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포럼 – 공부의 모든 것]

에듀테크포럼 회원사들이 돌아 가며 재능기부로 기고하는 글입니다. 다양한 사교육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독자들께 도움 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은 여성신문의 공식적인 의견과 무관합니다. <편집자 주>

세종, 사람을 이해해야 좋은 교육이다

나는 기술 전공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소비재용 기술에 대해서는 점(?)을 잘 친다.

몇 년 전 구글글래스나 애플워치 등, 기존 아날로그 제품에 스마트기술을 접목한 카테고리가 쏟아져 나왔을 때, 기업마다 스마트폰 생태계에 적응하느라 고전한 경험 때문인지 스마트폰급의 새로운 시장이 생겨날 것인지 동분서주했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스마트 소품류는 그다지 괄목할 시장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었다. 실제로 나이키처럼 오래된 기업이건 핏빗 같은 신생업체이건, 스마트 액세서리 시장에서 오래 가지 못하고 철수했다. 심지어 스마트글래스 시장은 ‘그런 게 있었어?’ 할 정도로 잊혀진 이야기가 됐다.

점을 어떻게 치는가? 나는 기술보다 사람을 보았다.

스마트글래스는 기능만 생각하면, 세상을 바꿀 엄청난 제품일 수 있다. 하지만 안경이란, 몸의 다른 부위도 아니고 얼굴에, 그것도 내 마음이 내비쳐지는 ‘두 눈’에 걸치는 도구다. 인간의 눈이란 과거에도 ‘마음의 창’이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눈맞춤, 눈빛교환은 다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는 핵심 소통방식이다. 타인에게서 내 눈을 감추면 마음이 이상하게 편해진다. 바로 그런 게 눈이다. 스마트글래스를 쓰면 남들에게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대방에게 집중하는지 아닌지 죄다 노출되고 오히려 내 자유 시야를 침해 받는데, 과연 사람들이 쓰고 싶겠는가? 이게 나름 ‘사용자 관점’을 표방한 내 논리였다.

내가 세종대왕에게 흥미를 크게 느낀 건, 세종실록을 직접 읽으며 세종도 ‘사람 중심의’ 접근을 했다는 걸 알게 되어서다 (물론 내가 비교될 바는 아니지만…).

세종은 과학에 조예가 깊고 일하는 방식도 과학적, 논리적이었지만, 늘 사고의 시작과 끝은 사람에 두었다. 세종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도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일을 할 때에도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접목했다.

 

세종대왕 동상. @Pixability
세종대왕 동상. @Pixability

가장 인상적인 예로,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때를 볼 수 있다. 탁상공론으로 정책을 만들지 않고 최소 몇 년을 연구와 사람에 대한 임상 테스트를 거듭하면서 정책을 수립했다. 게다가 그렇게 수립한 개선 정책도 일괄적,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세종은 늘,

억지로 백성들에게 강제하지 말고, 백성들이 스스로 납득해서 수용할 때까지 기다리되, 새로운 정책의 장점을 잘 설명”

하도록 당부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외부에서 강제되면 반발하게 되는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한 것이다. 그는 무엇을 하건, 당사자인 ‘사람’이 어떤 심리와 이해타산으로 반응하게 될 지를 섬세하게 검토하고, 인정하고, 배려했다. 즉, ‘당사자 관점’이 시행착오를 줄인 비결이다.

그러면 세종은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보았을까? 세종18년 11월 7일자에서 그의 인간관을 엿볼 수 있다. 숱한 기행을 일삼던 며느리 (세자빈) 봉씨를 오랫동안 품어주고 참아주다가 드디어 (태종이 양녕대군을 내쫓았던 것처럼) 어쩔 수 없이 궁에서 내쫓는 선언을 한 날이다.

대체로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착하게 될 수도 있고 악하게 될 수도 있어서, 마치 여울물처럼 동쪽을 터뜨려 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을 터뜨려 놓으면 서쪽으로 흐르게 된다. 다만 아주 어리석은 사람의 기질은 변하지 않으므로, 비록 뛰어난 사람(聖人)과 함께 살더라도 답이 없다.”

극히 일부 사람은 학습과 개선의 가능성이 없는 게 현실이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 처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친구를 사귀고, 어떤 스승을 만나고, 어떤 인맥을 갖느냐가 인생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또 세자 (훗날의 문종) 교육에 대한 그의 발언에 이런 대목도 있다.

세자를 잘 가르치는 길은, 반드시 훌륭한 사람을 가까이하고, 바르고 훌륭한 일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는 데 있다. 그것은 마치 초나라에서 나서 자라면 초나라 말을 먼저 배울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세종13년 1월 30일)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기보다는 어디에 노출시킬 것인지를 잘 고민해서 준비해주는 것이 교육이다. 사람의 감성과 사고방식이 자연히 좋은 방향으로 성숙하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교육이다. 요즘 내가 주변의 누구에게서 영향을 받고, 누구 덕분에 기회가 만들어지고, 무엇 때문에 내 시간과 자원을 쓰고 머무는 장소를 결정하게 되는지, 무슨 생각을 일초라도 더 하게 되는지가 모이고 쌓여 나의 그 다음이 결정된다. 따라서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환경에 누구에게 더 많이 노출되도록 할 것인가가 사람을 위하는 교육이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이다.

교육도 유행처럼 쏟아지는 새로운 트렌드에 연연하기 보다는, 어떤 환경에 노출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마치 스마트기기가 한때 봇물처럼 쏟아졌듯이 A교육, B교육, C교육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새로운 교육 용어가 거의 매일 등장하는 시대이지만,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는 어떤 사람, 어떤 환경, 어떤 자극에 접촉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그 점에서 더 월등한 가치를 주는 교육이 가장 오래 살아남지 않을까?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자신의 성공비결이, 향후 10년 동안 변하게 될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해온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격변을 앞둔 교육계에도 자꾸 변하는 트렌드보다는 변하지 않을 사람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권혜진

프리미엄 에듀·컬처 콘텐츠 기획사 세종이노베이션 대표. 리더십, 문화, 기초학문 분야 고급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으며 실록학교, 세종의 식탁, 품격경영아카데미, 이동건게임연구소 등을 육성 중이다. contact@withsej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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