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jpg

지난 연말부터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자기만

의 방〉, 〈넌센스〉 등 여성 주인공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이 활발하게 공연되고 있다. 올해도 〈마스터 클래스〉, 〈명성황

후〉, 〈눈물의 여왕〉 등이 선보였으며 내달에는 모녀의 미묘한 관

계를 다룬 전혜성 원작의 〈마요네즈〉도 무대에 올려진다. IMF한

파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연극계에 이들

작품은 불황을 타개할 흥행작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들 연극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넌센스〉, 〈마스터 클래

스〉, 〈명성황후〉, 〈눈물의 여왕〉등은 모두 뮤지컬이거나 노래가

많이 사용되고, 유명 탤런트 등을 기용해 적지않은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소재적인 측면에서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질 뿐 페미니즘과

는 무관하다. 더우기 〈명성황후〉나 〈눈물의 여왕〉 등은 악극이

나 신파극의 형태로 회귀하며 사회 전반의 보수화·복고주의 경향에

편승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페미니즘 연극평론가 명인서씨는 이런 현상이 하나의 조류로서 특

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못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페미니즘 연극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맡을 만

한 여배우가 있고, 시각적 효과가 두드러지고 음악이 들어간 작품이

관객의 호응을 얻는 것을 포착한 제작자들의 장사속이라는 것이다.

이는 연극을 진지하게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장이 아니라 위락적이

고 현실도피적인 목적으로 향유하는 관객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한편 지난해 열렸던 세계연극제 때 제3세계 연극을 보면서 대사중

심의 연극에서 몸짓이나 무대장치 등 보는 연극으로 가자는 제작자

가 늘어난 것도 내용보다는 볼거리 위주의 연극으로 가게 된 한 요

인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극에 등장하는

노래가 극의 흐름을 일관성 있게 잡아주는 역할 보다는 뜬금없이 삽

입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연극의 주된 관람층은 중장년층. 워낙 티켓값이 비싸 학생들은

감히 엄두를 못낸다. 주 관객층이 그러하니 연극은 그들의 취향을

따를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그러나 비단 위의 연극 뿐 아니라 '불효

자는 웁니다', '눈물젖은 두만강' 등 연극계 전반의 신파극, 악극

위주의 경향은 상업성이라는 측면을 상쇄할 역기능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마치 과거 신파극이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보다는 패

배적 식민사관을 유포시켰던 것과 같이 연극이 가져야 할 대사회적

기능을 외면한 채 대중성만을 추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96년 이후 여성주의 연극이 퇴조함과 동시에 한시대를 관통하는 방

향성이 사라지고, 민족극이나 마당극도 시들해지는 한편 정통연극이

퇴조했다는 것은 이미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한 바 있다. 문민정부의

출범 이후 사회성을 부르짖을 명분이 사라지고 취향·관심의 다양

화, 일반적이고 보편적 가치관 보다 개인적 가치가 부각된 데 따른

현상이다.

지금의 현상을 ‘다양화’라 명명할 수 있는 90년대 문화의 한 현상

으로 볼 수도 있지만 순수한 실험정신보다는 현실도피적이고 호기심

자극만 추구한다면 관객들은 이내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며 장기적

안목에서 우리 연극의 경쟁력은 약해질 뿐이다.

' 최이 부자 기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