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했으니 사표내”... 노동시장 성차별 30년 전 그대로
“임신했으니 사표내”... 노동시장 성차별 30년 전 그대로
  • 이유진 기자
  • 승인 2018.11.28 20:10
  • 수정 2018-12-03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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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중구 CGV명동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일상 속 성평등 차별없는 일터 토크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서울 중구 CGV명동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일상 속 성평등 차별없는 일터 토크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독박육아, 전투육아, 새벽반, 유리 벽…. 전업주부, 프리랜서, 직장인 등 30여명의 여성들이 일상 속 겪었던 차별의 경험을 단어로 표현한 말이다. 아이가 잠든 뒤 새벽이 돼서야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다는 프리랜서 여성부터 여성이라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돼 ‘유리 벽’을 느낀다는 직장인 여성까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험담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여성들이 일터에서 느끼는 성차별은 30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28일 오후 서울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노동시장 성평등 확보 방안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여성들은 일터에서 겪은 다양한 성차별 경험을 고백했다. 대학생 조모씨(익명)는 “초등학교 때부터 안경을 썼는데 아르바이트 면접관이 ‘여자는 안경을 쓰면 안 된다’라고 하더라. 평소 같으면 이유를 물었을 텐데 구직자 입장이다 보니 안경을 벗으면서 바로 ‘잘 보인다’고 답했다. 사회적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노동시장의 성차별 및 독박육아 등 성 불평등한 노동·양육여건을 저출산의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공공기관 사무직 15년 차의 방모씨(익명)는 “내가 속한 부서에서 여성을 신입사원으로 데려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목격했다. 유리천장은 없지만 주요 업무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유리 벽’이 있음을 실감한다”며 “여성이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승진을 못 하는 것이라는 기존 남성들의 편견이 누적돼 또 다른 벽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했다는 전업주부 여성은 “임신하면서 ‘그만 두라’는 말을 들었고 끝까지 회사를 다니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원래 업무가 아닌 아르바이트생이 하는 업무를 시키며 퇴사를 종용했다”며 “그 과정에서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치심, 모욕감을 느꼈다. ‘아이를 낳은 것이 잘못된 일이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토로했다.

프리랜서 여모씨(익명)는 “아이가 3살일 때 회사에서 팀장으로 일했는데 상사로부터 ‘왜 여자 팀장이 남자 팀장과 급여를 똑같이 받느냐’란 말을 들었다. 특히 아이가 어린데 왜 나와서 일을 하는지, 형편이 어려워서 그러느냐는 시선들이 많았다”며 “사회적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도 변하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8일 서울 중구 CGV명동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일상 속 성평등 차별없는 일터 토크콘서트’가 열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강민정 박사가 발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서울 중구 CGV명동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일상 속 성평등 차별없는 일터 토크콘서트’가 열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강민정 박사가 발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결혼 후 육아 등을 하면서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들의 경험담도 이어졌다. 전업주부인 박모씨(익명)는 “대학 때 열심히 해서 원하던 회사에 취업했고 입사동기와 연애를 하며 아이를 먼저 갖게 됐다. 25살 2월에 입사했는데 임신 사실을 안 인사팀에서 6월 초 퇴사를 권유했다. 여러 번 항의했지만 그만두지 않으면 남편한테까지 압력을 넣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임신 사실을 밝힌 뒤 합격이 취소된 경우도 있었다. 유진경(28·가명)씨는 “100일 지난 아이, 3살 아이를 둔 주부다. 임신한 상태에서 이직을 하기 위해 면접을 봤지만 임신 사실을 말한 후 합격이 취소됐다. 또 결혼 전 이력서를 넣으면 대부분 연락이 왔는데 이젠 거의 없다. 공공기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관련 제도들이 잘 실천돼야 한다”고 밝혔다.

병원에 근무 중인 결혼 8년 차의 김희진(가명)씨는 “아이 낳기 전 2년 동안 맞벌이를 했고 이후 복직해서 5년째 맞벌이를 하고 있다. 다행히 병원에 다녀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지만 혼자 모든 육아를 감당해야 해서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또 내가 일을 시작했을 때 남편은 육아휴직 이야기를 회사에 꺼낼 수조차 없어 퇴직, 이직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털어놨다.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돼 유튜브 강연을 시작했다는 전업주부 임모씨(익명)는 “남매를 독박육아로 키우고 있다. 전에 했던 수학강사 일을 다시 하고 싶은데 어린이집은 종일반에 맡겨도 5시에 하원해서 그 이후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또 아이 엄마라고 하면 출퇴근이 힘들 것이라는 편견과 선입견이 있다”며 “이런 이유로 많은 엄마들이 취업을 자포자기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크콘서트는 정부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노동시장 내 차별문제와 성평등한 일생활균형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강민정 여성노동연구센터장은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흘렀지만 남녀 고용률, 임금격차 완화 수준은 OECD 국가에 비해 미미한 편”이라며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과 일본만 30대 여성들의 경력단절 현상을 반영하는 ‘M자형 곡선’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윤숙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처장은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다. 정말 악착같이 육아를 하면서 전쟁터에서 살아남 듯 여기까지 왔다. 딸은 다른 세상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죄송하고 답답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육아정책연구소 유해미 여성노동연구센터장은 “육아휴직제도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여성 위주의 이용이 아닌 남녀 동등한 비율이 전제돼야 한다”며 “휴직제도를 아무리 보강해도 여성의 임금이 낮은 상태에서는 여성 위주로 이용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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