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드리야르, <미디어_시티 서울> 심포지엄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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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폭력의 시대, 그 대안은 무엇인가.

광고, 영화, TV 등 미디어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현대 세계를 이성적으로 바라보자고 주장하며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프랑스의 석학 장 보드리야르는 그 대안으로 아날로그적인 사진으로의 회귀를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보드리야르는 지난 28일 이화여대 법정대 강당에서 열린 <미디어_시티 서울 2002>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 이미지가 실재를 재현한다는 그의 시뮬라시옹 이론에 근거, 이미지의 폭력성에 대한 주장을 폈다. 즉 미디어와 이미지의 폭력은 서서히 전염되고 면역성을 없애려고 한다는 점에서 바이러스와 같다는 것이다.

사진은 가장 순수한 이미지

보드리야르는 “이미지 왜곡은 모든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행사하는 폭력”이라고 규정하고 “사진이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않는 부재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담고 있다”며 롤랑 바르트의 논리를 인용하면서 대체 이미지로서 사진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사진은 침묵으로서 소음에 대해 저항하면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지만 사실상 그것으로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사진 이미지는 가장 순수한 이미지”라고 덧붙이며 영화, 비디오, 합성 등의 이미지는 순수 이미지로부터 파생된 형태들이라고 단언했다.

발제 후 진행된 토론에서 그는 “한국에 와서 방문한 민속촌에서 전통혼례 재현을 실제 상황으로 착각했다”고 털어놓으면서 “상황 전문가인 자신이 이미지의 함정에 빠져버렸다”고 실토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 “나는 사진을 이미지 폭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대안으로 제시한 건 아니다”면서 “순수 이미지로서 사진의 독특함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의미이며 이미지 범람 시대에 미디어가 독특함을 간직할 수 없다면 미디어는 모든 것을 재현하는 것일 뿐”이라고 답변했다.

반세계화적 조류에 주목

이 심포지엄의 토론자로 참석한 성균관대 김정탁 교수는 “마르크스가 노동을 자아실현 수단으로 본 것처럼 서양식 관점에선 커뮤니케이션을 시·공간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해왔다”고 전제하고 “뇌의 기능적 확장이 컴퓨터, 발의 확장이 자동차인 것처럼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감각 기능을 확장해 왔는데 이처럼 확장성에 치중한 나머지 서양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보드리야르는 “동양적인 문화가 대안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보느냐”라고 반문하면서 “해결책은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다만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반세계화적 조류가 대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 “세계화가 가상 현실이라고 본다면 미디어화하지 않은 상태의 언어가 상징적, 비판적 기능을 가지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편으로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미지 폭력, 실재를 소멸시켜

그에 앞서 보드리야르는 공격, 억압, 강간, 알력 등 폭력의 일차적 형태를 지목하고 역사, 비평, 부정의 폭력을 반론의 폭력으로 규정했다. 소리 없는 말살의 폭력도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정보와 미디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지와 정보의 유독성을 지적하며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시지> 논리를 인용했다. “미디어, 즉 폭력이 자신의 메시지를 가지고 스스로의 메신저가 된다”는 주장이다. “이미지의 폭력은 바로 그 폭력을 매개체로 해 실재를 사라지도록 만든다”는 논리와 상통한다.

보드리야르는 폭력적 가상현실이 실재적인 본질을 사라지게 만드는 예로 ‘빅 브라더(Big Brother)’류의 방송 프로그램을 들었다. 그가 언급한 프랑스 TV 프로그램 의 경우 6명의 남녀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다. 미국 CBS TV에서 방영된 <서바이버> 역시 같은 유형의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이 실제 생활을 그대로 엿본다는 컨셉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도 일반화돼 있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이런 가상현실 프로그램들이 모두 가상의 이미지로 이미 실재는 사라지고 관객은 허구도 현실도 아닌 게임의 장 속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지적은 <트루먼 쇼>같은 영화로도 이미 폭로된 바 있다. 영화 <트루먼 쇼>는 주인공이 태어나 결혼해 가정을 꾸릴 때까지 모든 것이 거대한 세트 안에서 진행되는 ‘엿보기 쇼’라는 설정으로 미디어 전체주의 사회의 무서움을 고발했다.

예술의 독특함에 주목해야

그는 이미지의 여러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굳이 폭력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선 “폭력이 부정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형태조차 사라지게 하는 이미지의 중독성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라고 한정했다. 그는 “이같은 이미지의 중독적 특성을 포착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의 시스템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복귀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그는 이번 <미디어_시티 서울 2002> 행사를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엔 “모든 이미지는 발견하는 순간에 기쁨을 느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하면서 “이번 행사가 뭔가 검증하려는 시도라면 자신은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결국 이미지는 뭔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는 ‘소멸성’이 의미를 가지며 ‘이미지가 축적 가능하다면’ 독창성이 결여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그는 “예술은 그 자체로는 예술이 될 수 없으며 예술의 독특함이 중요하다”고 지적해 오브제가 담고 있는 의미성에 주목했다. 결국 유행을 따르면 이미지 자체보다 외부 체계를 우선시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복제와 동일성이 난무하는 오늘날의 문화 전체주의적 경향을 경고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이박 재연 기자reviv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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