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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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을 준비하고 있는 정태춘·박은옥 부부. 20일까지 열리는 콘서트에서 이들의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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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이 거세된 혁명은 위험하다. 하지만 혁명적 열정이 실종된 성찰은 감동이 없다. 저 질풍노도 같았던 1990년의 <아, 대한민국>에서 <’92 장마, 종로에서>를 지나 <정동진>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며 정태춘 박은옥 부부는 지금 여기에 이르러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힘겨운 의제를 우리에게 풀어 놓는다.’ (강헌/대중음악평론가)

80년대를 젊은 청년으로 살았던 사람이라면 시대의 고통을 뼈 속 깊은 회한으로 받아들여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정태춘 씨의 노래 한가락에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보았을 것이다. 뛰어난 시적 감수성으로 동시대인들의 삶과 희망, 현실, 절망을 일기처럼 읊조리는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4년 반 만에 10집 앨범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를 냈다.

올해로 노래인생 25년째를 맞는(78년 데뷔) 정태춘씨가 이제 다시 여전히 말하고 싶고 노래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오는 13일부터 있을 콘서트 준비로 바쁜 정태춘씨와 박은옥씨를 연습실에서 만났다.

정태춘씨는 1998년 9집 ‘건너간다, 정동진’ 앨범을 낸 후 4년 반 동안 미디어를 통해 얼굴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콘서트 현장에서 꾸준히 대중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이어왔다. 2001년 9월에는 이번 10집 앨범의 제목이 된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를 주제로 ‘정태춘, 박은옥의 얘기노래마당’을 열었고, 그간의 노래들을 재정리해 ‘정태춘, 박은옥 20년 골든앨범’을 출시한 후, 2002년 5월 노찾사와 함께 ‘바람이 분다’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한번의 변절도 없이 20여년을 음악을 통한 사회변혁에 투신했던 그는 이번 앨범 출시로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발표하는 새 앨범이라 여러 면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서정성에 치중했던 초반시기를 내면의 일기라 말한다면, 중반기는 나를 둘러싼 사회에 대한 발산적 메세지를 전하려 애썼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번 앨범은 이런 점에서 앞의 두 시기를 중간정리하고 객관화하는 작업으로 후반기의 첫발을 내디딘 기분이다.”

그는 이번 앨범에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전 앨범과는 작업 스타일부터 달랐다. 이제까지는 곡을 다른 편곡자에게 맡겨 레코딩이나 밴드 구성에서 편곡자의 의도를 그대로 따른 편이었다. 아무래도 내 의견은 제한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었던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이번 작업에서는 그동안 7,8년 함께해 온 밴드와 연습하고 편곡 작업을 하다보니 정태춘 다운 색깔이 나오는 것 같아 무척 만족스런 음반작업이었다. 또 이전 앨범과는 달리 음악적으로 여러 칼라를 담아내는데 주력했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라 한다면 리듬의 변화와 소재의 다양성을 들 수 있겠는데, 가사의 문학적 완결성을 높이고 기존 음악형식을 깨어 음악적인 재미를 찾으려 했다. 평론가 강헌 씨가 이번 앨범을 듣고 ‘혼란스럽고 경이롭다’는 말을 했는데 있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 느낌만큼 나 자신이 혼란스러운 세월을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까지 정태춘 씨 음악의 전반적 리듬은 서정적인 아르페지오였어요. 악기도 기타를 주로 사용했고. 그런데 이번에는 서정적인 것과 리드미컬한 것이 섞여 있다고 보시면 돼요. 악기도 클라리넷(‘봄밤‘), 바이얼린(‘압구정은 어디’), 또 중국의 현악기 얼후(‘동방명주 배를 타고’), 아코디언(‘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등 다양한 악기 편성으로 각기 다른 맛이 느껴질 것”이라는 게 박은옥 씨의 설명이다.

정태춘 씨에게 이번 앨범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가 뭐냐고 물었다. 새장에 갇힌 잉꼬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아치의 노래’였다.

‘아치의 노래는 그의 자유, 태양빛 영혼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돌고 그와 함께 온 그의 친구는 바로 죽고, 그는 오래 혼자다 어떤 날 아침엔 그의 털이 장판 바닥에 수북하다 나는 날지마, 날지마 그건 자학일 뿐이라고 말한다 너의 이념은 그저 너를 깊이 상처낼 뿐이야...’

한편의 시를 보는 듯한 이 노래는 정태춘이라는 한 인간의 내면의 그림이 그대로 투영돼 있는 듯하다.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는 헛된(?) 이념(꿈)으로 인해 상처받는 외로운 영혼이 보인다고나 할까.

“나는 좀 다르게 보고 싶어요. 이념에 의미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사에도 나오듯 태양빛 영혼처럼 자유롭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예술가로서의 좌절감의 표현이라 생각되는데...”

박은옥 씨는 세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태춘 씨에 대한 이미지가 못내 걱정이 되는 듯했다. “아치의 노래를 들으면 정태춘 씨가 남편으로서가 아닌 한 예술인으로서 안쓰러운 마음이 느껴진다”고 애정어린 말을 덧붙였다.

일상이라는 우물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퍼 올리는 정태춘 씨는 한편의 영화를 통해서도 삶의 진실을 읽어낸다. ‘리철진 동무에게’라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블랙코미디의 주인공 같은 리철진의 삶의 비애가 가슴을 흔들더니, 그 날 오후 전교조합법화기념대회에 모인 교사들의 기쁨의 모습 안에 깔린 10년간의 눈물과 고통이 또다시 그의 가슴을 치고 만 것이다. 굴곡 많은 현대사를 지켜보는 자의 아픔이 그대로 담겨진 노래였다.

정태춘 씨는 삶과 사회에 관한 문제의식을 담은 메시지로서 포크의 양식을 지켜왔다. 여전히 딴 세상을 꿈꾸는 그에게 세상은 암담한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그래도 그는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기대한다. 지난 열정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띄우는 연대의 편지가 도착할 곳은 ‘어둠 걷혀 깨는 새벽 길 모퉁이를 돌아...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일 것이다.

“내가 희망하는 아름다운 사회란 인간 본연의 품위를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회라 생각한다. 인간의 아름다운 품성들이 발현될 수 있는 세상. 사회 시스템 때문에 상처받아 그 아름다운 품성마저 왜곡시켜버리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선진 서구사회를 보면 조금씩 앞서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두 다 올바르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도래하길 바라는 것이다.”

3일부터 20일까지 정동 세실극장에서 열릴 ‘정태춘, 박은옥 콘서트’는 그 옛날의 향수와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번 콘서트에도 앨범작업에 참여했던 연주자들이 공연무대에 선다고 한다. 자꾸 춥게만 느껴지는 연말에 이들의 따스한 목소리로 마음의 여백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문의: 02-3272-2334

윤혜숙 객원기자heasoo2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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