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사회심리학자 

 

여성신문 30주년을 축하하며 

1980년대 우리 사회에서 여성운동과 여성학이 활발히 꽃피기 시작하던 시기에 나는 대학원을 마치고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수많은 여성단체가 생겨나고, 여성학과와 여성학회가 만들어지고, 여성신문이 창립되었다. 그로부터 30년, 여성운동과 그 시절을 함께한 것은 돌아보면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페미니스트로 살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재미도 보람도 덜했을 것이다.

언제부터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 다닐 때, 누가 성차별적 발언을 하면 대놓고 싸우지는 않았지만 분노했고 그날부터 그 사람이 우습게 보였다. 유학 가서 페미니스트 친구들을 만나 단숨에 반했다. 행운이었다. 나를 키워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그들이 추천해준 책을 읽고 토론을 했고, 대규모 여성인권 시위가 열리면 같이 기차 타고 가서 참여하기도 했다. 자유를 느꼈다. 그들은 나에게 가부장적 한국문화에 돌아가서 어떻게 살 거냐고 걱정했다.

그 걱정이 무색하게 나는 돌아와서 신나게 살았다. 여성운동 동인 모임 ‘또 하나의 문화’와 만난 것이다. 행운이었다. 학자, 문인, 대학원생들이 주축이 되어 평등한 여성주의적 인간관계, 소통방식, 생활문화를 창의적으로 만들어 나갔다. 우리는 책을 내고 어린이 캠프를 하며 즐겁게 지냈다. 남성중심적, 전체주의적, 위계적 문화가 팽배한 사회에서 ‘또 하나의 문화’는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 해방공간이었다. 마음이 열리고 생각이 자라고 취향과 습관에까지 페미니즘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당시에 처음 설립된 여성학과 대학원에서 나는 성역할 심리학을 강의했다. 그때 삼십대 초반이었는데, 학생들 중 반은 나보다 나이가 적고 반은 많았다. 내가 평생 만난 학생들 중 가장 다채로운 집단이었다. 새로운 주제와 시각을 던지면, 절절한 경험담, 엉뚱한 의견,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튀어나오면서 열띤 토론이 일어나기도 했다. 충북대학교에 가서도 성역할 심리학을 강의했는데, 그때부터 성평등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이제는 4, 50대가 된 제자들이 가끔 말해주니 고마운 일 아닌가. 그 모든 만남이 행운이었다. 직업상 늘 젊은이들과 지냈고, 내가 한 여성운동이라곤 그들에게 페미니즘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 것 밖에 없다. 그런데 그 후, 그들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은 얼마나 놀라웠는지.

여성단체와 대학에서 만난 친구, 제자들은 여성신문과 페미니스트 잡지를 내고, 성폭력, 가정폭력상담소를 운영하고, 문화운동, 교육운동, 유권자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연구를 하고, 수많은 분야에서 인권을 위해 일해 나갔다. 어려운 현장에서 때로는 고난을 겪고 때로는 좌절을 하면서도 꾸준히 성과를 축적해나갔다. 이 존경스러운 친구들에게 한때 선생이었던 것은 영광이다. 펌프에 마중물 조금 보태고, 한없는 물줄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지난 30년간 한국사회에서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교육, 노동, 가족, 사회의 각 분야에서 여성운동이 힘들여 해낸 일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이 많다. 여성신문은 그 모든 일을 여성주의 담론으로 뒷받침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여성운동의 목소리였고, 이제 데이터베이스요 역사가 되었다. 본격적인 페미니즘 언론이 독자적으로 30년을 이어온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여성신문이 자랑스럽다.

아직도 할 일은 많지만, 돌아보면 한국여성운동의 업적이 정말로 자랑스럽지 않은가. 그 시대를 함께 걸어온 여성신문의 30주년을 더불어 기뻐하며, 앞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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