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대화영화제 ‘폴리틱 온 더 필름’

지난해 ‘미디어 테러리즘’이라는 제목으로 첫 선을 보였던 대화영화제가 지난 1일부터 6일간의 일정으로 ‘영화 속의 정치’를 주제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한국사회의 건강한 대안문화를 위해 꼭 필요한 주제들을 선정, 영화를 통해 소통의 장을 형성하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된 이 영화제는 대선을 앞둔 우리 사회에 새로운 방향타를 제시할 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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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미디어 황제 후겐베르크의 상승과 몰락을 담은 다큐멘터리 <잊혀진 지도자>.

최근 들어 대규모 영화제의 변방에 머물러 매니아들의 전유물로만 인식되던 작은 영화제들이 각양각색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중에서 대화영화제는 가장 짧은 2년이라는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제를 통해 한 사회 혹은 개개인의 내부에 미치는 정치권력과 미디어 권력의 정체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영화들을 선보였다.

지난 1일 개막 당일 열렸던 개막포럼에서 ‘정치권력과 미디어’라는 주제로 발제자로 나선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김창룡 교수는 지난 98년 김대중 대통령 집권 이후부터 2002년까지 밝혀진 정부의 대언론 정책에 관한 언론문건을 예로 들면서, 이것이 집권 정치세력과 얼마나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는가를 비판함은 물론 족벌식 경영이 낳은 언론 사주의 윤리 부재와 전문성 부족을 지적했다.

지정 토론에 나선 진중권 씨는 “우리나라의 기형적 언론 구조에 대해 신문들이 자신들의 컨텐츠, 즉 합리적인 논조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소유한 자신들의 경제적 자본으로 발행부수 확장에만 혈안이 돼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날 사회를 맡았던 원용진 교수는 “우리가 미디어 권력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무소불위처럼 보였던 미디어 권력이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막일부터 시작된 영화제는 국내외 작품 20여 편으로 구성돼 10분 안팎의 단편에서 156분짜리 장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다큐멘터리 필름이 소개됐다. 이 가운데 <4년 더(Four more years)>(1972년 TVTV 제작, 61분, 다큐멘터리, 미국), <잊혀진 지도자(Der vergessene Fuehrer)>(1982년 제작, 감독 피터 헬러, 156분 다큐멘터리, 독일), <재갈(Die Grille mit dem Maukorb)>(1996년 제작, 감독 피터 헬러, 실비에 바눌수, 41분, 다큐멘터리, 독일), 개막작인 <축제를 시작하라(Que la fete commence)>(1974년 제작, 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114분, 드라마, 프랑스)는 관람객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윤혜숙 자유기고가

“진실은 무엇인가. 3주간의 언론 플레이면 진실의 조작은 가능하다. 단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독일 미디어의 황제 알프레드 후겐베르크의 말이다. 이번 대화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보였던 영화 <잊혀진 지도자>는 그의 상승과 몰락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는 세계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무기 제조사를 소유했고, 쉐를 출판사를 운영해 여론을 장악할 수 있는 언론의 영향력에 집중했다. 독일 국민당의 당수가 돼 국민당을 독일 최대의 우익 정당으로 만들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거대 자본력을 발판 삼아 언론과 영화를 동시에 장악, 급기야는 히틀러 정권을 돕는 산파 역할을 하다 제 3제국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이 작품은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영상자료와 동시대를 살았던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재구성돼 언론권력이 어떻게 정치권력과 손잡고 상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였다.

언론사를 단계적으로 하나하나 사들이는 과정, 여론을 독점해 나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부를 축적하는 과정, 또 정당의 선전도구로 이용하는 모습은 우리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권력을 쟁취하려는 정치인이나 정당에게 있어 미디어를 내편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은 절체 절명의 과제이기에 권력의 전환기나 선거철에 미디어의 공정하고 중립적인 보도는 무엇보다도 강조돼야 할 점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 역사의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도 공정성과 중립성이 무차별적으로 외면당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언론 장학생(?)’으로 통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강압적으로 권력을 탈취, 언론을 권력의 충실한 종으로 만들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을 보아도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유착은 불가분관계였다. 진정 정치권력은 유한하고 언론권력은 무한한 것일까. 막강한 언론권력을 등에 업은 후보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후보를 누르는 단순한 선거경쟁을 우리 국민들은 또 이번 대선을 통해 보아야 하는 것인지. 영화 제목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아니 국민의 진정한 염원 뒤로 사라지는 ‘잊혀진 지도자’가 국민 앞에 서지 않도록 하기 위해 눈뜨고 깨어 있어야 할 터이다.

<4년 더>는 72년 실시된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를 취재한 보도작품으로 당시 대안매체로 인기 있던 휴대용 비디오카메라로 제작됐다. 제작사인 TVTV는 당시 전당대회를 지역 케이블에 방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게릴라 영상 집단으로 제도권 언론들이 담지 못한 사회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 보여줬다는 점에 주목받았다. 닉슨 정권이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여론으로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있던 이 때 전당대회라는 축제와 그 바깥에서 터져 나오는 반전의 함성까지 담아내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재갈>은 아프리카 말리의 미디어와 정치 발달사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라디오는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1960년부터 1968년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말리 사회에서 정권 선전의 유용한 도구로 이용됐다. 그 후 80년대 민주화 시기를 거쳐 1992년 최초의 자유선거에 의한 민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는 국민에게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 작품은 매체의 민주화가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있다.

<축제를 시작하라>는 루이 14세가 죽은 후 어린 계승자 루이 15세를 대신해 섭정으로 등극한 오를레앙 공과 그를 뒤에서 부추기는 사악한 뒤부아 신부, 그리고 민중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귀족 퐁칼렉 등 세 사람을 중심으로 당시 프랑스 정치의 명암을 영화 곳곳에 드러냈다.

윤혜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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