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못막은 ‘피해여성 보호’

지난 달 31일 가정폭력 피해자인 이모씨가 천안1391 상담실에서 남편 민모씨에게 살해당한 사건과 관련해 여성단체들이 가정폭력 피해자의 신변안전에 무지한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이고 있다.

경남여성1366센터(소장 이의득)를 비롯한 제주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 가족사랑쉼터, 서울가정폭력 밀밭상담소, 마산 따뜻한쉼자리, 대구가톨릭 여성의집, 대구가톨릭여성연합회 등 전국 대부분의 가정폭력상담소와 쉼터들이 “이번 이씨 살해사건은 15년동안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 신변안전까지 위협당했던 여성을 보호하지 못한 부실한 제도에서 비롯된 인재였다”고 주장하면서 교육부와 경찰청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제안서를 보내는 한편 연대서명을 받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제안서를 통해 ▲가정폭력 피해자녀 전학시 공인된 상담소의 의견서와 피해 어머니의 의견서가 첨부되면 전학 가능 ▲전국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과 입소자들의 신변보호 안전과 보안 유지 ▲가정폭력을 최우선으로 감지할 수 있는 교사들에 대한 교육 의무화, 아이들이 안전한 곳에서 교육받을 권리 확보 ▲상담소·쉼터의 요청이 있을 시 경찰의 즉각 출동, 피해자의 취업과 자녀 등하교길 신변 노출시 접근 금지조치 효력 발생과 쉼터 주변 순찰 강화로 사전사고 예방 ▲신변안전을 위해 상담원 충원 등의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이 사건에서 대두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보다 가정폭력 피해 자녀의 전학 문제다. 현행 제도로는 고등학생 자녀의 전학엔 반드시 친권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또한 현행 교육법시행령 제21조 ③항은 전학은 가능하나 전학후 주소지에 대한 보안조치가 없어 유명무실하다.

가정폭력 피해 자녀일 경우 전학학교가 비밀로 보장되지 않으면 가해자가 자녀의 학교로 찾아와 행패를 부려 피해 자녀들은 또다시 학교를 옮겨야 하는 악순환을 겪는다. 이 때문에 전학이 가능해도 보호시설 인근학교에서 청강생으로 수업을 받고 전 학교에 사정해 졸업장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아이의 전학 문제였다. 남편의 극심한 폭력 때문에 신변안전을 우려해 공개적인 이혼소송도 못했던 이씨가 남편을 만나야 했던 이유는 바로 아이의 전학 문제 때문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폭력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고자 했던 이씨는 한시가 급했던 것이다.

경남여성1366센터 이의득 소장은 “폭력 가해자가 친권자라도 전학한 학교의 주소지를 비밀에 부치는 제재 기능과 가정폭력 피해자나 공인된 상담소의 요청이 있을 시에는 친권자 동의 없이도 전학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며 제도 마련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둘째는 경찰의 신변보호 문제다. 폭력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가해자에 의해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 상담소·쉼터 등의 전문기관에서 신변보호의 요청이 있을 때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출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늘 위험에 노출돼 있고 더구나 가해자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의 사전안전대책은 전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신변에 대한 안전보장이 없어 외부출입을 두려워하고 있는 현실에서 쉼터 입소자들에게 이번 사건은 “더욱 더 충격적이고 가해남편들에 대한 공포심이 극심한 상황”이라고 각 쉼터의 관계자들은 전한다.

셋째, 피해자들의 요구가 있었음에도 상담원들이 이씨와 가족의 신변안전을 위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망한 이씨의 제부에 따르면 남편 민씨는 대장간에서 칼을 구입하고 살인비디오까지 봤다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해 가정폭력으로 시달리는 여성과 아이들의 숫자는 1만3천여명이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한 여성의 죽음으로도 끝이 보이지 않는 가정폭력에 대한 진정한 대안은 무엇일까.

사건개요

남편에게 살해당한 이씨는 남편 민씨(40세, 무직)와 결혼 15년째로 둘 사이에 고등학교 1년, 초등학교 3년 된 딸 둘을 두고 있었다. 이씨는 15년 동안 계속된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지난해 12월 28일 집을 나와 창원 이모 집에서 몸을 숨기며 기거해 왔다. 가해자 민씨는 택시운전 중 교통사고로 교도소를 다녀온 후 무직상태로 있었으며 집안의 경제적 책임은 이씨가 식당일로 꾸려왔다. 조실부모한 이씨는 친정의 동생 셋에게도 경제적인 지원을 하며 생활을 했는데 이런 이유로 남편에게 늘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남편 민씨는 심한 의처증으로 이씨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고 정신적으로도 학대했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이씨는 남편과 끝까지 살아보기 위해 남편의 폭력에 대해 친척이나 타인들에게 사실을 숨겨왔다. 그러나 남편의 폭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이씨는 혼자 집을 나오게 된 것이다.

남편은 이씨를 찾기 위해 딸들에게 친척집으로 전화해서 이씨가 돌아오도록 시켰으며 뜻대로 되지 않자 딸을 폭행하고 같이 죽자고 위협하면서 딸의 손목에 칼자국을 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두려움을 느낀 큰딸은 이씨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고 주위의 도움으로 두 딸과 함께 창원여성의집 모자일시보호시설로 가게 됐다. 지난 7월 6일 입소 당시 이씨는 남편에 의한 정신적 학대와 잔인한 폭력의 잔상으로 심한 불안과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여기에서 안정을 되찾아가던 이씨는 그러나 곧 큰딸의 학교문제에 부딪쳤다. 초등학생인 둘째딸은 쉼터 근처 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켰지만 고등학생인 큰딸은 “친권자인 아버지의 동의서가 있어야 전학이 가능하고 가정폭력 피해자인 어머니와 상담소의 의견만으로는 전학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학교측으로부터 거절당했다.

쉼터에서는 이씨에게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신중히 풀어가자고 권했지만 이씨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학교교육에 대한 필요성과 유급에 대한 불안감으로 전학을 극구 원했다고 쉼터측은 전했다. 이 과정에서 남편 민씨가 여동생을 시켜 천안1391에 두 딸을 찾아줄 것을 요청했고 창원여성의집에서는 천안1391에서 큰딸 학교를 방문해 학교측을 설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천안1391에서 학교를 방문, 전학을 요청했지만 학교측은 같은 이유로 거절했다.

남편 민씨는 천안1391로 찾아가 눈물로 자녀를 찾아줄 것을 요청했고 1391상담원은 이씨가 남편과 대화로 문제해결이 가능할 것 같다며 이씨와 남편이 만나 일을 해결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그러나 쉼터 담당자는 가정폭력 가해자의 잔인성과 이중적인 성향에 대해 설명하고 신변안전의 이유를 들어 둘의 만남을 거절했다. 천안1391 상담원은 쉼터에서 거절하자 이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남편이 합의이혼에 동의해 주겠다고 하니 직접 만나서 해결할 것과 절대적인 신변보장을 약속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쉼터 담당자와 피해자 가족들은 남편과의 만남을 극구 말렸으나 “천안1391에서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니 괜찮을 것”이라며 이씨는 31일 오전 8시 딸과 함께 천안으로 남편을 만나러 갔다.

당시 상황에 대해 큰딸은 “택시가 1391센터 앞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어줬다. 어머니가 겁이 나서 떨자 아버지는 바지 주머니를 털어 내보이며 칼 안 가지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울면서 용서해달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겁이 난 어머니는 센터 밑에 남고 나와 아버지, 외삼촌만 상담실 2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상담원이 괜찮으니까 어머니를 데려 오겠다고 내려가서 2층 사무실로 어머니를 데리고 올라왔다. 앉는 순간 아버지가 어머니 옆에 앉아서 무섭고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이 때 큰딸은 “아버지는 합의이혼에 동의를 했다. 나는 아버지가 무서워 밖으로 나오고 상담원은 서류 가지러 간다고 나갔다”고 전했다.

큰딸이 밖으로 나오고 상담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남편은 부인 이씨를 살해하고 이를 말리던 이씨의 남동생에게 칼을 휘둘러 중태에 빠뜨렸다.

경북 권은주 주재기자 ejskwon@hanmail.net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