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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여러 가지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의 모든 것을 해나가는 생활공간, 그리고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을 길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두 가지 길을 동시에 취하고 있다. 어떤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마지막에 우리가 만나게 되는 길은 과거와 현재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했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20대라는 나이-육체이자 정신-를 그에 덧붙여 본다면 이 시기는 제한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무수한 갈림길에 놓이는 때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는 길을 ‘한마디’로 표현해야 할지도 모른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 누군가 내게 나의 길, 즉 무얼 하면서 살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왜곡하지 않고 그것들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인간을 왜곡하지 않는 흐름에 합류하는 어떤 길을 택하고 싶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운동과 실천을 할 때 이론과의 투쟁 과정에서 우리는 어쩌면 정확히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 처해야만 한다.”

예전부터 여러 철학자들은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함께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그 모순적인 처지를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존재로 묘사했다. 곧 신과 동물 사이에 있는 것이 인간의 길인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 -2003년. 20대. 여성의 욕망과 욕구가 왜곡되고, 규정 당하고, 짓밟히고, 숨겨지는 이 공간-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20대에 우리가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했다면 우리가 지금 선택해야만 할 길이 있다고.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욕망과 욕구들을 실현하고자 하는 바람일 것이라고. 우리가 그런 소망들을 여성으로서 알게 됐다면 그것은 선택해야만 할 일종의 운명적인(?) 길처럼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 그 자체가 우리의 정체성과 욕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억압의 질서를 깨달았을 때 자기 기만을 하지 않으려면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존재가 돼야 한다. 물론 이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에서부터 그리고 일상의 작은 생각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여성은 남성 우월주의·가부장제 같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아 왔지만 동시에 이런 길들을 인식하기 위해 여성들은 충분히 의식화돼야 한다. 다양한 현실적 운동과 행동들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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