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나민 골드에서 제2의 아기밀 신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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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경영능력은 과연 어디서 판가름이 날까.

우리 삶의 경영과 매한가지일 듯 싶다.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힘, 바로 위기관리능력이다. 이것이야말로 불투명한 경영환경에서 CEO에게 가장 크게 요구되는 자질 가운데 하나일 터이다. 그러나 이는 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전략적 사고, 기획 및 조직에 대한 숙련된 경험과 탄탄한 네크워크, 미래에 대한 비전의 소산이다. 이번에 만난 CEO 역시 이런 자질을 바탕으로 자칫하면 스러질 뻔 했던 회사를 수렁에서 건져낸 탁월한 경영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아로나민 골드 신화를 탄생시킨 장본인이자 제약업계의 대표 전문경영인 일동제약·일동후디스의 이금기 회장이다. <편집자 주>

제약회사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건강관리는 어떻게 할까. 온화한 미소로 기자일행을 맞아준 이금기 회장은 고희를 앞둔 나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건강색이다.

“평소에 줄곧 아로나민 골드를 복용하는 것 외에는 따로 건강관리라고 한 건 없었어요.”

JP 역시 아로나민 골드를 하루 5알 복용하면서 건강을 지키고 있다는 일화를 들려주며 쑥쓰러운 듯 슬며시 미소를 건내는 그는 영락없는 일동의 홍보맨이다. 피곤에 지친 많은 이들이 아로나민 골드로 건강을 지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피로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가 물었더니 예방으로서 그만이란다. 그러나 이는 40년이 넘는 한국의 대표적인 장수 의약품 가운데 하나인 '아로나민 골드 신화'를 만든 장본인, 그다운 대답이다.

평사원에서 회장까지 오른 전문경영인

아로나민은 국내 최초의 활성비타민이다. 지난 1963년 개발 당시 국내 제약업계는 외국의 선진제약기업과의 기술제휴 등 합작투자가 유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동제약은 이같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주원료 자가생산’을 철칙으로 독자적인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었던 터다. 그 결실이 바로 아로나민이요, 이를 개발한 당사자가 바로 이 회장이다.

그는 약대를 졸업하고 1년간 제약 경험을 쌓은 뒤 지난 60년 생산담당 평사원으로 일동제약과 인연을 맺었다. 3년 뒤 그는 마늘에서 발견한 활성비타민 B1성분인 프로설티아민과 리보플라민을 주성분으로 한 국내최초의 아로나민을 개발했다. 당시 비타민 B1부족으로 각기병에 많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효능을 입증받은 명약이다. 그 후광을 업고 비타민 C와 E 등이 보강돼 탄생한 아로나민 골드는 지금껏 국민영양제의 대명사로 부각될 만큼 시장 점유율에서 굳건한 1위를 지키고 있다. 일동제약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이 공로로 그는 34살의 젊은 나이에 상무로 발탁, 초고속 승진을 했다. 이어 71년 입사 11년 차에 전무자리(총괄경영)에 올랐고, 84년 사장, 94년에는 드디어 대표이사 회장으로 등극했다. 요즘이야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있긴 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최소한 사장 한번 하고 그만둬야 하는 것 아냐?’하는 진반 농반의 꿈을 그는 그렇듯 빨리 실현해 낸 장본인인 것이다. 그 자리가 분명 쉬운 자리는 아니었을 터.

42년째 일동제약에 몸담고 있는 그는 청춘과 중년의 세월을 모두 회사에 바쳤다. 그의 아내조차 늘상 “결혼을 회사와 했다”고 볼멘소리를 낼 정도였으니까. 이 회장은 배우면서 일한다는 것이 그의 좌우명일만큼 업계에서 정열적으로 쉬지 않고 일하는 일벌레로 정평이 나 있다. 한가지 목표를 세우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치우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그만큼 강한 집념의 소유자다. 그는 일단 목표가 설정되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묘안을 짜냈고 특유의 은근과 끈기로 우수한 사업성과를 달성했다.

만년에 꽃 피운 역작 ‘일동후디스’

아로나민 골드 성공 신화에 이어 이 회장의 역작은 또 있다. 일동제약의 자회사인 일동 후디스다. 일동 후디스는 지난해 40억원의 당기순익을 올렸으며 매출은 556억원에 이른다. 이는 일동제약의 미래를 예고하는 충분한 단서다. 이 회장은 경영다각화를 위해 지난 96년 이유식업계의 선두주자였던 남양산업을 인수, 일동 후디스란 새로운 간판을 내걸었다. 이 대목에서 이 회장의 눈빛은 유난히 반짝였다.

“최하 3%까지 시장점유율이 떨어진 부실기업 남양산업을 22~23%대로 높여놨어요. ”

말 그대로 고속성장이다. 일동 후디스는 지난 97년 내놓은 이유식 일동후디스 아기밀S의 선전에 힘입어 인수당시 9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매년 50%이상 성장, 지난해는 556억원으로 급성장했다. 그야말로 알토란같은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일동 후디스는 남양유업 매일유업 등 거대선발 업체와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되는 싸움을 벌이면서 시장점유율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유식의 품질 및 성분 함량을 둘러싼 치열한 3파전은 결과적으로 품질 향상에 도움이 된 격이다. 그러나 그는 한가지 아쉬움을 토로한다. 고관여 제품인 이유식에 대해 소비자들의 반응이 즉각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분유라고 하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데 그렇질 않습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3, 4세까지 집중적으로 아이들 성장에 필요한 영양을 균형있게 공급해줘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 특유의 홍보맨 기질은 십분 발휘된다. 좋은 이유식을 먹여야 한다는 것이다. “갓난 아기부터 다이옥신을 먹인다고 생각해 보세요.”건강은 예방이 제일이기 때문이란다. 이 회장은 “영양의 균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깨끗함, 순도”라고 말한다.

다이옥신은 한번 먹으면 체내에 고스란히 축적돼 문제라는 것이다. 32년된 장수식품, 이유식의 원조인 아기밀을 생산해낸 일동 후디스의 그 기술을 믿어보라는 얘기다. 분유의 품질은 무엇보다 엄정한 재료선택과 제조공법에 따라 좌우된단다. 최근 시판되고 있는 후디스 트루맘은 100%방목한 젖소의 원유만을 사용해 유해물질, 환경호르몬의 염려가 없다고 이 회장은 힘주어 말한다. 또 그날 짜낸 원유에서 24시간 안에 바로 만들어 영양손실이 적고 신선하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후디스 트루맘의 강점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인식시켜 제 2의 아기밀 신화를 이뤄가겠다는 미래 비전까지 제시한 셈이다. 이젠 그의 경영능력을 재삼 확인할 수 있는 일동제약 워크아웃 당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기로 하자.

일동제약의 불꽃 되살리다

일동 후디스 인수와 동시에 일동제약 경영에서 물러나 있던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98년 일동의 계열사였던 맥슨전자의 부도로 일동제약이 연쇄부도를 맞게 된 것이다. 그는 경영정상화의 적임자로 다시금 일동제약 회장직에 복귀했다. 그러나 그는 워크아웃(Work Out: 주채권은행을 중심으로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대상 부실 기업의 채무구조를 개선해 기업을 회생시키는 구조조정 작업. 법정관리에 비해 의사결정이 빨리 이뤄지는 장점이 있다) 돌입 2년만에 사실상 조기졸업에 이르도록 경영을 정상화시켰다. 자신의 일생의 과업인 일동제약에 불꽃을 피우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소명의식 그 이상의 일이었다. 그는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에게는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베푼다. 그것이 뭐 대수냐 싶을 만큼의 이것이 사실은 일동제약의 경영정상화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면 믿겠는가. 일동제약 임직원들이 임금을 자진 반납하는 등 혼연일체가 돼 회사 살리기에 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긴 세월동안 한 우물을 파면서 회사 사랑하기를 온 몸으로 보여준 이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동제약은 다른 워크아웃 졸업 기업과 달리 채권은행의 신규 자금지원이나 이자탕감과 같은 지원이 없었다. 순수하게 임직원과 거래업체가 90억원에 달하는 무보증 전환사채를 인수했고, 워크아웃 졸업의 결정적 계기였던 한강구조조정기금의 105억원 투자 의사결정도 결국은 종업원과 평소 신뢰로 다져왔던 거래업처가 하나된 까닭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자동차의 엔진에 어떤 오일을 넣어줘야 하는지를 간파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제 더 큰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일동제약에 담금질이 됐던 워크아웃의 경험을 토대로 일동제약의 60년사를 빛낼 새로운 5개년 계획을 짜고 있다. 고희를 앞둔 백전노장의 경영노하우가 그릴 큰그림은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하다.

김경혜 기자 musou21@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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