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만남] "여성 없는 기계 설비 분야에서 여성의 섬세함으로 승부"
[여성신문-만남] "여성 없는 기계 설비 분야에서 여성의 섬세함으로 승부"
  • 채윤정 기자
  • 승인 2018.12.20 13:30
  • 수정 2018-12-20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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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설비업체 세일이엔에스 심기석 대표
사환으로 입사해 사장이 된 업계의 신화
여성이라고 현장 나가는 걸 거른 적 없어
차에는 항상 바지, 안전모, 안전화 구비
언제든 현장 나갈 수 있게 준비

기계설비 전문건설업체 세일이엔에스(주)의 심기석 대표이사는 갑작스런 건설현장 방문에 대비해 항상 자동차에 안전화와 안전모를 준비해둔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기계설비 전문건설업체 세일이엔에스의 심기석 대표이사는 갑작스런 건설현장 방문에 대비해 항상 자동차에 안전화와 안전모를 준비해둔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남성이 대다수인 분야에서 여성이어서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봐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여자여서 남자들보다 섬세한 면이 있어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요. 또 행사를 가더라도 여성은 저 한 명이었기 때문에 항상 관심을 받을 수 있었어요.”

심기석 세일이엔에스 대표이사(64)는 여성신문사가 주최하는 ‘2018 상호 존중하는 좋은 경영대상에서 2회 올해의 여성 리더에 선정됐다. 그는 좋은 상을 수상하게 돼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듭니다. 지금 이 순간이 저의 전성기라고 생각하며 더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세일이엔에스는 공조회사라고 불리는 냉난방 설비 공사를 하는 회사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 아파트, 건물 등에 여름에 시원하게 하기 위한 닥트(배관) 공사 등도 진행하고 바닥에 난방 코일을 놓는 공사도 하고 있다.

1973년 열아홉살 대입 재수생이던 그가 기계설비업계에 발을 디딘 당시에는 이 분야에서 여성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는 전화 받는 사환으로 세일이엔에스에 입사해 34년 만인 2007년 직원 112명 규모의 이 회사 대표 자리에 올랐다. 13년째 수장을 맡아 국내 기계설비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많은 회사들이 대표 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데 비해 세일이엔에스의 회사 설립자의 자식들이 예술 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대표 자리에 뜻이 없었고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을 차근차근 밟아온 그가 대표에 오르게 됐다.

낮에는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학원을 다녔어요. 그러다 오빠가 친구 회사에 소개시켜줘 들어가게 됐죠. 과외를 하는 것보다 더 돈을 많이 줬기 때문에 취업했어요. 청계천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달랑 책상 3개에 소파 하나 뿐이어서 엄청 실망을 했어요. 저를 포함해 전체 직원이 3명이었는데 2명은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왔어요. 저 혼자 전화 받고 커피잔을 씻으면서 회사를 지키는 신세가 처량해 스스로 불독이라고 불렀어요. 당시에는 15밀리미터 등 단위를 일본어로 얘기했는데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보니 혼자 있는 시간에 책상에 적어놓고 외우곤 했어요.”

회사를 그만둔다고 부모님과 오빠에 말하기 난처해 그가 가까스로 버텨냈던 회사에 다닌 지 1년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에는 토요일은 당연히 근무했고 일요일까지 항상 출근을 해 힘들었어요. 또 혼자서 회사 전화를 받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다른 직원들이 들어와요. 친구들하고 영화 보려고 명동에 약속을 잡아놨는데 저 먼저 퇴근을 못 하겠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을 못 만나게 되는 일이 반복되더라구요.”

친구들이 다니던 서울대, 고대, 경희대 등 순례도 했다. 일을 하는 것 자체는 좋았던 터라 회사에 사표를 내지 못 했고 재수도 포기했다.

처음에는 관리 업무를 했지만 점차 업무가 익자 견적 업무도 하게 됐고 경력이 쌓이면서 구매업무까지도 맡게 되자 회사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의도치 않게 업무를 고루 배울 수 있었어요. 임원이 되면서 영업 업무도 담당했죠. 본래 성격이 여성적이고 사람들을 잘 챙기는 스타일이라 영업을 위해 직원들을 만나면 2000원짜리 초코렛 같이 작은 선물을 챙겨가곤 했어요. ‘내 마음이야라며 초코렛을 줬는데 2000원을 돈으로 줄 수도 없잖아요. 하하 고등학생 딸이 있는 집에는 예쁜 손수건도 선물했어요. 그러다보니 여러 모임에서 다음 선물을 기대한다는 말을 들어요. 저는 비싼 걸 선물한 적이 없지만 재미있고 필요한 것들로 골랐어요. 작은 선물은 내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표현이었어요.”

그는 회사에서 작은 업무를 맡을 때는 항상 내 회사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사환으로 일할 때 세금계산서가 들어있는 편지봉투를 그냥 버리는 게 아깝더라구요. 글자가 쓰인 부분은 자르고 봉투의 하얀 부분을 자르면 메모지 2장은 만들 수 있었어요. 그 종이에 사장님께 전하는 메모를 적어 드리곤 했어요. 구매 일을 할 때도 어떻게 남들보다 2% 더 싸게 더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는 지 항상 고민했어요.”

건설사와 일을 할 때가 많은데 그는 진정성을 가지고 일에 최선을 다해 완성도 있게 끝마치는 데 주력했다.

설비 공정 회사가 엉망이면 담당 직원도 설비 관련 고과를 잘 받을 수 없잖아요. ‘이 사람하고 다음에 또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일했어요. ‘심기석이 하면 사고가 안 난다는 말을 들었죠. 손해가 났을 때도 당장의 손실에 연연하기보다 앞으로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투자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어요.”

기계 설비 업체는 주로 건축사의 협력업체로 들어가 공사를 진행하는 데 이외에도 반도체, 일반 신축건물 등에서도 공사를 진행한다.

세일이엔에스의 차별화된 점은 다른 업체들이 꺼려하는 반도체 분야와 마트·백화점·병원·호텔, 오피스 등 건물의 비중이 전체 매출의 80% 정도로 높다는 점이다. 아파트는 오랫동안 매출이 유지돼 안정적이지만 하자가 나면 큰 문제가 되는데, 일반 건물은 하자가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

반도체 등 공사를 돌관공사라 부르는 데 보통 아파트 공사가 3년 정도 걸리는 것에 비해 6개월 만에 진행되며 공사 자체가 어려워요. 짧은 기간에 하는 만큼 아파트 공사는 50~60명 정도가 필요한 데 반해 반도체는 사람이 500~700명까지도 필요하게 되요. 아파트가 3년에 100억원 정도를 버는 데 비해 반도체는 6개월 만에 200~300억원을 벌 수 있지만 인건비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잘못 하면 큰 손해가 나기도 하죠.”

그만큼 반도체 등 공사는 현장 직원들의 라인업을 최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이 같은 전략을 통해 세일이엔에스는 최근 경기가 악화된 상황에서도 올해 매출 2100~2200억원 정도, 내년에는 2300억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그는 회사 규모가 커지다 보니 CEO로서 직원들 복지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고졸 출신의 직원이 전문대에 가거나 전문대를 졸업한 직원이 4년제 대학에 가는 등 대학 교육을 받으면 저희가 교육비를 70% 대주고 있어요. 제가 교육을 많이 못 받았는데 저 때는 그런 게 별로 상관이 없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승진 등에 대학이 필수이잖아요. 그렇게 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지금은 임원이 됐어요. 자녀들의 대학 교육비도 2명까지 대주고 셋째를 낳으면 500만원도 지급해요.”

 

기계설비 전문건설업체 세일이엔에스(주)의 심기석 대표이사가 17일 서울 강남구 세일이엔에스 본사에서 여성신문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세일이엔에스의 심기석 대표이사가 17일 서울 강남구 세일이엔에스 본사에서 여성신문을 만나 사환에서 사장이 된 그녀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들려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가 일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남자가 하는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똑같이 한다는 것이다. ‘여자라고 해서 현장에 안 나간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통 현장에 630분 도착해 7시부터 체조를 해요. 현장에 나갈 때는 중무장을 해야 해요. 굽 높은 구두를 신고 현장에 가면 구두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저를 신경 쓰게 돼 업무에 방해가 되죠.”

어떤 날은 음악회에 잘 차려 입는다고 원피스에 밍크코트를 입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급하게 와줄 것을 요청했다.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던 터라 할 수 없이 그 차림 그대로 현장에 가서 집에 다녀올 시간이 없었다며 양해를 구한 적도 있었다.

그 이후로는 차 안에 바지와 안전화, 안전모를 항상 두고 다녀요. 평상시에는 주로 갈아입기 편한 치마 정장을 입고 다니고 현장에 갈 때 바지로 갈아입어요. 위에 회사 유니폼 점퍼를 입고 안전화, 안전모를 착용하면 완벽한 차림이 되요.”

CEO로서 강단있게 보이는 그이지만 사실 여성이 없는 건설 분야에서 고충도 많았다.

남자들이 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업신여기기도 했어요. 언어폭력이나 요즘으로 치면 성폭력적인 언어들을 쓰기도 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건설 분야에서 강의를 맡으면 당신의 누이동생이 나 같은 일을 해도 그렇게 대하겠느냐고 물어봐요. 여성 직원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격려해달라구요.”

그는 업계에서 건달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바로 건배사의 달인이라는 뜻이다.

제가 대한설비공학회 여성설비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어요. 거기에서 건배사 강의를 많이 해요. 회식에 가면 여자가 혼자다 보니 건배를 시키거나 한마디 하라고 꼭 하거든요. 이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지만 전 오히려 기회로 만들었어요. 운전하면서 그날 뭘 말할지 준비하곤 했어요. 시에서 한 구절을 따오기도 하고 사자성어에 나오는 말을 이용하기도 했어요. , 신문을 읽다가도 응용할 것이 있으면 바로 메모했어요. 중국음식점에 가면 중국 건배사를 했죠. 그러고 나면 한달 동안은 그 말이 유행되기도 했어요. 최근에 했던 것은 백설공주’, ‘백만가지 직업 중에 설비가 최고이며 공조로서 주어진 사명감으로 나아간다는 줄임말이었죠. 요즘에는 새로운 게 없냐는 질문도 많이 받아요. 하하 여직원들에게 강의할 때는 절대 준비가 안 됐다고 하지 말라고 얘기해요. 준비가 안 됐으면 이 자리에 계시는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라고 얘기하라고요. 그러면서 틈틈이 자기 껄 만들라구요.”

심 사장이 일에만 몰 두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그가 딸 2명의 어머니인데 아이들은 시어머니가 봐주시다 돌아가시면서 친정어머니가 동네로 이사 와 전담하고 봐주셨다. 또 사장이 되고 나서는 주방에 들어갈 시간이 아예 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남편이 쭉 식사 담당을 하고 있다. 아침에 일찍 나와야 하기 때문에 650분에 아침을 먹는 데 남편은 그가 좋아하는 계란 후라이를 매일 챙겨주는 '내조의 왕'이다.

어렸을 때는 아이들이 엄마는 회사가 1순위, 자신들이 2순위라고 말하며 서운해 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자기들은 엄마가 지금까지 일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해요. 최근에는 가족 카톡방도 만들어 하루에도 서로에게 10통씩 카톡 메시지를 보내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요. 만나서 말하면 고맙다는 말을 해도 민망할 때가 많은데 카톡방이 편하기도 하잖아요.”

그는 여성경제연구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등산 모임도 나가고 있다. 34년 째 하는 모임에 매달 한 번씩 참석한다.

제작년에는 1011일 일정으로 네팔의 안나푸르나도 다녀왔어요.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더 나이 들기 전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육체적 자신감은 물론이고 심리적 에너지도 많이 얻었어요. 최근에는 알프스의 3대 봉인 몽블랑, 마테호른, 융프라우에서 트래킹도 했고, 후지산에도 다녀왔어요.”

일 뿐 아니라 여가 생활에서도 의욕이 넘치는 그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했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전투하듯 회사에 나오긴 하지만 올해는 제가 체감할 때도 위기감이 컸어요. 하지만 위기가 있을 때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진에 11000평의 공장을 지었어요. 제가 못 해도 판을 만들어주면 후배들이 할 수 있으니까요. 올해 수주를 많이 해 내년에도 물량이 많기 때문에 공장에서 바닥 코일의 틀을 미리 만들어간다던가 하는 모듈화 작업을 진행해요. 현장은 넓어서 직원들 통제가 불가해 공장에서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예요.”

그는 이를 통해 생산성도 높이고 수익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은퇴 이후에는 춤도 배우고 외국어도 배우고 싶어요. 봉사 활동도 하고 싶구요. 1년에 1~2번은 여행도 가고 싶어요.”

그는 오늘도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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