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영웅? 제국? 그 허망한 지상건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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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모 감독, 거대자본과 소위 최고의 스타들(양조위, 장만옥, 이연결, 장쯔이), 최고의 테크니션들을 동원해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동시에 그러나 글로벌 흐름에 역류하는 대서사시를 만들다. 이름하여 〈영웅〉.

영화 〈영웅〉은 기원전 3세기 춘추전국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통일을 완수’한 (우리에게는 만리장성을 쌓은 진시황으로 알려진) 진나라 영정과 궁극적으로 그의 ‘천하통일’의 ‘역사적 사명’을 돕게 되는 조나라 출신 고수들 장천, 파검, 무명, 비설의 현란한 무협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영화는 국가의 정체성이 초국가자본의 무차별 전략에 굴복한다는 글로벌 시대에 세계 최대 강국의 꿈을 향해 질주하는 중국의 욕망에 시종일관 과도한 장엄함과 섬세함의 미학으로 정당성을 부여한다.

액션무협영화의 장르적 관습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중국의 새로운 천하통일 욕망을 불태우는 이 영화에서 우리는 지난 10년간 지구화 논쟁의 가장 핵심적인 이슈 중 하나였던 ‘민족주의/국가주의 부활’이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만리장성’으로 상징되는 제국건설의 폭력적이고 맹목적인 욕망이 갑자기 헤겔식 역사철학의 육중한 의상을 걸치고 21세기에 등장하는 것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중국이라는 국가가 이제껏 걸어온 역사가 이미 진나라의 ‘천하통일’에서부터 시작해서 국가가 체현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절대정신’의 완성을 향한 필연적인 행로였다는 것을 역설하고자 함인가. 중국은 이제 막 이 절대정신의 자기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말인가.

〈영웅〉의 영화적 재미는 역시 등장인물들의 고도로 양식화된 육체적 현존에 있다. 광활한 사막과 깊고 유장한 산, 밀도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수- 이 모든 자연풍광 안에서 강호의 고수들은 스스로 바람이 되고 물이 되고 공기가 되어 날아다닌다. 칼을 휘두른다는 것 자체가 그 거대한 적막함에 그것의 심오한 철학적 명상에 약간의 빠르고 거친 바람결, 숨결을 일렁이게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의상이나 머리 스타일 또한 이와 같은 육체적 현존에 충실히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공들여 완성시킨 이러한 무협의 대우주가 소위 대우주적 규모로 진행되는 중국 영토의 역사, ‘천하통일’의 역사로 미끄러질 때 우리는 자연과 역사에 대한 이 비변증법적 시선에, 그리고 자연을 역사의 규모라는 물량적 크기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는 이 오만한 기호조작에 놀라움보다는 어이없음을 느낀다. 기원전 이야기를 역사의 진행과정을 위한 어떤 교리로 끌어내는 방식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당장 영화 속에서도 드러나듯이 광대한 권력에의 의지는 개개인의 삶을 상실과 원망의 파편으로 조각 내지 않던가. 이런 의미에서 유일하게 끝까지 ‘천하’의 욕망과 ‘법’의 폭력성을 거부하고 ‘소수 집단’과 ‘복수’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비설이 여성이라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물론 영화는 비설이 여성이기에 천하통일이라는 광대한 역사철학의 비전을 끝내 지니지 못했다고 은연중에 암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설이야말로 ‘중화’민국-소위 세계의 중심-이라는 기표를 갑자기 ‘서랍 속의 동화’에서 거대한 역사철학의 주문으로 변환시키려 하는 그 모든 시도들의 위험과 기만을 경고하는 인물로 남는다.

‘천하’라는 초월적이고 추상적인 관념놀이에 대항해 구체적인 고통의 기억을 붙들고 늘어지는 그녀는 영화의 이 쏟아지는 ‘과대망상’의 격류를 거슬러 근대국가 건설의 기획이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살인의 역사였는가를 투시하게 만드는 아주 작은 틈새이다.

김영옥/ 한국여성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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