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에서 여성 보컬, 섹시한 외모의 홍일점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매번 비슷한 멜로디의 변주만을 되풀이하는 정체된 대중 음악계의 공백을 뚫고 음악적 실험성이 돋보이는 밴드들이 어필하는 요즘, 여성 보컬들이 작사, 작곡 능력을 겸비한 싱어송라이터로 그들 밴드의 중심에 선다. 그것도 저마다 다양한 색깔과 방식으로 여성적 감수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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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지향을 대변하는 독특한 음색

이들은 단순히 ‘노래를 잘한다’라는 통념에 걸맞는 곱고 예쁜 목소리 기교를 벗어나 개성 있는 음색으로 밴드가 지향하는 장르적 특성을 날카롭게 잡아낸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 이나영이 키보디스트로 활약했던 ‘미완성 밴드’의 음악적 모델인 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반은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드라마 마지막회에는 밴드가 직접 나와 드라마의 중심곡인 ‘꿈꾸는 나비’를 불러 음악 주인공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도 했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이미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그 실력과 탄탄한 음악성을 인정받아 마니아 팬층을 형성하고 있던 그룹이다. 비주류 젊음의 감수성, 다소 몽롱하고 슬픈 음악의 느낌을 단연 살려주는 것은 보컬 남상아의 음색이다. 나른한 노이즈 사운드를 뚫고 나오는 그녀의 음색은 밴드의 성격을 대변한다. 또한 얼마 전 2집을 발매한 체리필터의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와 99년 자체 데모음반을 발매해 잔잔하게 팬층을 확보해왔던 스웨터가 발매한 1집 <스타카토 그린(staccato green)>은 음반주문사이트에서 판매순위 1, 2위를 다투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두 앨범 역시 시원하게 내지르는 파워풀한 조유진의 보컬과 깨질 듯 유약하면서도 청량한 이아립의 보컬이 돋보인다. 이미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자우림은 이번에 4집 앨범 <4>를 발매해 주목받고 있다. 자우림의 프론트우먼 김윤아는 세련된 무대 매너 뿐 아니라 뛰어난 작사 작곡의 능력을 인정받은 여성뮤지션으로 그룹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로 자리잡았다. 롤러코스터의 조원선 역시 끈적이지 않는 쿨한 목소리가 나른한 댄스리듬과 절묘하게 배합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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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있어서 여성 언어

이들의 목소리는 기존 가요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식상한 기승전결의 구도를 따르기보다는 조금은 웅얼거리는 듯 미성숙한 음색을 띠기도 하고 때로는 소음에 가까울 정도로 분노에 찬 절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개성있는 시도들은 남성들의 논리 체계와는 다른 여성 언어의 느낌을 잘 살려낸다. 실제로 밴드의 각기 다른 음악성격을 개성있는 보이스로 각인시키고 있는 여성뮤지션들은 직접 작사를 맡아 음악 안에 자신의 언어들을 쏟아낸다. 기존 댄스 비트에 맞춰 나오는 천편일률적인 가사, 리듬에 맞추기 위해 급조된 듯한 말장난 일색의 가사를 벗어나 여성의 감수성이 가득 담긴 이들의 언어는 새롭고 참신하다. ‘사랑했으므로 너를 떠난다(혹은 지킨다)’식의 사랑이야기나 세태를 풍자한답시고 생각없는 궤변을 포장해서 늘어놓지 않는다. 감상의 편린들은 색으로 남는 감각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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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적어내려 간 가사들에는 이미 여성문학에서 논의된 바 있는 여성 언어의 독특한 징후와 실험들이 자연스레 묻어나고 있다. 비논리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색감있는 단어와 느낌의 조합으로 그들은 일상과 사랑, 그리고 때로는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표현한다. 무작정 선언하지도, 또 지나치게 관조하지도 않는 이들의 언어는 흩뿌려진 감각처럼 투명하지만 명료하게 각인된다. 라비앙로즈의 손금원은 앨범 <37개의 슬픈 내 얼굴>의 작사를 중심적으로 담당하면서 다치기 쉬운 소녀의 감수성과 시선을 느끼게 하는 서정적인 가사를 신스 팝 느낌의 곡들에 실어 표현했다. 황보령은 2집 <태양륜>에서 흡사 우주에 떨어진 아이처럼 주변부의 사물과 사람에 대한 고찰을 상처 가득한 목소리로 터뜨린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남상아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분절된 감상들을 나열해 젊음의 혼란과 슬픔을 우울한 느낌이 짙은 음색에 실어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자우림의 김윤아는 이미 1집에서 마초들의 심리를 비꼬는‘격주 코믹스’외에도 여성의 시선으로 사랑과 관계를 노래한 가사들을 감수성있는 멜로디와 함께 선보여 여성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기도 했다.

고정된 통념을 깨고 자신의 딜레마를 음악 작업 속에 다양한 시도로 풀어내며 여성 정체성을 자연스레 찾아나가고 체득했던 외국 여성뮤지션들의 여정을 한국 여성뮤지션들에게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조금은 긴 호흡을 안고.

문이 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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