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조국 교수 “피고인의 유죄에 중심 둔 입법화 절실”

법으로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할 여성들이 남성중심적인 관념이 지배적인 형사절차에 있어 취약집단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성폭력 범죄에 있어서 보호받아야 할 여성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수사기관의 진술과정에서 ‘충분히 반항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등 제 2차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 조영래 변호사 12주기를 맞아 10일 있게 될 ‘형사절차에 있어서의 취약집단의 보호(서울대 공익인권법연구센터 주최)’ 학술회의 자료에서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는 이같이 밝히고 남성중심적인 관념을 통렬히 비판했다.

조 교수는 “수사기관은 중립을 지키면서 사실관계를 냉정히 판단한다는 입장을 취하지만 그 ‘중립’은 이미 성폭력 범죄에 대한 남성중심적 지배관념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며 “피해자의 ‘제2차 피해자화’를 막기 위해서는 대부분 목격자가 없는 강간 사건 특성상 피해자가 유일한 증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교수는 “피해자는 이미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입어 진술과정 자체가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다”며 “소위 ‘강간증후군’상태에 있는 피해자가 소극적이거나 일관되지 못한 태도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피해자의 복장, 직업, 생활방식 등을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을 격하하거나 피해자의 ‘짧은 치마에 도발돼 강간했다’는 등 강간‘유발’을 강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이는 여성의 프라이버시와 인격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왜곡된 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여성이 열악한 현실을 딛고 신고를 해도 또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며 “형사절차안에서 여성은 격려과 위로를 받기보다 오히려 의심과 비난의 대상이 돼 ‘제2의 피해자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수사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받을 때 강간의 여부를 떠나 ‘피고인이 사정을 했는지, 삽입시간은 얼마나 길었는지, 그 동안 피해자의 느낌은 어떠했는지’를 묻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가 충분히 반항했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피해자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성폭력 범죄 사건에서는 피고인뿐만 아니라 피해자도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고 지적하며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이론적으로 인지되고 있지만 실제 재판과정에서는 이와 전혀 상관없는 사안에 초점이 맞춰지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조교수는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 국가에서 제정된 ‘강간방지법’의 내용을 참조해 성폭력피해자의 도덕성이 아니라 피고인의 유죄에 중심을 맞추는 입법 노력이 절실하다”며 “이런 노력이 있을 때 ‘남성중심의 재판’과정에서 발생하는 ‘여성의 고난’은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아령 기자arshin@women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