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목사

대망의 이천년 또는 새천년이라는 말로 시작된 21세기가 벌써 2년을 지나 3년째 됐다. 지난 2000년 1월 1일은 지구상의 인류가 처음으로 함께 새해를 맞은 날이었다. 이른바 서기(西紀)라고 불리는 것이 전세계에 보급돼 모든 나라가 같은 달력을 쓰게 된 것은 20세기 그것도 후반기에 와서였다. 그 전에는 나라마다 민족마다 달랐기 때문에 인류가 모두 함께 같은 날을 기념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이 지구를 하나의 촌으로 만들었고 결국 온 인류가 같은 달력을 넘기면서 같은 하루를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다. 지구라는 별이 생겨난 이래 여태껏 이런 일이 없었다.

‘생각’에 힘이 있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경험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는 과학적 실험을 통해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물리적인 힘을 내느냐가 입증되고 있다. (사람 생각에 따라서 물의 분자구조가 어떻게 그 모양이 달라지는가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준 사진작가도 있다.)

한 사람의 생각에 힘이 있다면 여러 사람이 생각을 모을 때 더 큰 힘이 발휘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사실은 무엇을 어떻게 실천할까 보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까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행위가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게 아니라 생각이 역사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온 인류가 마치 인간띠 잇기를 하듯이 하루 24시간 지구를 한바퀴 돌면서 입을 모아 ‘새천년’을 말하고 노래했다. 그런데 어떻게 19, 20세기와 ‘다른’ 새로운 세기가 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벌써 새로운 세계, 새로운 문명이 그 싹을 지상에 내밀었다. 2001년 뉴욕 참사는 새로운 문명이 싹트기 위해 무너질 수밖에 없는 낡은 문명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는 자(資)를 본(本)으로 삼는 이데올로기의 화려한 꽃이었다. 그것이 낡은 문명을 밑받침해 온 또 다른 힘인 폭력(내가 살기 위해서 네가 죽어야겠다!)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그 무너진 자리에 인류는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가. 계속해서 돈과 무기로 남을 지배하는 낡은 이데올로기의 묘목을 심을 것인가? 그럴 수 없는 일이요 사실상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말대로 한번 익은 빵이 밀가루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네가 희생돼야겠다는 논리가 세상을 지배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는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는 것을 작아진 지구촌의 인류가 알아버린 것이다.

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이곳 동방의 한 변두리에서 그 깨끗한 얼굴을 내밀고 있음을 보았다.

노무현씨가 국민에게 한 후보단일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패배를 각오하고 정몽준씨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 싹을 보았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지켜보았다. 국민이 노무현의 손을 들어주면 살고자 했다가 죽고 마는 낡은 문명의 몰락과 함께 죽어서 사는 새로운 문명의 태동이 눈앞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결과는 노무현의 승리였다.

그의 승리는 민주당의 것도 아니고 노무현의 것도 아니고 새천년을 맞아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각으로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려는 ‘젊은 에너지’의 것이다. 아울러 여전히 낡은 생각(어떻게 하면 내가 살 것인가만을 궁리하는)에 사로잡혀 있으면 결국 몰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반면교사들에게도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좌절과 아픔이 아무쪼록 새천년 새문명 건설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