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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 대학 언론학과에 파견된 이재원 교수(국제언론학,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주립대학 부총장보) 주선으로 여성신문과 뉴욕타임스가 보츠와나 대법원 판사이며 작가인 유니티 다우(Unity Dow)를 만났다. 유니티 다우는 여성 차별이 극심한 보츠와나에서 이례적으로 대법원 판사에까지 이르는 등 입지전적 인물로 아프리카의 여성운동을 선도하는 인물이다. <편집자 주>

보츠와나의 수도 하바로네(Gabarone)에서 승용차로 한시간쯤 달려 로바츠(Lobates)의 대법원에 도착했다. 유니티 다우는 161센티 정도의 적당한 체구에 편안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미소, 걸음걸이, 매너 등 모든 분위기가 당당하면서도 대법원 판사로서의 품위가 있어 보였다. 그는 1959년 모츄디(Mochudi)에서 평범한 가정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촌 지도원이었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그는 “언제나 남자 형제들을 이기려고 했고, 선머슴처럼 자랐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츠와나 국립대학교를 마친 후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그 후 보츠와나에서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평화봉사단원인 피터 다우(Peter Dow)와 만나 결혼했다. 그의 남편은 미국인이고 백인이었다. 피터와의 결혼은 유니티 다우가 성차별 법에 도전한 중대한 계기가 됐다. 보츠와나의 민법은 우리나라처럼 자녀들은 출생지에 관계없이 혈통주의를 채택하게 돼 있었고, 부모 중 아버지의 국적을 따르도록 돼 있었다.

이 국적법에 의해 유니티 다우의 자녀들은 보츠와나 정부가 제공하는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또 보츠와나에 살기 위해 2년에 한 번씩 거주 신고서를 갱신해야 했다. 또 그의 남편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안정한 신분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보츠와나를 떠나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또 외국인인 그들은 보츠와나의 자국민 우대 정책으로 인해 직업을 구하기도 몹시 힘들었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국적만을 따르게 돼 있고 자국민인 어머니의 국적을 취득할 수가 없어 결국은 여성의 지위가 완벽하게 무시되는 법 때문에 고통을 당하던 유니티 다우는 1990년 11월 1일 마침내 법정에 섰다. 로바츠(Lobates)의 대법원은 유니티 다우가 재판에서 질 것으로 생각하는 많은 인파로 가득 찼다. 수많은 방청객들로 인해 더 큰 공간으로 법정이 바뀔 정도였다. 변호인과 검사는 ‘여성에 대한 차별의 부당성’과 ‘선의의 차별’로 불꽃 튀는 설전을 벌였다. 보츠와나의 여성단체들은 법 개정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티셔츠와 슬로건으로 관심을 표명하며 여성에 대해 차별적인 법을 개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여성 차별적인 법에 대한 최초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로 인해 일약 스타가 된 유니티 다우는 변호사로 또 세 아이의 어머니로 아프리카의 여성 권익 신장을 위해 정열을 바쳤고 보츠와나는 물론 남아프리카의 많은 여성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5년 전 정부로부터 대법원 판사 임명을 받고 “자신도 무척 놀랐다”고 말했다. 정원 6명인 대법원 판사 중 유일한 여성 판사로서만이 아니라 작가로서도 그는 명성이 높다. 지난 2000년 출간한 <저 멀리 멀리 (Far and Beyond)>라는 책을 통해 그는 여성들에게 원대한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라고 충고한다. 이 책은 아프리카 가난한 집안의 소녀가장 이야기이다. 에이즈로 남자형제 두명을 떠나보낸 19세 소녀가 힘들게 살아가면서 학교와 가정과 사회에서 겪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그는 또 올해 <순수의 울부짖음(The Screaming of the Innocent)>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아프리카에 만연돼 있는 미신과 전통적인 악습을 고발하기도 했다. 이 책은 권력가와 재력가가 열두세 살 되는 여자 아이(털이 없는 양)를 잡아먹는 이야기, 또 사이비 의사가 여성 환자를 성폭행한 이야기 등 권력과 재력을 가진 남성들의 권위주의에 희생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이 두 권의 책은 아프리카에서의 여성차별을 고발하며 법과 제도와 관습의 변화를 강조하는 책이다. 동시에 아프리카의 자연적인 배경과 관습을 가장 잘 알게 해 주는 책이기 때문에 아프리카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읽혀지는 책이기도 하다.

유니티 다우는 이 두 권의 책에서 전통적인 악습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국민의 80%는 미신을 믿고 있다. 이러한 악습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모든 일을 논리적으로 보지 않고 초자연적인 일로만 보며, 또 전통적인 미신과 무속, 신에게서 해답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대법원 판사로서 또 작가로서의 근황을 묻자 “나는 어릴 때부터 활동적이었다. 대법원 판사는 케이스(Case)만 보고 있어서 불만족스럽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생활은 참 재미있다. 내년 6월에는 또 하나의 소설이 나올 것이다. 책의 제목은 ‘진실을 가지고 재주를 부리며 노는 사람’ (Juggling Trust)이며 진실을 왜곡하는 사회적 부조리를 고발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 두 권의 책을 영화로 찍어보면 어떻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지 않아도 보츠와나의 영화사에서 제의가 들어와 생각 중”이라고 한다.

대법원 판사 집무실에는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남편 그리고 세 아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마치 당당하게 노력한 자의 훈장과 같아 보였다.

문숙경 경북 지사장moonsk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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