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1일부터 시행
그동안 남성은 9개월,
여성은 15개월에 1회
숙직·일직 나눠 맡아
학교처럼 숙직 전담인력 요구도

12일 서울시청 1층 로비에 마련된 여성 숙직실 앞을 직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시청 1층 로비에 마련된 여성 숙직실 앞을 직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시 여성 공무원들은 내년부터 숙직을 서야 한다. 서울시는 남성 공무원이 담당했던 숙직 업무를 “양성평등의 견인책”이라는 명분으로 여성공무원도 맡게 하는 개선안을 내년부터 시행한다고 지난달 29일 밝히고 12월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서울시에 따르면 본청 기준 전체 당직 대상자(5급 이하)는 4078명으로, 이 가운데 남성이 2466명(60%), 여성이 1612명(40%)를 차지한다. 그동안 숙직(남성)은 9개월, 일직(여성)은 15개월 주기로 순번이 돌아왔으며 사업소(전체 당직 대상자 3503명)는 남성(2155명, 62%)이 40일, 여성(1348명, 38%)이 63일 주기로 당직을 섰다.

그러나 서울시 조직에서 여성간부 비율은 턱 없이 낮고 ‘성비위’ 징계 건수가 2016년 3건, 2017년 5건에서 올해는 7월까지 8건으로 증가하고 있는 등 성평등이 요원한 상황에서 여성의 숙직 참여가 성평등 정책의 일환이라는 시의 발표에 실망스럽다는 등 부정적 반응이 크다. 실효성 낮은 숙직제도를 아예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함께 고려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그동안 서울시는 당직을 일직과 숙직으로 구분, 여성은 주말·공휴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일직을 맡았고, 남성은 평일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근무하는 숙직을 맡아왔다. 변경된 당직 제도는 남성과 여성 구분없이 숙직-일직 일정에 넣어 돌리는 것이며, 1월1일 본청부터 시작한다. 사업소 등은 내년 4월 이후 시행할 계획이다. 황인식 서울시 행정국장은 "여성 공무원 비율이 늘면서 남성 직원들의 숙직 주기가 빨라졌기 때문에 남녀 형평성 도모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4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참여자의 63%(여성 53%, 남성 66%)가 여성 공무원을 숙직에 포함하는 안을 찬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성 숙직을 포함한 ‘양성평등 견인책’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찬반 논란이 뜨겁다. 업무 효율성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는 의견과 함께 현실적인 문제를 들어 격렬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시 산하 사업소에 근무하는 여성 공무원 A씨는 “여성도 숙직을 서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사업소 내에서 지속적으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된 안전 장치도 없이 제도 시행부터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보수적이고 편견이 많은 공무원 조직에서 여성 숙직제 시행을 ‘양성평등의 견인책’이라고 말하는 수준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11일 퇴근시간이 지난 밤 9시가 넘은 시각 서울시청 곳곳에 불이 밝혀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1일 퇴근시간이 지난 밤 9시가 넘은 시각 서울시청 곳곳에 불이 밝혀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폭력으로 징계받는 서울시 공무원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경욱자유한국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성비위’ 징계 건수는 2016년 3건, 2017년 5건, 2018년 7월까지 8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그러나 해임 등 중징계는 단 3건에 불과했다. 감봉 8건, 강등 2건, 정직 3건 등 경징계가 대부분이다. 징계가 끝나면 복귀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계속 같은 청사나 사업소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서울대공원 동물원장은 여성 직원을 성희롱했다는 의혹으로 내부조사를 받고 감봉 3개월의 경징계를 받아 논란이 일었다. 당시 동물원장은 조류인플루엔자(AI) 비상근무를 서는 여성 직원에게 “내 관사에서 자고 가라”고 성희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 문제 해결도 급선무다. 공무원들이 당직을 하다 민원인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공주시청에서 당직을 서던 공무원 B씨가 자신의 민원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며 찾아온 시민에게 맞는 일이 있었고, 지난 7월에는 인천에서 노숙자가 당직 근무 중인 공무원을 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인적이 드물거나 야심해 안전 위협 요인이 있는 시간·장소에서 청사 밖 순찰을 하거나 대면 접촉이 필요한 업무를 해야할 경우에는 방호직·공공안전관·외부용역업체 와 긴급연락체계를 갖추는 등 당직근무자의 안전·보호장치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당직 개선을 계기로 숙직제도 자체를 없애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사혁신처는 당직(일·숙직)을 ‘휴일 또는 근무시간 외의 화재·도난 또는 그 밖의 사고의 경계와 문서처리 및 업무연락을 하기 위해 당번을 정하여 하는 근무’라고 정의한다. 화재나 도난을 예방하고 대응하는 데는 사람보다 IT가 더 빠르다. 소방 공무원도 아닌 일반 직원이 얼마나 대처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밤 중 민원은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120 다산콜센터가 맡을 수 있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 내부망에서도 여성 숙직 참여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숙직 체계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공무원은 “숙직 자체를 없앨 생각을 해야 한다”며 “여기에(논쟁에) 소모할 에너지면 이미 숙직 해결 방안이 나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여직원 숙직이 해결책일까요?’라는 게시물을 올려 “근본적으로 일·숙직을 전담하는 시간제 임기제 등을 채용해 일자리를 창출하는게 낫다고 본다”며 “숙직비 인상이나 여직원을 숙직에 포함시키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당직 전문인력 채용이 답이다’라는 게시물도 올라왔다. 댓글에는 “평소에는 5·6급 직원 한 명을 당직사령으로 하고 퇴직공무원을 채용해 당직전문관으로 근무하게 하면 (당직으로 인한) 대체휴무를 최소화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불만도 없앨 수 있다”는 구체적 제안도 나왔다.

실제로 일직과 숙직을 폐지한 사례도 있다. 교육부는 지난 1992년 ‘초중등학교 당직근무 규정’ 폐지를 포함한 당직근무제도 개선책을 발표했다. 교육에 집중해야 할 교사가 숙직으로 인해 교육에 지장을 받는다는 지적이 수년간 계속됐기 때문이다. 야간 경비원을 채용하거나 자동경비장치로 대체하는 학교가 늘면서 일·숙직을 없애는 학교가 점차 늘었고 2002년에 단체협약에 일·숙직가 포함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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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직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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