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jpg

늦가을 유원지, 한 가족이 소풍에 나선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부와 그의 큰아들. 평범해 보이는 이 가족은 2년만의 소풍에 설렘을 감추지 못한 채 경치 좋은 유원지 한가운데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모처럼의 소풍을 맞이하는 건 관리원의 은근한 횡포와 수질검사에 걸려 폐쇄된 약수터 등 ‘가족의 단란함’에 균열을 낼 듯한 상황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의 단란함을 비웃는 건 그들 안에 자리잡은 상처다. 치매 걸린 할머니에 실직 가장, 그리고 막내를 지하철에 덩그러니 버려두고 와야 했던 가난의 기억과 남루한 현실. 어머니는 가족 각자의 마음 속 상처가 드러나 그녀가 꿈꾸는 ‘스위트 홈’의 모습이 일그러질까봐 시종일관 허둥댄다.

그녀는 경쾌한 목소리로 와인과 파슬리가 놓여진 가족 식탁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현실은 ‘맨밥에 간장’일 뿐이다. 연극은 억지 웃음으로라도 현실의 남루함을 덮고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끌어내 보려는 어머니의 진땀나는 노력과 내내 현실이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하는 치매 걸린 할머니,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는 아버지와 불만에 가득 찬 아들의 서걱거리는 대화들로 가득 차 있다. 과장된 행복에의 갈망은 현실 속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현실은 가족의 사랑을 확인시켜줄 만큼 여유롭지 않다. 그들은 조금만 건드리면 무너질 것 같은 그들의 상처를 애써 외면하기에 급급하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모처럼의 소풍을 기념하며 웃음 담긴 가족사진 한 장을 남기고자 한다.

“이거 아주 중요한 거야...가족이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되거든!”

어머니의 다급한 절규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사진에는 사진을 찍는 한 사람이 번번이 삭제된다. 그들 전체의 모습은 담을 수 없다. 결국 고집처럼 장님인 소녀의 손에 카메라를 들려 온 가족의 여운을 남기고자 하지만 화면 가득 어둠만이 깔린다. 이들 가족에게 남아있는 건 ‘내 입이라도 사라져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인식이며 가족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자아 도피적 허무의식이다. 결국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아들은 모처럼의 소풍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한 명씩 삭제된 사진처럼 그들은 사라지려 한다. 그러나 자살마저 쉽지 않다. 질긴 생명의 끈, 삶에의 의지는 집착처럼 그들 몸에 남아 또 다른 상흔만을 남길 뿐이다.

국립극단의 ‘가족’ 연작 중 첫 번째 시리즈인 이 작품은 가난으로 인한 가족해체의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섣불리 사랑과 애정으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어설픈 결론을 맺지는 않는다.‘가족이란 이래야 한다’는 정답에 연연하지 않아 현실성을 얻고 있지만 “당신만 믿을게요”라는 대사를 되풀이하는 어머니와 한시라도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치매 걸린 할머니, 두 여성은 가족 안에서 다소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게 자리잡고 있어 남성가장이데올로기의 도식적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문이 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