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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누굴까>는 김수현 작가가 쓴 3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주말 드라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고 밑에 상처한 아들이 하나 있고 세 손자가 있는데 이 손자들의 결혼 해프닝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두 손자가 결혼을 해서 집안에 손자며느리를 들여오는데 한 며느리는 전에 결혼했다가 실패해서 ‘애 달고’ 들어와 ‘못난’ 자신을 받아준 시댁에 언제나 죄책감과 감사함을 느끼며 자신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는 사람이고, 다른 며느리는 똑똑하고 자신감 있는 대학원생인데 현모양처가 꿈이라 결혼해서 열심히 살림을 한다. 막내 손자는 아직 결혼을 못했는데 그 할머니가 손자와 결혼할 여자한테 자기의 금쪽같은 손자를 주느냐 마느냐로 현재 이야기가 진행중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다 보면 슬며시 화가 남과 동시에 어이가 없어 너털웃음이 나올 때가 있는데 거기에 나온 며느리들을 볼 때 그렇다. 하루 종일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시댁 가족들한테 차까지 대령하는 시중까지 하면 몸도 좀 쑤시고 힘들다는 소리도 나올 법하지 않을까. 장기라곤 ‘공부’밖에 없다는 대학원생이 결혼해서 살림하게 되면 그래도 자신이 했던 공부에 대한 미련이라도 있지 않을까.

힘든 기색도 없이 하루종일 앞치마 매고 종종걸음으로 쉬지 않고 일하는데 뻥이 아니고서야 저런 슈퍼 울트라 우먼이 가능하단 말인가. 게다가 무슨 식당 종업원도 아니고 ‘식사하세요’‘안녕히 주무셨어요’‘다녀오세요’‘들어가 보겠습니다’ 매 시간마다 인사하는 모습이라니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다.

인물들이 말을 잘해도 신뢰가 안 가는 이유는 어떻게 ‘서서 오줌 싸는 게 앉아서 싸는 것보다 나을 것 없다’고 말한 사람이, ‘결혼해서 맞고는 못 산다’고 말한 사람이 그렇게 앞치마 입고 쫄레쫄레 뛰어다닐 수 있는지, 어떻게 캐릭터가 그렇게 건너뛸 수 있는지 놀랍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결국 전체 이야기의 축은, 사건의 최종 해결사는 남자고 평화를 위해서는 여자가 가정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수현의 유려한 대사들은 이런 ‘가족’ 중심, ‘결혼’ 중심, ‘남자’ 중심의 축에서 허무한 말잔치로만 남을 뿐이다.

사실 이 작품이 김수현 작가가 쓴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실망했을 것 같지도 않다. 예전에 <청춘의 덫>과 <불꽃>을 보면서 받았던 감동을 떠올리면 이 작가에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주인공이고 여자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그것이 버림받는 남자에게 절치부심의 복수심을 갖는다는 이야기든 재벌 집에 시집가서 유산을 할 정도로 혹독한 시집살이를 한다는 이야기든 여자의 힘든 삶의 이야기를 절절하게 담아서 보여줬던 것 자체가 슬프고 감동적이었다. 다른 드라마의 착한 여자/악한 여자의 구도에 비하면 그런 유치한 도식화에 따르지 않고 여자의 삶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이미 다른 작가와 달라 보였다.

김수현 작품이 가부장제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 아래에서 고통받는 여성을 보여줌으로써 작가의 본심은 저거라고 믿지 않았었나. 그러나 요즘 <내 사랑 누굴까>를 보고 있으면 너무 순진한 믿음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왜 그녀들은 힘들어하지 않을까. 왜 그녀들은 시댁에서 기죽어 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거기 나온 남자들은 손에 물 하나 안 묻히면서 입바른 소리는 잘도 하는가. 예전에 봤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저 드라마가 무척 혼란스럽고 가족질서에 대해 계몽을 하는 것 같아 여간 불편하지 않다.

김수현 작가는 결국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유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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