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아킬레스 건’ 잘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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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 교수(53세)의 사회로 진행되는 토론회는 늘 진지하면서도 흥미롭다. 그는 지난 1997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번 제16대 대선후보 초청 여성정책 토론회의 사회를 맡았다.

첫날 토론회가 끝난 직후 KBS의 담당 PD가 무대로 와서 함박 웃음을 보이며 이 교수에게 “완벽합니다. 진행도 매끄럽고, 시간도 기가 막히게 잘 맞추었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완성도 높은 사회는 보증수표다. 그는 이번에 또 한번 사회자로서의 그 명성을 확인케 했다.

이 교수의 이런 활약상은 좀처럼 만나기 힘든 그 특유의 재능과 여성운동에 대한 헌신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그는 여성계의 공동 자산이다. <편집자 주>

차이를 넘어선 여성계의 연대

- 97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대선후보 초청 여성정책 TV토론회 사회를 맡았다. 78개 여성단체가 연대한 이번 여성정책 토론회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가.

“우선 우여곡절 끝에 여성정책토론회를 두 번째로 진행한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78개 단체가 차이를 넘어서서 또 다시 ‘범여성적’ 행사를 치르게 된 것은 서로 신뢰의 바탕이 있다는 뜻이다. 이 토론회는 특히 대선후보에게는 여성정책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시키고 한번쯤 여성문제를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드는 한편, 시청자들에게도 여성운동의 과제들을 다시 한번 따져보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 사회자로서 이번 토론회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준비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그 과정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사회자로서는 각 팀마다 다양한 분들의 입장을 들어보고 동시에 그들이 평소에 여성운동에 임하는 열정과 끼를 직접 느끼고 체험해볼 수 좋은 기회였는데,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단지 행사 준비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바빴다.”

- 이번 토론회에서 포인트로 삼았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

“각 후보가 제시한 정책들에서 여성들의 입장과 차이가 나거나 모순된 것들을 집중적으로 접근해서 밝히고, 여성계의 공통 과제들에 대한 후보의 입장을 확실하게 점검하는 것, 그리고 일반정책에 있어서 각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여성들의 시각으로 재조명시키는 것이었다.”

남성정치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

- 이번 선거가 흥미진진하다. 여성유권자들이 이번 선거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유념해야 할 ‘관전 포인트’는 무엇인가.

“무엇이, 어떤 사건과 계기가 후보들에 대한 지지율의 흐름을 바꾸고, 또 이를 위해 각 후보와 그 캠프가 무엇을 어떻게 요리하고 연출하는지를 예리하게 주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남성정치’의 진면목을 파악하고 이들이 바라는 ‘정치개혁’ ‘민주주의’ 등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캐고 들어가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다. 여기에 여성들의 정치적 상상력이 어떻게 쐐기를 박을 수 있을지 구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 토론회 사회를 보면 개인적으로 시간상 손해가 막심하고 경제적 보상도 없다. 여성운동가들 조차도 이렇게 시간 뺏기는 걸 피하려고 한다. 기꺼이 이런 손해를 감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에도 여성계가 나에게 사회를 맡긴 것은 나에 대한 신뢰감을 표시한 것으로 보고 이 점에 대해 우선 보람을 갖는다. 이는 사회자가 적어도 여성운동단체들의 입장과 이미지를 훼손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다고 보고, 이 점에서 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자긍심을 갖는다.”

핵심을 짚고 조화를 이루고 리듬을 탄다

- 명(名) 사회자로서의 명성이 높다. 본인의 어떤 자질이 명 사회자의 에너지가 된다고 보는가.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맞추는데 주로 신경을 쓰고, 마치 하나의 완결된 그림을 구상하듯 감성적, 이성적 접근을 하면서 그 흐름의 리듬을 타는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굳이 자질이라고 한다면 토론내용의 핵심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짚어 끄집어내 주는 것, 그때 그때 분위기를 보면서 청중의 관심사와 문제의식을 일깨워주는 것, 그리고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들을 집약적으로 제시해주는 것이다. 이따금 졸지 않고 늘어지지 않고 지루해하지 않도록 자극하는 일도 중요하다.”

- 말이 빠르고 정확하며 예리하고 분석적인데 논쟁적인 재미까지도 곁들이고 있다. 기획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할 만하다. 이런 재능을 훈련할 기회가 있었나?

“프랑스에서 공부하면서 논리전개에 철저한 언어습관을 익히게 되었고 그 과정에 묘미를 느끼게 되었다. 한편 나는 ‘noisy thinking’의 체질을 가진 것 같다. 말하는 과정에서 논리가 점점 명확해지고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들이 일관된 흐름 속으로 정리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 한편 늘 반문, 비판하면서 이면을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항상 ‘정말 그런가’ ‘다르게 볼 수는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도 반문하다보니 앞으로 나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사회학자가 된 불문학자

- 원래는 불문학도로 프랑스 정부장학생으로 유학을 시작했다. 이후 다시 사회학을 시작, 결국 사회학자가 되었다. 문학적인 자질도 상당히 느껴지는데 왜 사회학을 선택했는가.

“프랑스에 간 이후 한국에서 공부한 나의 불문학의 깊이가 너무나 얕다는 것을 절감했다. 언어뿐 아니라 프랑스의 역사, 문화를 폭넓게 공부하고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어나 불문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데 한계를 절감했다. 한편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한국사회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했었는데, 다른 나라에 가서 그 사회가 얼마나 다른가를 체험하면서 한국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그 때부터 사회학 공부가 아주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장학금이 다 끝난 시점에서 사회학과로 학사편입을 해서 다시 시작하느라 프랑스 유학에 11년 청춘을 다 보냈다.”

여성학자에게 현장 실천은 운명

- 현재 한국여성학회장을 맡고 있다. 취임사에서 여성학은 실천적 학문이므로 ‘여성학 공부하는 사람들은 운동가들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하는 운명에 있다’고 말했다. 사회학자로서 이 교수의 학문세계에서 페미니즘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여성학은 실천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본다. 여성으로 한국에 살자면 당장에 일상적으로 너무나 많은 불편과 분노를 느끼는 상황에서 페미니즘의 실천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는지가 오히려 의문이다. 페미니즘은 나에게 이 사회에서 그리고 학문세계에서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을 일깨워주는 것이자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며 또한 나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담스럽고 힘들 때도 많고 언젠가는 이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싶은 마음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 하이틴 시절 영어 웅변대회 대통령상, 대학생 UN총회 국회의장상 수상경력이 돋보인다.

“사실 상을 타는 무슨 대회에 나가는 일이 이제 돌이켜 보면 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말하기가 쑥스럽다. 고등학교 2년때 당시 코리아헤럴드에서 주최하는 영어웅변대회에 나가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대학 시절에는 외국어대가 주최한 모의 유엔총회(유엔의 공식언어로 말하는 speech contest)에 참여했는데, 그 때 토론주제는 월남전이었고 나는 월맹대표로 참여해 불어로 이야기했는데 최고상인 국회의장상을 탔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일로 인해 고생을 했다. 삼선개헌 반대 데모 주동자로 몰리고 여권이 안나오는 등의 불이익을 겪었다.”

영화를 통해 감성에너지 만난다

- 영화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YMCA 영상문화위원이었고 <영화로 읽는 여성의 삶>이라는 저서도 있다. 앞으로 영화와 관련된 계획이 있는가.

“20년 동안 사회과학자로 또 여성운동가로서 싸우면서 사는 동안 문학적 상상력의 부재, 사회과학의 한계에 부딪쳤고 개인적으로는 감성이 죽어가는 위기를 심각하게 느껴왔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다큐멘터리 영화제작도 배운 적도 있으나 발전시키지 못했다. 영화는 메마른 나를 치유하고 감성 에너지를 충족시키는 방법이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시도를 해보고 있으며 언젠가는 정말 진지하게 해보고 싶다.”

- 시간관리에서 어떤 부분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가.

“시간관리에서 내가 생각해도 지나칠 정도로 경계가 아주 철저하다. 노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머릿속에서 아주 확실하게 구분 짓는다. 일할 때는 1초에도 인색하지만 쉬기로 작정한 시간에는 시간도 잊어버리고 머리를 완전히 놓아버린다. 일하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를 아주 싫어하고 이것이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소비주의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가장 불쾌하게 생각한다. 여행을 떠나서 소비하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김효선/ 편집위원, 비즈우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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