의 만화도서관을 꾸몄다고 소개했다.

신 관장은 또 은평구에는 작가와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데 이 도서관에서는 소공 작가 등 주로 은평구 만화가를 섭외해 주민 대상으로 만화 강의를 진행해왔다그러다보니 이 강의를 오래 들은 몇 명의 주민들이 웹툰 등을 통해 만화가로 데뷔했다고 소개했다.

또 만화 수업을 들은 초··고 학생 등이 직접 그린 만화를 전시한 코너도 있는데 꽤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마을 자료실에는 이 도서관이 어떻게 생기게 됐는지, 은평구의 50년 전은 어떠했는지 등 지역 역사 자료를 구비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을 위한 권장도서, 학습 연계 도서 등을 전시하는 청소년자료실도 마련돼 있다. 이 자료실 덕에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들도 학교에서 반 별로 도서관을 찾아 활동을 진행하는 일이 많다. 청소년자료실 운영에는 이 마을의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청소년 운영위원회가 의견을 개진하고 벽화를 직접 그리기도 했으며, 다양한 행사도 진행한다.

 

신남희 구산동도서관마을 관장이 ‘마을마당’에서 기존 건물들의 외관을 살린 건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남희 구산동도서관마을 관장이 ‘마을마당’에서 기존 건물들의 외관을 살린 건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초등학교 5학년 김사랑(가명)양은 부모님들이 다 일하다보니 오빠, 동생과 집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1~2시간 정도를 집과 가까운 도서관에서 보낸다어린이 사서나 만화 강의도 듣고 3D 프린팅 강의를 통해 직접 제품을 만들어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도서관 강좌의 경우, 거의 무료로 진행되며, 비용이 있는 경우라도 1~2만원선에서 저렴하게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어 더욱 인기다.

이 곳의 또 다른 특성은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동아리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 곳의 동아리는 초등학생부터 청년, 할머니·할아버지들까지 연령대에 관계없이 참여하는 것이 강점이다. 라디오 방송국, 낭독, 합창 등 동아리에 참여하는 김이삭(26)씨는 이 도서관에서 평소 관심 있고 진로와 관련되는 동아리에 참여하고 있다참가자들의 나이대가 다양하고 어르신들도 많다 보니 배울 점이 많고, 나이와 관계 없이 많은 공감대도 형성된다고 말했다.

구산동도서관마을 만화자료실 ‘만화의 숲’에는 국‧내외 만화들과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 탄생한 만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만화가의 방’ 등이 마련돼 있어 다양한 만화 컨텐츠를 즐길 수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구산동도서관마을 만화자료실 ‘만화의 숲’에는 국‧내외 만화들과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 탄생한 만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만화가의 방’ 등이 마련돼 있어 다양한 만화 컨텐츠를 즐길 수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구산동도서관마을 만화자료실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오래된 만화들의 영인본을 전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구산동도서관마을 만화자료실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오래된 만화들의 영인본을 전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 곳의 동아리는 30개 정도로 뜨개질, 시 읽는 동아리 등 다양하다. 동아리방이 54개나 되다보니 방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어린이들을 위해 독서논술, 한국사, 토론 뿐 아니라 성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스피노자, 프로이트, 푸코 등 인문학 강의도 열린다. 인문학 강의는 특히 입소문이 나면서 강남은 물론 고양시 주민도 참여해 매회 4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작가를 이 도서관에 파견해 주 40시간씩 머물면서 글도 쓰고 대화도 나누며, 창작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정지돈 소설가가 참여하고 있다.

강당에서는 다양한 영화도 상영된다. 독립영화 상영회도 진행된다. ‘B급 며느리의 선호빈 감독, 그 부인 김진영 주연배우가 주민들과 대화를 갖기도 했고, 생리를 주제로 한 피의 연대기김보람 감독과 주민들의 대화도 진행됐다.

이달에는 방학과 설날을 맞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까치까치 설날에는 무슨 놀이를 할까등 설날 전통놀이 체험과 독서교실이 진행된다.

다른 마을에서도 자주 찾을 정도로 명물이 된 이 도서관의 1층에는 이번 달에 카페도 오픈될 예정이어서 앞으로는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리며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구산동도서관마을 스튜디오에서 주민들이 주민라디오 방송인 ‘어울 라디오’ 녹음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구산동도서관마을 스튜디오에서 주민들이 주민라디오 방송인 ‘어울 라디오’ 녹음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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